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젊은 대장암’ 세계 1위 된 이유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6 13: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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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증후군·검사 지연·서구식 때문으로 추정
20~40대라도 심한 복부비만이면 위험도 53% 상승

세계적으로 ‘조기 발병 대장암’이 증가하고 있어 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장암은 50세 이후에 흔히 발병하는데, 조기 발병 대장암은 50세 미만(20~40대)에서 발병하는 대장암을 말하며 흔히 ‘젊은 대장암’이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나라가 젊은 대장암 발병률 세계 1위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미국 콜로라도대 메디컬센터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 의학저널(Lancet)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20~49세 대장암 발생률이 인구 10만 명당 12.9명으로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는 호주(11.2명)나 미국(10명)보다도 높은 수치다. 중장년층부터 젊은 층까지 국내 대장암 발병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서구권 국가보다 한국에서 젊은 대장암 발병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의심되는 원인은 대사증후군이다. 대사증후군은 복부 비만·높은 중성지방혈증·낮은 고밀도콜레스테롤(HDL)·고혈압·공복혈당장애의 5가지 항목 가운데 3개 이상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심장대사증후군학회가 2021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40대 남성의 대사증후군이 급증했다. 30대 대사증후군은 2007년 19%에서 2018년 24.7%로, 40대는 같은 기간에 25.2%에서 36.9%로 늘었다. 30대 남성 4명 중 1명이, 40대 남성은 3명 중 1명이 대사증후군이라는 얘기다. 

대사증후군은 심혈관계질환뿐만 아니라 대장암 위험도도 높인다. 20~40대라도 대사증후군이 있으면 없는 사람보다 대장암 발생 위험이 20%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소화기내과,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공동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대사증후군 상태에 따른 젊은 대장암의 발생 위험을 분석했다. 2009~10년 국가건강검진에 참여한 성인 977만 명의 건강 상태를 2019년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대장암이 발생한 50세 미만 환자 중 대사증후군을 진단하는 5가지 항목이 하나씩 증가할 때마다 대장암 발병 위험도는 7%·13%·25%·27%·50%로 증가했다. 

특히 복부 비만이 가장 강력한 단일 위험인자로 나타났다. 심한 복부비만(허리둘레: 남성 100cm, 여성 95cm 이상)이 있는 경우는 정상인보다 젊은 대장암 위험도가 53%까지 상승했다. 고도비만(체질량지수 30kg/㎡ 이상)에서도 정상인에 비해 젊은 대장암 위험도가 45% 상승했다. 연구팀은 인슐린 저항성·만성 염증·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신호 물질(아디포카인) 등이 대장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진은효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소화기내과 교수는 “젊은 사람의 대사증후군 발생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대사증후군이 있는 고위험군에 대한 적절한 선별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조기 발병 대장암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검사 지연’이다. 국내 대장암 선별검사는 50세부터 권고된다. 2018년부터 5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무료 국가 대장암 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대변에 혈액이 묻어나오는지 확인하는 분변잠혈검사를 매년 시행해 양성이면 대장내시경검사를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들은 대장암을 조기에 진단받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에 비해 많다. 그러나 젊은 층은 비교적 건강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다. 또 혈변·변비·체중감소 등 대장암을 시사하는 증상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층의 대장암 검사 시기가 늦어지고 그만큼 대장암이 진행한 후에 발견한다. 50세 이상 대장암 환자는 첫 증상이 나타나고 첫 진료를 받는 데 평균 29.5일 걸리지만 50세 미만은 평균 217일 걸린다는 미국외과저널의 연구 결과도 있다. 젊은 대장암 치료 성적은 50세 이상의 경우보다 좋지 않은데, 이는 젊은 대장암이 더 독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대장내시경검사 장면
대장내시경검사 장면 ⓒ뉴스뱅크

40대 대장내시경 검사로 사망 위험 낮춰

서구식 식생활도 젊은 대장암이 증가한 한 원인으로 꼽힌다. 대장암은 적색육(소·돼지·양)과 가공육(햄·소시지·베이컨) 섭취와 관련이 있는데, 육류 중심의 서구식을 즐기는 젊은 층에서 대장암 발병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간식이나 야식을 즐기는 식습관도 젊은 대장암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섭취하는 총칼로리가 높으면 대장암 위험도 커진다. 예컨대 술은 칼로리가 높은 식품이어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대장암 위험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섭취하는 칼로리는 많은데 신체활동량이 적은 점도 젊은 층의 특징이다. 대장암 예방을 위해 적색육·가공육·칼로리 섭취를 줄이면서 신체 활동량은 늘려야 한다.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전체 대장암의 약 5%는 부모로부터 돌연변이나 결함 유전자를 물려받아 생기는 유전성 암이다. 이들이 성인이 되면 대부분 대장암에 걸리므로 이른 나이부터 대장내시경검사를 시작해야 한다. 젊은 층은 건강에 자신이 있더라도 대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혈변, 체중 감소, 가늘어진 대변 굵기, 변비, 복통 등의 증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대장암 검사를 받는 편이 이롭다. 박지원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혈변을 보거나 대변 굵기가 가늘어지면 대장암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드물지만 갑작스러운 빈혈과 복통도 대장암 증상 중 하나다. 물론 젊은 나이에는 이런 증상이 있어도 대장암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50대 이상이라면 꼭 검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장암을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는 방법은 대장내시경검사다. 대장내시경검사는 50세부터 시작하도록 권고되지만, 최근에는 45세로 시작 나이가 당겨지는 추세다. 45세 이전이라도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으면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 데이터관리센터와 소화기내과 공동연구팀은 대장내시경검사 연령과 대장암 사망률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2007~17년 건강검진을 받은 건강한 18세 이상 52만8046명을 대상으로 2019년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대장암 사망 위험이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은 경우는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45세 미만에서 53%, 45세 이상에서 48% 감소 효과를 보였다. 

국내에서 젊은 대장암 발생률이 높아지면서 젊은 층에 대한 대장내시경검사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사망 감소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이번 빅데이터 연구를 통해 대장내시경검사가 50세 미만에서도 전반적인 사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박동일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젊은 층에서 대장암이 증가하는 만큼 45세 미만이라도 대장암 위험도가 높은 사람은 선별적으로 대장내시경검사를 시행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발병률과 완치율 모두 높은 두 얼굴의 암

대장내시경검사로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할수록 완치율은 높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은 국내에서 4번째로 많이 발병하는 암이면서도 5년 생존율이 74%로 다른 암에 비해 높다. 대장암은 발병률과 완치율 모두 높아 ‘두 얼굴’을 가진 암으로 통한다. 대장암 완치율을 높이는 치료법은 무엇일까. 대장암 치료법은 암의 위치와 깊이, 림프절 전이, 원격 전이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대장암 치료의 기본은 수술이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는 보조 수단이다. 가령 결장암은 수술과 항암치료가 핵심이고, 직장암은 수술과 항암치료 외에 방사선 치료도 한다. 진행성 직장암이라면 수술 전에 항암 방사선치료를 먼저 시행해 암의 크기를 줄인 후에 수술로 암을 제거하는 순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환자에게 맞는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경우 1기 대장암은 5년 생존율이 93.9%로 매우 높다. 특히 암이 점막에만 국한되고 깊이가 깊지 않을 때는 대장내시경으로도 제거할 수 있다. 2기와 3기 대장암은 수술이 기본 치료다. 4기 대장암은 암의 진행 정도, 전이 위치 등에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긴다. 대장암은 4기라도 수술을 포함한 복합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 5년 생존율을 4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최근에는 로봇 수술로 더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다. 

박윤영 강동경희대병원 외과 교수는 “대장암의 외과적 치료에는 복강경 수술과 로봇 수술이 많이 시행된다. 로봇 수술은 로봇팔과 3D 입체화면으로 확대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손 떨림을 보정하는 기능이 있으며 관절이 있는 기구를 사용해 정밀한 수술에 유리하다. 관절 없이 일자로 만들어진 복강경 기구에 비해 자유도가 높은 팔과 관절이 있는 로봇 기구를 사용하면 특히 좁고 깊은 골반강에 있는 직장을 수술할 때 더 세밀한 치료가 가능하다. 즉 자율신경 보존 및 정확한 조직의 박리로 배뇨 기능이나 성 기능의 저하를 방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생활 속 대장암 예방을 위한 5가지 팁

1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섭취하는 총칼로리가 높으면 대장암의 위험도는 높아진다. 소식과 금주 등으로 섭취하는 총칼로리를 줄일 필요가 있다.

2 음주는 특히 남자 직장암의 위험을 키우고 흡연은 대장 선종과 대장암의 위험도를 모두 증가시키므로 금주와 금연을 실천해야 한다.

3 가공육(햄·소시지·베이컨)과 적색육(소·돼지·양)보다 생선·닭고기 등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4 섬유소 및 칼슘을 많이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5 육체 활동량이 적을수록 결장암의 위험도가 높아지므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은 운동으로 신체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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