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범죄자 재범률 66.7%… 사소한 폭행이 ‘묻지마 살인’으로
  •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4 09: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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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발언 방지법·상습 누범자 출소 후 관리 제도·사법입원제도 등 필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불안이 일상을 조바심 나게 하고 있다. 호신용품이 유례없이 많이 팔리더니, 이제는 강남역 사거리에서 장갑차까지 볼 수 있다. ‘정의로운 세계(Just World)’라는 우리 맘속의 전제는 이제 성립하지 않게 됐다. 피해자에 대한 책임론으로써 애써 내 목전에서도 인접한 범죄 피해를 외면해 왔던 무관심이 ‘묻지마 범죄’로 인해 구체적으로 체감되는 두려움이 됐다. 경찰청 지칭 소위 ‘이상동기 범죄’는 피해자들의 행동거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범죄로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 공포를 유발하고 있다.

법무부와 경찰청은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 예고에 대해 엄벌주의로 단죄하기로 기조를 정했다. 하지만 이상동기 범죄자들이 과연 엄벌주의적 형사정책으로 충동적 돌발행위를 억제할 것인가? 특히 편집증적인 사고장애에 기인해 비합리적인 일을 반복하는 정신병적 증상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이런 형사사법적 경고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의문이다. 물론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나 반사회적인 피해의식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적대감을 키워온 구성원들이 갑자기 친사회적 대응을 할 리 없다. 그보다는 온라인 세상에서 아예 반사회적 스피치를 통제할 수 있는 ‘혐오발언 방지법’을 입법해 이들의 반사회성이 외현화하기 전에 억제토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일면식도 없는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구속된 조선이 7월28일 서울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

美·日 ‘외로운 늑대’와 닮은 韓 ‘묻지마 범죄’

무슨 일이든 벌어지고 난 다음보다는 예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신림역도 서현역도 북적이던 인파가 끊겼고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흉악범죄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오기 전에 막는 것이 상책이리라.

우리나라의 흉기난동 사건과 가장 흡사한 미국의 ‘외로운 늑대형 테러’ 사건은 총기를 이용해 벌어진다. 오늘날은 하루에도 몇백 명씩 총기난사로 사망하고 있으나 1980년대에는 미국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였다. 수십 년 전 벌어진 최초의 외로운 늑대형 총기난사 사건은 세릴(Sherill)이란 자에 의해 우체국에서 벌어졌다. 그때는 우연히도 지금과 같은 8월이었고 그는 우편물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피해의식이 발생했고 그것이 관리되지 않은 끝에 동료 직원들을 향한 총기난사가 벌어졌다. 당시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총기 규제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었지만 개인의 신변보호권도 무시할 수 없다는 논리에 막혀 총기 규제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총기규제법이 의회에서 다시 논의됐던 시점은 오바마 정부 때다. 이때도 방산업체들의 입법 방해 로비로 인해 입법이 불발됐고 오늘날의 ‘위험사회’로 거침없이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경우는 2000년도 경제 버블이 가라앉으면서 외톨이, 일명 히키코모리 범죄자들의 흉기난동 사건이 종종 발생하게 됐는데 엄벌주의만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총격 살인 사건과 기시다 총리에 대한 사제 폭발물 투척 사건은 일본의 테러 방지 대책이 난맥상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두 사건 모두 외톨이 단독범들이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는데, 아베 전 총리 살해범인 야마가미 데쓰야나 기시다 총리에 대한 폭발물 투척 용의자인 기무라 유지는 모두 반사회적인 부적응자들로 확인됐다. 이렇게 외톨이 단독범들의 테러 사건이 잇따르자 일본 경찰은 사이버 수사 등을 통해 범죄 위험도가 높은 인물들의 정보를 공안 담당자에게 넘겨 조기 대응할 수 있게 AI 치안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은 1980년대, 일본은 2000년대 정도부터 시작된 외로운 늑대들의 출현과 최근 우리나라의 묻지마 범죄의 추세는 맥을 같이한다. 이는 사회구조적인 해체가 매우 빨리 일어나면서 적응에 실패한 구성원들의 소외가 심각해지는 시기에 폭발한다. 여기에 정신적인 취약성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의 부재와 출소한 누범자 증가 등으로 공공 안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면 아주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사이버공간에서 만연하는 혐오주의 방치는 촉매 작용을 일으킨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부족하지만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상습누범자들에 대한 출소 후 관리가 필요하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경우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가석방 없는 종신제를 도입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보호수용제도로써 대신하는바, 두 제도의 가장 큰 차이는 가종료로 사회복귀가 되느냐 여부다. 종신제로 인한 부작용으로 도입을 철회한 이탈리아의 경우 교도소 내 종신범들의 관리상 어려움이 철회 이유였다고 한다. 어차피 ‘이번 생은 끝’이란 생각이 위험한 누범자들의 여러 가지 시설 내 질서 훼손 행위를 유발했다고 알려진다.

8월10일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인 최원종(22)이 얼굴을 드러낸 채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최원종은 “피해자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으나 조직스토킹 이야기를 하는 등 피해망상 증세를 여전히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8월10일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인 최원종(22)이 얼굴을 드러낸 채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최원종은 “피해자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으나 조직스토킹 이야기를 하는 등 피해망상 증세를 여전히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반사회적 스피치 통제 위한 ‘혐오발언 방지법’

또 다른 요인은 병식이 없는 편집증적 피해망상을 가진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문제다. 국내 범죄 통계는 형사범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정신보건복지법으로 병원 입원이 어렵게 되자 형사사법제도로의 편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2018년 총 범죄 건수에서 정신질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0.46%였던 것이 2021년 0.62%까지 늘어난 데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갑작스러운 퇴원이 이유가 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재범률인데, 66.7%가 전에도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안인득의 진주 방화 사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처음에는 사소한 폭력행위를 하던 것이 치료 없이 방치돼 묻지마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상이 확인된다. 따라서 현재 법무부에서 준비 중인 ‘사법입원제도’는 치료를 강제할 수 없는 정신보건복지법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법무행정으로 지원 가능한 제도 외에도 사회적 부적응이 시작된 청소년이나 청년층에 대한 정신보건적 예방책도 필요한데, 일본의 ‘히키코모리 서포터즈’ 제도를 참조하면 도움이 되겠다. 

그러고 나서는 교육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 친사회적 규범은 중등교육 중 깊숙이 체득돼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현재의 교육적 난맥상을 꼭 해결해야 하는데, 이 문제만큼은 전 국민의 관심이 꼭 필요하다. 부디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열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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