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코앞서 ‘무장반란’ 철수…푸틴 리더십 회복불능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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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수장 프리고진 “유혈사태 피하고자 회군”…러 떠나고 처벌 면해
수도 200km 앞까지 내준 푸틴, 지도력에 물음표 지속될 전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각) 긴급 대국민 TV연설에서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에 대해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크렘린궁 제공 영상 캡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각) 긴급 대국민 TV연설에서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에 대해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크렘린궁 제공 영상 캡처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를 불과 200km 앞에 둔 상태에서 반란을 중단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이번 일로 그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격하던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모스크바 코앞에서 협상을 통해 철수를 결정했고,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24일(현지 시각) 스푸트니크,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 전사들의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으나 이제는 피를 흘릴 수 있는 순간이 왔다”며 “어느 한 쪽 러시아인의 피를 흘리는 데 따르는 책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계획대로 병력을 되돌려 기지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국방당국이 바그너 그룹을 해체하려고 했다고도 주장했다.

곧장 벨라루스 대통령실도 “푸틴 대통령과 합의 하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과 협상했다”며 “양측은 러시아 내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의 이동을 중단하고, 상황 완화를 위한 조처를 하라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벨라루스 대통령실은 또 바그너 그룹 소속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합의가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합의가 도출된 후 바그너 그룹은 이날 오전부터 점령 중이던 로스토프나노두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다만 프리고진과 벨라루스 대통령실 모두 애초 바그너 그룹이 요구한 러시아군 수뇌부에 대한 처벌에 합의했는지 여부 등 상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고 협상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고 벨라루스 국영 벨타 통신이 보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입건은 취소될 것이다. 그는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바그너 그룹 병사들도 전선에서 그들이 용감히 싸운 점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 배경에 대해선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추가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며 “유혈사태를 피하는 게 책임자 처벌보다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또 이번 사태가 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한편 미 뉴욕타임스(NYT), CNN 등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이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자신이 믿고 쓴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은 데다, 상황 수습도 자신이 부하처럼 대하던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손에 맡긴 셈이라 이래저래 면을 구겼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이번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진압됐다 하더라도, 그 여파가 당분간 지속돼 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하고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 물음표를 제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리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해 인적·물적 피해와 내부 분열만 키웠다는 비판에 맞닥뜨릴 가능성도 나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는 무너져가는 전선을 지키기 위해 수십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야 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이 발생했다”며 “러시아 내륙 깊숙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일상화하면서 푸틴이 공들여 쌓아온 강인한 이미지에 구멍이 뚫렸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91년 여름 국가보안위원회(KGB)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가 몇 달 뒤 소련의 붕괴를 앞당겼다는 점을 거론하며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로 한 푸틴의 결정은 가장 큰 전략적 실수이자 조만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중대한 실수임이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24일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만에 그들은 백만 단위의 도시 여러 개를 잃었고 모두에게 러시아 도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탈취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드러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인들을 향해 “여러분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더 오래 있을수록 러시아는 더 황폐해질 것이다. 푸틴이 크렘린에 더 오래 있을수록 더 많은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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