10억이 100억 되는데…‘김남국 사태’로 드러난 무법지대 코인판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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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수단’ 지적에 법 밖에 있던 가상자산
본격 제도화 추진에도 여전히 ‘범죄의 온상’ 시선

김남국 국회의원을 둘러싼 가상자산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논란은 김 의원 개인의 불법 거래를 넘어 정치권 전반의 로비 의혹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날이 갈수록 각종 의혹이 새롭게 터져 나오는 실정이라, 업계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동시에 가상자산의 제도화 움직임에 탄력이 붙게 됐다. 가상자산은 오랜 시간 ‘투기 수단’ 취급을 받으며 제도권 편입에 번번이 실패한 바 있다. 김 의원이 가상자산을 수십억원 가까이 불린 것으로 지목된 시점도 2021년으로, 국내에서 가상자산 관련 규제가 시행되기 이전이다. 지난해 루나‧테라 폭락 사태 이후 제도화 움직임이 본격 시작됐는데, 이번 김 의원 논란을 계기로 이 같은 흐름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코인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분위기다. ⓒ 연합뉴스
김남국 의원을 둘러싼 ‘코인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분위기다. ⓒ 연합뉴스

‘김남국 코인’ 수십억 인출되는데 ‘이상거래’ 신고 안 한 빗썸

18일 현재까지 나온 언론 보도와 김 의원 소유로 추정되는 지갑의 거래 내역을 분석해보면, 10억원 수준이었던 초기 자금이 100억원으로 불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년이다. 김 의원은 2021년 초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토렌트를 투자해 40억원까지 불리고, 이를 다른 거래소 빗썸으로 옮겨 위믹스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빗썸에 비트토렌트가 상장된 2022년 1월 김 의원은 다시 60억원 상당의 위믹스를 빗썸에서 업비트로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해 위믹스 가격이 폭등한 것을 고려하면, 김 의원이 100억원에 육박하는 가상자산을 갖고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 의원이 가상자산을 인출해 얼마나 ‘현금화’ 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검찰은 김 의원의 가상자산 거래 내역을 확보하고 자금출처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김 의원이 스스로 밝힌 10억원 상당의 초기 자금을 잃거나 더 벌지 못하고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고 해도, 김 의원은 코인계 ‘큰 손’이 된다. 금융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10억원 이상의 가상자산을 가진 사람은 0.02%로, 전국에서 단 900명 뿐이다.

문제는 김 의원의 자산이 불어나는 동안 당국은 물론 거래소도 이상 거래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정금융정보거래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는 이상 거래 의심 건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즉각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이 초기 거래에 활용한 빗썸은 60억원 어치의 가상자산이 다른 거래소로 인출되는데도 이상 거래로 보지 않고 신고도 하지 않았다. 이상 거래인지, 고액 투자자의 단순 자금 인출인지 확실하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다만 다른 거래소인 업비트는 이상거래를 신고했고, 이를 FIU가 인지하고 검찰에 통보하면서 관련 수사가 본격화했다.

김 의원은 ‘코인 실명제’로 불리는 ‘트래블 룰’이 지난해 3월25일 시행되기 직전에 60억원 가량의 위믹스 80만여 개를 전부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이 가상자산 보유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해당 시점에 인출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지점이다. 이외에도 김 의원은 위믹스 뿐만 아니라 P2E(돈 버는 게임‧Play to Earn) 관련 코인을 다수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게임업계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이준동 부장검사)는 5월15일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과 관련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과 업비트를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의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의 모습 ⓒ 연합뉴스

‘투자’냐 ‘투기’냐 고민하는 동안…‘범죄의 온상’ 된 코인

가상자산 규제가 하나둘씩 시작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루나‧코인 사태와 해외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휘청인 게 전 세계적 제도화 움직임에 불을 댕겼다. 이전까지는 가상자산을 투기로 규정하는 시각이 강해 제도화 논의가 번번이 미뤄졌다. 지난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는 도박”이라며 ‘거래소 폐쇄’ 발언을 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 4년이 지나서야 ‘트래블 룰’이 시행됐다. 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년 더 유예됐다. 그만큼 이견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사이 가상자산은 ‘범죄의 온상’으로 불렸다. 자금 세탁은 물론 뇌물의 수단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다단계 방식의 사기나 마약거래 등 각종 범죄 거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2021년 말 가상자산 투자 광풍이 불었는데도 투자자 보호 장치는 없고 규제도 미비하다 보니 관련 피해가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은 부랴부랴 가상자산 제도화에 나서기로 했다. 정치권은 ‘김남국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공직자 가상재산 신고 제도를 포함해,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통과를 추진 중이다. 공직자 가상자산 신고는 여야 합의를 본 덕에 이달 본회의에서 통과가 유력시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가상장산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EU(유럽연합) 회원국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가상자산 규제안을 승인했다. 해당 법안은 가상화폐 발행 및 거래 투명성, 가상화폐 공시 의무, 내부자거래 규제, 발행인 자격 요건 규제, 인증 및 관리‧감독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국내에서도 가상장산 관련 규제가 한층 더 강되는 게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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