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엑시트’ 놓쳤다”…‘쏠림’ 후폭풍 시작된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7.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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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 경고 무시했던 2차전지, 결국 ‘–40%’ 출렁
‘쏠림’ 풀리자 이제야 볕드는 반도체‧빅테크주

‘광기의 K-증시.’ 최근 온라인 주식 토론방에 심심찮게 나오는 평가다. 2차전지주 열풍이 거래대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증시를 출렁이게 했다는 반응이다. 특정 종목의 주가 그래프 기울기가 수직에 달할 정도로 급등락한 터라, 일각에선 “가상화폐 시장보다 변동세가 심하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한다.

시장에선 이미 ‘검은 수요일’이란 말이 통한다. 지난 26일 2차전지주를 중심으로 40% 안팎의 변동성이 나타나면서다. 특정 종목 하나의 사정이 아니라,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POSCO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 등 2차전지 관련주 전반이 한 때 폭등했다가 단체로 폭락했다. 과거 급등한 종목이 하루아침에 하한가를 보인 전례는 있지만, 이처럼 특정 테마에 속한 종목 다수가 30% 이상 변동을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6일 장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에코프로는 오후 1시10분에 153만90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찍었다가, 같은 날 오후 2시에 113만6000원으로 떨어졌다. 불과 50분 만에 고점 대비 저점이 26% 폭락한 것이다. 이튿날인 27일 주가까지 반영하면, 낙폭은 40% 수준으로 더욱 커진다.

형제주인 에코프로비엠과 같은 2차전지 수혜주로 불린 포스코 그룹주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네 종목이 일제히 26일 오전 신고가 랠리를 이어가다 오후 1시 들어 갑자기 폭락세로 돌아섰다. 26일 고점 대비 27일 저점 가격 편차를 계산하면 에코프로비엠 -34%, POSCO홀딩스 -26%. 포스코퓨처엠 -29%에 달한다. 이외 LS그룹주나 금양, 엘앤에프 등 다른 2차전지 테마주 또한 상승세를 이어가다 하루아침에 폭락세로 돌아선 상태다. 그 영향으로 전날 코스닥 시장에서만 1400개 넘는 종목에 ‘파란 불’이 켜졌다.

26일 2차전지주 중심 폭락세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사진은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 26일 2차전지주 중심 폭락세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사진은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 연합뉴스

“나만 벼락거지” 공포감에…‘광기’ 뒤집어쓴 K-증시

이 같은 2차전지주 폭락의 근본 원인은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 꼽힌다. 주가의 수익성 지표를 나타내는 PER 지표를 보면, 전날 포스코퓨처엠 380배, 에코프로비엠 170배, 에코프로 90배, POSCO홀딩스 26배 수준이었다. 특히 에코프로의 경우 일부 증권사가 지난 4월 40만원대 목표 주가로 ‘매도’ 의견을 제시한 이후 현재까지 관련 리포트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다. 2차전지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금양 전 홍보이사조차 과거 한 방송에서 “이익이 증가하는 만큼 올랐다. 이제는 에코프로를 조심하라”고 말한 바 있다.

증권가의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2차전지주가 끝없는 질주를 한 데에는 개미들의 ‘귀환’이 한몫했다.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타고 너도나도 2차전지 테마에 올라타면서다. FOMO는 주식 장세에서 나만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뒤늦게 추격 매수에 나서는 행동을 말한다. 특히 세계 경기 침체 우려로 코로나 기간 쌓아둔 돈이 무려 100조원을 넘었다(한국은행 자료). 그만큼 주식 투자에 쓰일 수 있는 개인투자자들의 ‘총알’이 많았다는 의미다.

여기에 ‘숏스퀴즈’가 발생하면서 주가를 더욱 끌어올렸다. ‘숏스퀴즈’란 주가하락을 기대했던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상승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발 빠르게 주식을 다시 매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때 주가는 급등한다. 기관과 외국인이 팔아치운 물량을 개인이 받아내면서 주가를 끌어올렸는데, 여기에 공매도 투자자들이 추가로 주식을 사면서 시세가 급등하고, FOMO를 느낀 다른 개인투자자들이 추격매수에 나서면서 역대급 주가 상승이 연출됐다는 분석이다. 차익실현을 위해 투매에 나선 개인과 뒤늦게 추격 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이 뒤엉킨 셈이다.

문제는 주식을 계속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차익실현을 위해 팔아야하는 순간이 온다. 개인이 물량을 털어야 시기에 이를 받아줄 주체가 없다면 주가는 떨어진다. 결국 개인끼리 눈치 게임 속 ‘폭탄 돌리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부터 이어진 2차전지주 추락세도 큰손 투자자의 차익 실현을 따라 우르르 ‘팔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국내 증권시장에서 2차전지 관련주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 시사저널
2차전지주에 쏠렸던 거래 대금이 점차 다른 종목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 시사저널

2차전지 고점이냐 아니냐…“당분간 관망이 답”

아직까지 2차전지주의 ‘고점’이 어딘지를 두고서 투자자 사이 논쟁은 분분하다. 40% 이상 출렁이는데도 추가매수를 고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엑시트(차익 실현) 시점을 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당분간 2차전지 종목의 주가 출렁임이 이어질 것이란 예고다.

다만 긍정적인 면은 있다. 2차전지주에 과도하게 쏠린 대금이 다른 종목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지금껏 주춤했던 종목들이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주와 JYP엔터‧에스엠 등 엔터테인먼트주,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바이오주를 중심으로 상승세가 관측된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2차전지 관련 업체들 주가와 함께 주식시장 상황이 급반전됐다”면서도 “변동성 확대가 반드시 추세 반전으로 보긴 어렵다. 주도 업종의 에너지 충전 과정을 대비하면서 소외된 업종(반도체, 소비, 금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시장을 관망하는 게 낫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지난 7월 동안 공매도 포지션 청산이 많이 발생했지만 연이은 주가 상승으로 인한 공매도 신규 진입 또한 늘어나고 있다”며 “8월 주식시장도 여전히 높은 변동성을 가질 수 있어, 단기 수급을 따라가기보다 차분히 산업과 기업의 펀더멘탈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타이밍”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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