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이룩한 ‘한국형 혁신’의 비밀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4 15: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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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전형적인 성공 공식 버리고 자신들만의 세계관 구축
선도기업 모방·추격해 성장한 삼성·현대차 등과 비교돼

BTS 데뷔 10주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에 무려 40만 명이 모였다. 주최 측과 경찰 추산에 따르면 외국인이 이 중 12만 명에 육박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국내 아이돌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아티스트 BTS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지난 10년의 흔적이 말해준 글로벌 팬덤 효과다. 참고로 BTS의 영향력과 파급효과 등을 분석한 국내외 학술논문은 지금까지 150편이 넘는다. 국내 아티스트 중 가장 압도적인 수치다.

6월15일 서울 용산 하이브(HYBE) 사옥 인근 방탄소년단 데뷔 10주년 축하 광고판 앞에서 스페인에서 온 아미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6월15일 서울 용산 하이브(HYBE) 사옥 인근 방탄소년단 데뷔 10주년 축하 광고판 앞에서 스페인에서 온 아미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여의도 운집한 40만 명 중 12만 명이 외국인

2013년 6월 지금의 BTS, 즉 방탄소년단이 데뷔했을 때 이들을 주목한 기획사나 콘텐츠 기업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이미 K팝의 위상을 떨치고 있었고 K팝 신드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뒤따르던 시기였다.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또는 교포 출신 멤버가 필히 존재해야 했고, 외국인들이 능숙하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영어 가사와 공격적 랩이 이어져야 했다. 미국·중국·일본 출신의 멤버 구성과 해외 프로듀서 기용, 그리고 중국 등 아시아를 타깃으로 한 해외 진출 전략은 K팝을 통해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전형적인 성공 노하우다.

BTS는 외국인이나 교포 출신 멤버가 없었고 영어 가사가 주류를 이루는 노래로 데뷔하지도 않았다. K팝 방정식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BTS를 만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BTS는 편한 노선을 거부하고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물론 BTS가 걸어야 할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아시아계 아티스트에 대해 미국은 매우 가혹한 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미국의 대중음악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하던 아시아계 뮤지션의 데뷔 계획을 모두 없었던 일로 선언한 것도 바로 미국의 대형 음반사들이었다. 아시아 뮤지션은 쉽게 말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미국 시장을 두드린 국내 기획사도 이내 미국을 포기해야 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이수만 프로듀서는 미국이나 유럽은 국내 아티스트로는 한계가 명확히 존재하기에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탁월한 성공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돌을 기획할 때, 외국인 멤버와 프로듀서로 서구의 색깔을 입히되 미국 및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방향을 틀어 수익을 거두는 전략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던 K팝의 성과엔 수많은 비판도 함께 이어졌다. 아시아 시장에서 K팝은 주류에 올랐지만 그동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노래들은 모두 서구의 색깔을 담았기에 한국 뮤지션만의 차별화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국내 제조업에서 보여주던, 선도기업을 모방한 추격형 성장 전략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되는 패턴이었다. 방시혁 의장과 BTS가 외국인 멤버와 공격적인 가사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유니버스(세계관) 구축에 공을 들인 건 그래서 영리하다.

BTS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팬덤을 일으키던 시기는 2017년이었다. 외국인 멤버 없이 한국인으로 멤버를 구성하고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음에도 전 세계 50개국에서 이들의 노래에 반응을 보였던 시기다. 콘텐츠 및 K팝 전문가들은 이들의 성과와 흥행이 우연에 의한 일시적 신드롬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BTS는 이들의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며 2023년 현재까지 아티스트로 롱런을 거듭하고 있다. 공격적인 랩과 자극적인 가사에 대중이 열광한다는 믿음 그리고 고정관념은 BTS에 의해 모두 허물어졌다. 그 대신 BTS의 노래와 음악에는 스토리텔링과 메시지의 서사가 입혀졌고 전 세계 젊은이들과 함께 시대적 고민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동시에 콘텐츠 플랫폼 면에선 유튜브가 아닌 한국 고유의 위버스 플랫폼으로 전환해 전 세계 수많은 팬이 유튜브를 벗어나 국내 플랫폼에 집결되도록 역량을 집중했다. 글로벌 팝 전문가들이 BTS를 K팝과 다르게 보는 이유다. BTS의 업적과 성과, 이어지는 혁신은 이제 미국 및 유럽의 주요 경영대학원에서 한국형 혁신 사례로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전형적인 성공 노하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길을 개척한 점 그리고 한국 특유의 정서와 세계관을 통해 글로벌 팬덤을 구축해 확장한 사례는 국내 대기업이 그간 달성한 성과 그리고 기존 K팝 엔터테이너들의 성과와 다르다는 것이다.

4년 전, 모 컨퍼런스에서 한 중국인 학자 또한 강연 도중 한국이 보여준 진정한 혁신은 오직 BTS뿐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들의 업적을 한국형 혁신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많다는 뜻이었다. 선도기업을 모방하고 추격해 성장해 왔기에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뚜렷한 색깔이 없다는 얘기였다. 특유의 고자세로 일관했던 중국인 학자가 BTS만 인정한 당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BTS의 한국형 혁신과 현재진행형 레전드

BTS의 파급효과는 중국인 학자가 인정한 대로 상상 이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BTS는 부가가치를 포함해 연평균 5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제효과가 29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티스트 1명의 존재가 실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여전히 학계에서는 BTS의 파급효과를 정확히 산출하고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에 동의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아티스트의 영향력은 경제적 가치 등 정량적 파급효과 외에 국가 브랜드 및 인지도 제고 등 정성적 파급효과를 함께 수반한다. 지난 4년간 BTS 관련 수출이 의류와 화장품 등에서 5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추정은 나오지만 BTS의 파급효과가 얼마인지 그리고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BTS가 또 다른 10년을 향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진화한다는 데 있다. 2018년 시사저널은 BTS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정치나 경제 인물이 아닌 아티스트 뮤지션이 국내 시사주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기념비적인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 후 5년, BTS는 우리에게 프런티어 정신에 의한 한국 고유의 K콘텐츠 혁신이 도래했음을 본격적으로 알려주었다. 지난 10년은 BTS가 혁신이고 혁신이 곧 BTS였던 시기였다. BTS는 이제 문화산업 전반을 넘어 혁신의 역사마저 새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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