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올리버 스톤 감독 “RE100은 꿈같은 얘기…탈원전이란 허구 파괴해야”
  • 오종탁·이원석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2 07:3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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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다큐 영화 《지금 원자력》으로 돌아온 할리우드 거장 올리버 스톤
‘재생에너지 100% 사용’ RE100 등 원자력 반대론 강도 높게 비판

“원자력에 반대하는 주장은 엉터리(bullshit)이며 RE100 역시 꿈같은 이야기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3회 수상한 할리우드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76)이 5월17일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원자력 반대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스톤 감독은 원자력에 관한 최신작 《지금 원자력(Nuclear Now)》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원자력이 기후위기의 명백한 해결책이며 그 위험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제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스톤 감독은 직접 수많은 현장을 누비면서 기업 관계자, 과학자 등 전문가들을 두루 만난 끝에 《지금 원자력》을 완성했다.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주로 선보여온 그이지만, 이번처럼 직접적이고 선명한 메시지를 담은 적은 전에 없었다. 인터뷰에서도 내내 직설적인 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 원자력》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 《원자력(Nuclear)》이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됐다. 그러다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서부터 제목에 ‘지금(Now)’을 추가했다. 사안의 시급성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지금 원자력》은 다보스포럼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상영 장소의 좌석이 꽉 차 일부 관객은 맨바닥에 앉아 관람할 정도였다. 기후위기의 현실적인 해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단면이라고 스톤 감독은 해석했다. 

할리우드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5월17일 서울 중구 모처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할리우드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5월17일 서울 중구 모처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후위기와 전력 수요 확대로 원자력 절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과 원자력 활용을 둘러싼 논의가 치열하다. 특히 원자력을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대립이 심각하다. 그런 점에서 스톤 감독의 《지금 원자력》은 전자의 논리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셈이다. 과학자도 사회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닌 영화감독이 원자력 옹호론자를 넘어 행동가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첫 번째 동아시아 국가로 한국을 택한 배경도 무척 궁금해졌다. 

왜 지금 원자력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게 됐나.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자연적인 제약 때문에) 항상 만들어내지 못한다. 미래에 필요한 전력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세계 각국이 여러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왔음에도 탄소 배출은 개선되지 않았다. 화석연료 퇴출이라는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다. 결국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데다 고효율인 원자력 발전이 명백한 기후위기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화 《지금 원자력》은 전 세계 전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점을 중점적으로 부각했다. 왜인가.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보다 많은 공정에 전기가 사용되고 있다. 한편으론 세계 인구의 4분의 3이 사는 개발도상국에서 (사회 발전에 따라) 전기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수요를 탄소 배출량을 치명적으로 늘리지 않으면서 충족할 방안은 단 한 가지다. 더 늦기 전에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수요 충족의 핵심인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야 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지금 원자력》 속 장면들 ⓒ영화 《지금 원자력(Nuclear Now)》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지금 원자력(Nuclear Now)》 속 장면들 ⓒ영화 《지금 원자력》

《지금 원자력》은 5월 초부터 미국에서 상영되고 있고, 한국 개봉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스톤 감독은 이번에 영화 홍보보다는 원자력 관련 강연과 네트워킹 등에 방점을 찍고 방한했다. 그만큼 원자력 강국인 한국을 향한 그의 관심은 각별하다. 스톤 감독은 “한국은 원자력발전을 활발히 하다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을 거치며 다소 주춤한 상황”이라며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해 원전을 지속적으로 지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100’ 보완재인 ‘CF100’은 긍정 평가  

한국이 원자력발전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은 원전 건설에 대해 용감하고 도전적인 국가다. 원전 수출과, 수준 높은 조선 기술을 바탕으로 한 부유식(浮遊式) 원전 개발도 선도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복잡한 규제, 환경단체 반발 등으로 원전 확대가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다.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위해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원자력을 배제하고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이 한국의 원전 확대에 큰 장벽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 악화와 전력 수요 증가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RE100은 꿈같은 얘기다. 불가능하다. 반면 보완재로 거론되는 ‘CF100’(무탄소에너지 100% 사용, 재생에너지 외에 원자력도 포함)은 좋은 아이디어다.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위기를 막자’는 논의에서 원자력을 배척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세계에서 RE100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탈원전을 외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 갔을 때도 기후변화에 관한 어젠다에서 원자력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여기는 건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탈원전도 바보 같은 짓이다. 탈원전 국가인 독일의 경우 탄소 배출량은 이전보다 더 늘어났고 전기요금은 대폭 올랐고 재생에너지는 한 달 중 11%밖에 안 돌아간다. 탈원전을 하기 전에 원전 가동률은 90%에 이르렀다. 태양광발전과 비교할 때 5분의 1 정도 되는 면적에서 100배가량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다니, 말이 되는가. 독일 경제에 두고두고 엄청난 악재가 될 듯하다.” 

독일이 마지막 남은 원전 3곳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탈원전을 완료한 4월15일(현지시간)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장관(녹색당)은 “오늘은 독일이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참 좋은 날”이라고 밝혔다. 트리틴 전 장관은 2000년 독일의 첫 탈원전 합의를 주도한 바 있다. 

“삼중수소 포함된 물 1갤런도 마시겠다고 해” 

한국에서도 같은 이유로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이 추진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 직전인 2016년 12월 원전 재난영화인 《판도라》를 관람한 후 원전 추가 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원전 사고) 확률이 수백만분의 1밖에 안 되더라도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5월 대통령 당선 후 탈원전 로드맵은 빠르게 실행됐다. 그러나 5년이 지나고 다시 정권이 바뀌자 원자력 정책은 완전히 뒤집혔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 기조하에 무너진 원전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는 작업이 지난하게 이어지는 중이다. 친원전과 탈원전으로 갈라진 민심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독일이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추고 탈원을 완료한 4월15일(현지시간)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원자력 괴물 조형물 ⓒ연합뉴스
독일이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추고 탈원전을 완료한 4월15일(현지시간)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원자력 괴물 조형물 ⓒ연합뉴스

‘원자력’에 ‘위험성’이란 단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원자력 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 핵폭발에 대한 집단적인 공포가 원자력과 결합된 게 문제의 시작이다. 인류가 70년 넘게 원자력발전을 해왔는데, 진짜 재앙이라 할 만한 사례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뿐이라고 본다. 그것도 원자로 설계가 잘못되는 등 현대 원자로에는 없는 결함이 주요 원인이었다. 1979년 스리마일(TMI) 원전 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도 방사능으로 숨진 이는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원자력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처럼 인식하고 행동한다. 이런 가운데 반대론자들은 틈만 나면 원자력에 대해 흠을 잡으려 한다. 이들에게 과학적 사실은 전혀 중요치 않다.” 

원자력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위험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말이다. 원자력 외의 에너지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인명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핵폐기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관리를 이렇게 철저히 하는 산업은 원자력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볼 때 겉잡을 수 없는 기후위기를 맞아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위험하지 않겠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가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정화시설에서 처리된 오염수의 위험성에 대한 생각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난 모든 과학자는 (처리된 오염수처럼) 삼중수소가 미량 들어있는 물을 1갤런(약 3.8리터)도 마실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 정도 방사성 물질은 주변에도 항상 있다.”

《지금 원자력》에는 미국 석유회사들과 미디어도 원자력 반대론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화석연료와 경쟁할 수 있는 주요 에너지원을 견제하기 위해 사실상 원자력 반대 운동의 파트너가 됐다. 스탠더드오일의 경우 아주 낮은 수준의 방사능도 인체에 해롭다는 잘못된 생각을 퍼뜨렸다. 동시에 영화나 TV 등에서도 원자력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 

원자력에 관해 《지금 원자력》은 기존 영화들과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시 볼 시간(Time to look again)’이란 부제가 상직적이다. 영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나. 

“허구를 파괴하기 위해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원자력발전을 죄악시하는 게 바로 허구다. 음모론에 휘둘리지 말고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진실이 궁극적으로 거짓을 없애리라 믿는다.” 

스톤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1987년 그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플래툰》 속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 크리스 테일러(찰리 쉰 분)는 영화의 마지막 즈음 “돌이켜 보면 우린 적이 아닌 우리 자신과 싸웠다. 적은 우리 안에 있었다”고 독백한다. 생명의 존귀함과 참 의미, 인간성 등을 무시한 채 명분이 부족한 전쟁에 매몰된 미국 정부를 꼬집은 대사다. ‘최근의 원자력 관련 이슈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대사 같다’고 말하자 스톤 감독은 엷게 웃으며 “맞다”고 했다. 그는 “과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나 존 F 케네디 대통령 등이 원자력을 이용해 대량의 전력을 생산할 계획을 세웠는데, 그 방향으로 계속 갔다면 지금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제라도 불필요한 논쟁을 끝내고 이미 우리 손에 있는 해결책(원자력)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다음날인 5월18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지금 원자력》 시사회가 열렸다. 한국과 미국의 원자력공학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람객이 시사회장을 찾았다. 스톤 감독은 영화 상영 이후 관람객들과 만나 인사하고 질문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스톤 감독의 한국인 아내 정선정 여사도 함께 자리해 힘을 보탰다.   

5월18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지금 원자력》 시사회 현장 ⓒ브이알트루 제공
5월18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지금 원자력》 시사회 현장 ⓒ브이알트루 제공
《지금 원자력》 시사회에 올리버 스톤 감독과 부인 정선정 여사가 함께 자리했다. ⓒ브이알트루 제공
《지금 원자력》 시사회에 올리버 스톤 감독과 부인 정선정 여사가 함께 자리했다. ⓒ브이알트루 제공

■ 올리버 스톤 감독은 누구 

194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계, 어머니는 프랑스계였다. 1965년 예일대를 중퇴하고 베트남으로 가서 잠시 영어강사와 선원 생활을 하며 떠돌았다. 미국으로 돌아와선 육군에 자원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부상으로 제대한 후 뉴욕대 영화과에 입학해 1971년 졸업했다. 1978년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각본가로 참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출세작은 1986년작 《플래툰》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전의 참상을 선명하게 묘사했다. 《플래툰》으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편집상, 음향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5월1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올리버 스톤 감독이 5월1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1989년 개봉한 《7월4일생》으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며 능력을 재차 입증했다. 《7월4일생》 역시 베트남전을 다루며 반전 메시지를 전한 영화다. 이 밖에 미국 신자본주의의 폐해를 폭로한 《월 스트리트》(1987),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명한 《JFK》(1991),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추문을 다룬 《닉슨》(1995),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을 풍자한 《더블유(W.)》(2008), 미 중앙정보국(CIA)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을 그린 《스노든》(2016) 등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굵직한 어젠다를 던져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2년 동안 10여 차례 인터뷰한 후 2017년 《더 푸틴 인터뷰》란 다큐멘터리를 내놓기도 했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2006년 앨 고어 전 미 부통령이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을 보고 충격을 받으면서 관심을 갖고 관련 도서를 섭렵하게 됐다. 그중 《지금 원자력》의 원작인 된 책은 조슈아 S 골드스타인과 스타판 A 퀴비스트가 함께 쓴 《밝은 미래》다. 1996년 한국인 정선정씨와 결혼했고 한국 관련 사안에 조예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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