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해는 ‘둥산포’에 묻혀 있을 것”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9 07:3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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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 상설위원회’ 꾸려 유해 봉환 위해 헌신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1909년 3월 안중근 의사가 관동도독부 감옥(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 동생 정근·공근에게 남긴 말이다.

2006년 남북한이 안중근 유해 공동발굴단을 꾸리면서 그의 유언이 실현될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특정했던 장소에서는 유해를 찾지 못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2019년 다시 남북 공동발굴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군참모총장과 국가보훈처장을 지낸 황기철 국민대 정치대학원 석좌교수가 민간 차원에서의 유해 봉환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황 전 처장은 올해 한·중 전문가로 구성된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 상설위원회’를 꾸리고 유해 발굴 및 국내 봉환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6월14일 그를 만나 위원회가 특정한 유해 장소와 유해 발굴을 위한 계획 등을 들었다.  

6월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황기철 전 보훈처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6월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황기철 전 보훈처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보훈처장 때 못 이룬 과업 민간에서 실현”

보훈처장 퇴임 후에 민간인 신분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보훈처장을 지낼 당시 효창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후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반드시 그의 유언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 생활 내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준 글귀가 있는데, 진해 해군기지 정문 비석에 새겨져 있는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되기 전 일본인 간수에게 써준 글귀다. 2021년 국가보훈처장이 돼 카자흐스탄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한 데 이어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에도 힘썼지만 미처 이루지 못한 채 퇴임했다. 외교적·정치적 부침으로 정부가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니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게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부 차원의 시도가 몇 번 있었는데 뚜렷한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1986년 북한이 단독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수행한 적이 있다. 성과는 없었지만 북한도 발굴 의지를 보여왔다. 2005년 남북한 합의를 계기로 남북공동발굴단을 구성해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2006년에는 3차에 걸쳐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및 봉환을 위한 남북실무접촉 쌍방 대표단’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북한의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한·중만이 참여해 발굴을 시도했으나 당시 유해 장소로 특정했던 원보산에서는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2010년 안중근 순국 100주년을 계기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추진단’이라는 민관 합동 상설기구를 설치해 운영 중이지만 그 성과가 관련 연구자나 기관들 사이에는 공유되지 않는 실정이다.”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 상설위원회’라는 단체는 어떤 계기로 결성됐나.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학자들을 만나던 중 지난 20여 년간 이 일에 헌신해온 김월배 하얼빈 이공대 교수를 알게 됐다. 김 교수 혼자서 오랜 기간 축적한 정보와 이를 바탕으로 저술한 서적을 보니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중국 랴오닝성 다롄 뤼순에 있어 중국의 협조가 필수다. 유해 발굴 사업을 체계적·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민간 총괄기구를 설치해 한·중이 언제든 발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저와 현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김 교수가 중심이 돼 뤼순 지역 향토학자, 뤼순 감옥 근무자,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경험자 등 중국인 8명과 국내 학자와 변호사 등 한국인 9명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게 됐다.”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이 5월15일 중국 뤼순 감옥 박물관을 방문해 저우아이민 뤼순 감옥  부관장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과정과 향후 협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제공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이 5월15일 중국 뤼순 감옥 박물관을 방문해 저우아이민 뤼순 감옥 부관장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과정과 향후 협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제공

“2008년 발굴한 원보산, 생활쓰레기만 나와”

지난 5월 사전 현지 조사를 위해 중국에 갔는데 수확이 있었나.

“5월14~18일 안중근 의사 유적지인 뤼순 감옥과 관동 법원, 매장 후보지인 반도인샹 흑산, 원보산, 둥산포 3곳을 방문했다. 남북한 공동발굴단이 꾸려진 당시 매장지가 원보산으로 확정됐다. 북한의 불참으로 한·중만이 참여해 2008년 발굴작업이 진행됐지만 유해가 아닌 생활쓰레기와 장아찌 담그던 시설 등만 발견됐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 왕젠련 뤼순 감옥 전 부관장, 저우아이민 현 부관장 등과 만났다. 이들에 따르면 원보산으로 매장지를 확정했던 당시 의사결정은 이마이 후사코(뤼순 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기치의 셋째 딸)가 건넨 사진 2장을 근거로 한 한국 측의 일방적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사진은 1911년 뤼순 감옥 재감사자 추도회 직후 형무소 직원들로 보이는 군복 차림 10여 명과 재감사자 가족들로 보이는 20여 명의 사람이 기념촬영을 한 것인데, 사진 속 배경을 근거로 원보산이 매장지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 답사, 자료 연구, 관계자 증언 등을 종합해볼 때 당시 매장지 선정은 잘못됐다.” 

원보산이 아니라면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어디인가.
“안중근 의사 순국 당시 뤼순 감옥 공동묘지(1907~42년)였던 둥산포가 매장지일 가능성이 높다. 둥산포는 현재 면적이 1998㎡(660평)에 이르는 언덕으로 90m 길이의 5개 도랑에 시체들이 빽빽하게 매장돼 있다. 이 지역은 2001년 중국 국가문화재 지역으로 지정됐다. 이곳이 유력한 이유는 첫째, 안중근 의사 사형 당시 조선통감부 통역을 맡은 소노키 스에요시의 ‘安의 사형 시말보고’와 한국과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에 ‘안중근 의사 시체는 관동도독부감옥서의 묘지(뤼순 감옥 묘지)에 매장됐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 2008년 한중 유해 발굴에 참여한 중국 측은 애초에 둥산포 지역이 매장지라고 주장했지만 천도제 사진을 제시한 한국 측 주장에 따랐다. 셋째, 원보산은 뤼순 감옥 교도관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 배수가 잘 안되는 황토 토질이어서 묘지터로 쓰였을 가능성이 낮다. 둥산포는 야산의 형태이고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 성분을 가진 토양으로 묘지터로 적합하다.”

안중근 의사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 둥산포
안중근 의사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 둥산포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제공

중국의 협조가 중요한데, 어려움은 없나.
“현재 한중 관계가 정치적·외교적으로 치킨게임을 하고 있어 당연히 어려움이 있다. 둥산포가 위치한 지방정부(다롄)와 중앙정부(베이징)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한국 단체를 만나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 해당 지역 관계자 및 전문가들과 세미나를 통해 꾸준히 소통할 계획이다.”

안중근 의사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까.
“행복한 고민이다. 단 0.1%의 가능성이라 해도, 유해를 국내로 모시는 일은 주권국가 국민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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