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에 왜 다들 화가 났을까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4 14: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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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 주인공 내세우는 디즈니에 한국 누리꾼까지 반발
정당성 없는 비판 논리에 “답답하다” 지적도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영화가 몰고 온 건 흥행 열풍이 아니라 보기 드문 뜨거운 논란이었다. 일부 누리꾼이 인어공주 관련 글마다 비난 댓글을 달며 악평을 퍼뜨렸다. 보통 영화가 별로면 그냥 관심을 끊는 것으로 그칠 텐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는 건 굉장히 분노했다는 뜻이다. 관람 거부 운동까지 벌어졌고 평점 테러도 나타났다.

이 영화는 초기 제작 단계부터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영화 내용, 완성도와는 상관없는 논란이었다. 인어공주 역할에 흑인을 캐스팅한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디즈니 계열 영화들이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논란에 휘말렸었다. 여성 주연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캡틴 마블》이나 흑인이 전면에 나선 《블랙 팬서》 등이 그렇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선 흑인 여성이 전면에 나섰다.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미즈 마블》의 주인공은 파키스탄 여성이고, 《변호사 쉬헐크》의 주인공도 여성이다.

ⓒEPA 연합·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미국 배우 할리 베일리가 5월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인어공주》 시사회에 참석했다. ⓒEPA 연합

PC 논란에 휘말린 디즈니 영화들

PC는 편견, 차별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으로 차별해선 안 되고 지금까지 억압받았던 소수자, 약자, 타자들에게 마땅한 위상을 찾아주자고 주장한다. 그동안은 백인 남성 중심주의가 팽배했었다. PC주의는 이에 맞서 여성과 유색인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최근 할리우드에선 미투 운동에 이은 페미니즘 대두, 백인 중심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에 대한 반발 등으로 PC 기류가 강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렇게 자막 보기를 싫어하던 미국인들이 봉준호 감독의 한국어 영화를 찾아보면서 상까지 주게 된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우상이 된 것도 이런 흐름과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

과거 백인 중심주의를 전 세계인들에게 내면화시켰던 회사가 바로 디즈니다. 백인 주인공이 나오는 디즈니 동화로 세계인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랬던 디즈니가 갑자기 개심해 PC주의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동안 누적된 비판, PC주의가 강해진 할리우드의 기류, 《슈렉》 흥행에 따른 각성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슈렉》은 드림웍스 만화영화인데 디즈니의 선남선녀 백인 기사, 공주 설정을 비웃으며 괴물을 내세워 크게 성공했다. 할리우드에서 최근 비(非)백인 비율이 높은 영화가 그렇지 않은 영화에 비해 흥행수익이 높았다는 보고서가 나온 적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대의와 수익 극대화, 두 가지 측면에서 적극적인 PC 수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 제작된,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엔 비난이 쏟아졌다. 대체로 PC 설정이 억지스럽다는 것이고, 특히 액션 영화를 억지로 여성 중심으로 만들다보니 액션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때 한국에선 젊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액션 영화에 민감한 쪽이 남성들이어서 박진감이 떨어져가는 것에 실망할 판인데,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까지 겹치니 남성들 사이에서 디즈니 성토가 더 커졌다. PC주의에 대한 반발도 거세졌다. 바로 그런 때 《인어공주》 흑인 캐스팅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우리 인터넷상에서 공분이 폭발했다. 《인어공주》가 제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PC주의 비난도 함께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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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뒤죽박죽된 비판 논리

하지만 이건 정당성이 없는 것이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데는 인종차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눈치챘는지 《인어공주》를 비난하는 진영에서 어느 순간부터 말을 바꿨다. 흑인이라서 비난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못생긴 게 문제라고 말이다. 못생긴 게 잘못이라는 이런 논리도 당연히 정당성이 없다. 이건 외모차별, 외모지상주의 문제와 연결된다. 애초에 흑인이라서 문제라는 논리도 황당한 것이었는데, 그걸 대체해 내놓은 외모 논리는 더욱 황당하다.

나중엔 좀 더 복잡한 논리도 등장했다. 디즈니가 유색인은 못생긴 사람을 캐스팅하고, 백인은 예쁜 사람을 캐스팅해 교묘하게 인종차별을 한다는 논리다. 이건 디즈니에 PC주의를 하라는 말이나 똑같다. 그런데 최초의 주장은 PC주의가 과도하다는 비난이었다. 논리가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애초에 정당성이 없는 주장을 했는데, 그걸 정당화하려니 점점 스텝이 꼬이는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가 지금까지의 백인 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종을 부각시킨다면 오히려 박수를 칠 일이다. 더군다나 우린 백인도 아닌 식민지 출신 동양 국가의 황인 아닌가? 이런 나라에서 디즈니가 유색인을 내세우려 노력하는 것에 왜 그토록 화를 내며 비난하는지 모를 일이다. 외모 문제는 시비를 논할 사안이 아니다. 주인공 외모가 마음에 안들 순 있는데 그건 그냥 그 사람의 느낌이다. 각자 싫은 건 자유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디즈니가 잘못을 저질렀다며 사회적 시비 차원에서 성토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만약 정말 디즈니가 다수 대중이 좋지 않게 느끼는 외모, 즉 뛰어나지 않은 외모의 주인공을 캐스팅했다면 이 역시 박수를 쳐줄 일이다. 뛰어난 외모의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 콘텐츠 기업의 전형적인 상술이다. 인간은 원래 뛰어난 외모를 선호하는데, 콘텐츠 기업은 이 점을 노려 뛰어난 외모의 인물을 화려하게 내세운다. 이것이 뛰어난 외모에 대한 선망을 더욱 강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심화시킨다. 이런 사회적 폐해에도 콘텐츠 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뛰어난 외모만을 내세운다.

디즈니가 그렇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어차피 시장에서 처벌받을 것이다. 돈을 못 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론장에선 그런 비상업적 선택의 사회적 의의를 인정해줄 만하다. 디즈니 소유주라면 비상업적 선택에 화가 날 수 있는데, 왜 우리 누리꾼들이 화를 낸단 말인가? 흑인 캐스팅 문제도 그렇다. 백인 중심주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백인들이라면 백보 양보해 화를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한국 누리꾼들이 화를 낸단 말인가?

내가 좋고 싫은 것과 사회적 논의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어공주》 캐스팅을 보는 순간 영화가 보기 싫어질 수 있다. 그런 느낌은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회사의 잘못을 지적하며 성토까지 할 정도로 비판을 할 때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누리꾼은 ‘내가 싫어하니까, 다들 싫어하니까, 디즈니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주관적 호오와 사회적 시비를 동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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