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방에 내려가고 싶은 분?” 글로벌 2030 리더들이 질문 던진 이유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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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 산하 GSC 서울 허브, 포럼 열어 수도권 집중화와 인구문제 조명
소셜임팩트 추구하는 청년 100여 명 집결… “축제처럼 사회·환경 변화 모색”

“앞으로도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으신 분?” 

뜻밖의 질문에 청중이 우물쭈물한다.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보증금과 월세가 서울의 절반 수준이지만 생활·문화 인프라는 서울보다 현격히 부족한 지방에서 연봉 1000만원을 더 준다면 내려가 일하시겠습니까?” 찬물을 끼얹은 듯 잠잠하다. 2배 연봉을 제시해도 5분의1 정도가 겨우 손을 든다. 

5월20일 오후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제2회 서울 쉐이핑 포럼(Seoul Shaping Forum)이 열렸다. 아산나눔재단의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포럼엔 소셜임팩트를 이뤄가는 청년 100여 명이 휴일을 반납하고 모였다. 소셜임팩트는 기업과 비영리조직 등이 사회·환경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포럼의 주제는 ‘임팩트 커뮤니티 빌딩과 서울 집중화’다. 특히 글로벌 쉐이퍼스 커뮤니티(Global Shapers Community·GSC) 서울 허브의 구성원, 일명 쉐이퍼들이 서울 집중화 문제를 들고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2030 리더들로 구성된 GSC는 세계경제포럼(WEF) 산하의 국제 협의체다. 젊은 시각으로 세계가 직면한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고 개선하는 게 활동 목적이다. 

5월20일 오후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제2회 서울 쉐이핑 포럼(Seoul Shaping Forum)에 연사로 참여한 이진아 GSC 서울 허브 쉐이퍼가 서울 집중화 문제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5월20일 오후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제2회 서울 쉐이핑 포럼(Seoul Shaping Forum)에 연사로 참여한 이진아 GSC 서울 허브 쉐이퍼(컬랩윈 대표)가 서울 집중화 문제에 관해 발제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서울 집중화는 GSC 서울 허브가 최근 들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GSC 서울 허브는 발제를 통해 청년들을 지방으로 이끌 현실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서울 집중화와 지역 불균형, 인구 감소 등 우리 사회의 시급한 현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 리더들이 동년배를 대신해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필요조건을 과감히 꺼내놓자 포럼 현장의 열기가 고조됐다. 

이진아 GSC 서울 허브 쉐이퍼(컬랩윈 대표)는 “청년층 다수가 일자리와 교육(대학·대학원 진학) 때문에 지방을 떠나 서울로 가면서 인구의 서울 집중이 확대되고, 이런 과밀화는 과도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장한다”며 “생존 본능이 재생산 본능을 압도하는 가운데 비혼(非婚)과 만혼(晩婚)은 증가하고 출산율은 급락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저출산 정책의 주안점을 출산·양육 부담 경감을 위한 복지에서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 인프라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3월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2021년 청년 취업자의 수도권 분포 비중은 50.8%에서 56.4%로 5.6%포인트 올라간 반면 비수도권의 청년 취업자 비중은 43.6%로 내려갔다. 통계청은 “고도의 디지털 심화 산업을 중심으로 수도권으로의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의 집중이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서울 쉐이핑 포럼에도 지방 출신의 서울 거주 청년들이 많이 참석했다. 즉석에서 공개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우선 ‘서울 집중화가 중요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느냐’고 모두가 거수했다. 그러나 서울과 지방의 기업에서 각각 오퍼를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후자 쪽 연봉이 높다고 해도 선뜻 지방에 내려갈 수 있다는 사람은 없었다. 청년들이 네트워크와 각종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근무를 꺼리는 현상은 고착화한 지 오래다. 이는 주요 기업이 전문 인력 채용과 유지를 위해 주로 수도권에 사업체를 두는 것과 맞물려 있다. 이진아 쉐이퍼는 “결국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지방에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들이 유입되면 학교와 병원, 상업시설, 교통 인프라 등도 자연스레 따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원식 GSC 서울 허브 쉐이퍼(디쓰리쥬빌리파트너 심사역)가 서울 쉐이핑 포럼에서 일본과 프랑스 허브의 활동가들을 연단으로 불러올려 수도권 집중화 관련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정원식 GSC 서울 허브 쉐이퍼(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가 5월20일 열린 서울 쉐이핑 포럼에서 일본과 프랑스의 GSC 쉐이퍼들을 연단으로 불러올려 수도권 집중화 관련 대담을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5월20일 오후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서울 쉐이핑 포럼에 참석한 청년들 ⓒ시사저널 오종
5월20일 열린 서울 쉐이핑 포럼에 참석한 청년들 ⓒ시사저널 오종탁

발제 이후 GSC 서울 허브의 정원식 쉐이퍼(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가 일본과 프랑스 허브의 쉐이퍼들을 연단으로 불러올려 대담을 나눴다. 서울과 도쿄, 파리 사례 발표에 이어 수도권 과밀화에 관한 다양한 시각이 공유됐다. 각국의 청년들이 모여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 건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담을 바탕으로 정원식 쉐이퍼는 “세 도시에서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는 배경에 수도권과 지방의 인프라 격차와 사회적 지위 상승을 향한 욕구가 있어 보인다”며 “한국의 경우 두 가지 요소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근본적으론 국가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성숙도와 관련이 깊다고 정원식 쉐이퍼는 분석했다. 그는 “프랑스는 이 두 가지 요소(인프라 격차와 지위 상승 욕구)가 두드러지지 않아 지역 균형발전이 잘 이뤄졌고, 일본은 심각한 수도권 과밀화 이슈를 한국보다 20~30년 앞서서 지나오고 있어 두 나라의 사례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GSC에는 현재 세계 150여 개국 약 500개 도시의 1만 명 넘는 쉐이퍼들이 활동하고 있다. 각자의 ‘본캐’(직업)를 갖고 쉐이퍼라는 ‘부캐’를 통해 다양한 소셜임팩트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한다. 서울 허브에도 대기업과 스타트업, 컨설팅기업, 벤처캐피털(VC),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거나 예술인, 운동선수 등으로 활약하는 쉐이퍼 60여 명이 속해 있다. 지난 2월에는 한국의 두 번째 GSC 플랫폼인 대전 허브가 신설됐다. 정원식 쉐이퍼는 “두 허브를 중심으로 포럼 등 다양한 소통 기회를 마련해 젊고 재능있고 소셜임팩트에 관심 있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축제처럼 즐겁게 사회·환경 변화를 모색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GSC 쉐이퍼들은 30세 이하다. 이날 객석을 채운 참석자들의 연령대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였다. 소셜임팩트를 만들어 감에 있어 용감무쌍하지만, 때때로 편견과 현실적인 장벽에도 부딪히는 게 사실이다. 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성공적으로 소셜임팩트 생태계를 닦아온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가 얼굴을 비췄다. 

5월2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서울 쉐이핑 포럼이 열렸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이날 연사로 나선 데 이어 참석자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시사저널 오종탁
5월2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서울 쉐이핑 포럼이 열렸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이날 ‘커뮤니티 빌딩 도전기’란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포럼 참석자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시사저널 오종탁

비영리 사단법인인 루트임팩트는 2012년 사회와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혁신가(체인지메이커)를 발굴, 이들의 비전에 공감하는 자선가들과 연결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허재형 대표와 현대가(家) 3세인 정경선 현 실반그룹 공동대표가 함께 창업했다. 2014년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소셜벤처와 비영리기관 육성 프로젝트를 가동한 루트임팩트는 주위의 회의적인 시선을 딛고 엄청난 변화를 일궈냈다. 24개사로 시작된 헤이그라운드 중심의 소셜벤처 생태계는 현재 110여개사 규모로 확대됐다. 체인지메이커들이 깃들 수 있는 나무인 헤이그라운드는 2019년 서울숲점, 올 3월 뉴욕점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허재형 대표는 “한 명의 창업가를 도우려면 온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라며 “혼자나 단일팀의 역량만으로 창업 후에 직면하는 힘든 과정을 다 돌파하기 어렵다. 다양한 형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긴다면 창업가들이 조금은 더 힘을 내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커뮤니티가 루트임팩트의 종착지는 아니다”라며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창업가가 많은 이해 관계자들과 이어져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 이후 더 많은 연결과 협업이 일어나는 선순환을 이루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루트임팩트 역시 서울 집중화 문제 해소를 위해 지방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허 대표는 전했다. 그는 “지방에서도 좋은 임팩트가 나타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드는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면서 “앞으로 10년은 임팩트 생태계가 우리 사회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만들고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대해 사람들이 분명히 체감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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