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공 75위’ 대우산업개발은 어떻게 법정관리까지 신청하게 됐나
  • 박성의·이민우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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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력·이력’ 내세워 대표 올랐다 비위 드러나자 회사까지 삼키려 한 한재준 전 대표
법적 절차로 시간 끌며 회삿돈 빼돌려…신용도 추락한 회사는 결국 기업회생 신청

[편집자주] 5000억원대 매출과 시공능력평가 75위를 기록했던 대우산업개발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지난 8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이다. 결국 법정관리를 받게 될지, 문을 닫게 될지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대우산업개발은 최근 건설업계 불황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정관리까지 신청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른 건설사와 달리 대우산업개발 만의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표면적으론 공통적으로 대주주와 전직 대표의 갈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른바 경영권 분쟁 프레임이다. 그러나 지난 1년여 간 대우산업개발의 문제를 취재하면서 ‘갈등’ ‘분쟁’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표현하기엔 적절치 않아 보였다. 사실상 한재준 전 대표(이하 한씨)는 자신의 비위 행위가 드러나 쫓겨날 위기에 몰리자 경영권 분쟁 프레임을 씌운 뒤 법적 절차를 밟으며 회삿돈을 불법적으로 빼갔다. 심지어 인감증명서를 수십 장 발급받아 회사에 ‘회계의견 거절’이라는 치명상을 안겼다. 이로 인해 회사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신용도 추락으로 채권 연장이 안 되면서 매출 5000억원대의 건설사는 결국 법원 문을 두드리게 됐다. 도대체 이 회사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우산업개발은 2011년 12월 대우자동차판매의 건설부문이 분할 설립해 출범한 회사다. 경영 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2015년 이상영 회장이 지분 100% 소유한 신흥산업개발에서 인수했다. 그리고 대표이사로 내세운 인물이 한씨였다. 대우산업개발이 새 주인을 찾은 이후 회사는 빠르게 안정화됐다. 굵직한 아파트 건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최근 3년간 매출액도 4000억~5000억원대를 기록했다. 미회수 채권 손실 발생으로 충당금을 설정해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를 제외하곤 꾸준히 100억~200억원의 당기순이익도 기록했다.

서울 중구 와이즈타워에 입주한 대우산업개발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중구 와이즈타워에 위치한 대우산업개발 서울사무소 ⓒ시사저널 박정훈

한재준은 어떻게 대우산업개발을 무너뜨렸나

성장하던 회사에 돌발 변수가 생긴 건 지난해였다. 지난해 4월 대우산업개발은 분식회계 의혹으로 사정당국의 압수수색을 받게 됐다. 이로 인해 한씨에게 수상함을 감지한 대주주 이 회장은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결국 내부 감사를 통해 한씨의 허위 학력과 허위 이력, 회사 재직 시절의 비위 행위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씨는 회사 자금으로 고급 빌라를 매입했다.(《가짜 이력으로 대우산업개발 CEO까지…‘두 얼굴’ 한재준의 실체》2022년 12월 26일자 시사저널 보도 참조) 룸살롱 출신 여성에게 법인카드를 제공하고 3억원대 슈퍼카를 선물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법카 펑펑, 대표이사엔 “오빠”… 룸살롱 마담에 발칵 뒤집힌 대우산업개발》2022년 12월21일자 조선일보 보도 참조)

그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 개인의 비위에 집중됐다면, 그 이후 한씨의 대응은 회사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혔다. 한씨는 조용히 물러나 달라는 이 회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법적 분쟁을 일으켰다. 한씨의 사람들로 채워진 이사회가 그 무기였다. 자신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한 이사회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직무에서 배제됐던 한씨는 가처분 결정을 무기로 회사 계좌 OTP를 새로 발급받고 법인 인감을 교체한 뒤 수억원의 현금을 자신의 계좌로 빼갔다. 대우산업개발은 소송 끝에 ‘한씨에 대해 회사 재산 등을 소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한씨는 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회사 계좌에 있던 4억5000만원을 보란 듯이 빼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상황을 경영권 갈등 프레임에 가뒀다. 그는 대우산업개발의 경영권을 뺏기 위해 ‘대우산업개발 대주주인 신흥산업개발의 실소유주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각종 소송을 걸었다. 동시에 이 회장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그는 사정기관을 찾아 대우산업개발의 분식회계를 이 회장이 지시했다고 주장하거나, 이 회장이 경찰 간부에게 뇌물을 줬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대표이사가 제보한 회장의 비위는 뜨거운 주제였고, 대우산업개발과 이 회장은 점차 수세적 입장에 처하게 됐다. 언론에는 ‘대우산업개발 분식회계 의혹’ ‘이상영 회장 뇌물 의혹’이라는 자극적 표현이 남발됐다.

한씨는 회사의 법인 인감증명서를 수십 장 발급 받기도 했다. 인감증명서 사용처를 증명하라는 회계법인의 요청을 묵살해 대우산업개발은 ‘회계 의견 거절’을 받게 됐다. 은행 대출을 통해 공사를 진행하고 분양대금을 받아 운영되는 건설사에게 ‘회계 의견 거절’은 치명타였다.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사정당국의 압박까지 받은 금융기관들은 대출 연장을 거부하고 채권 회수에 나섰다. 대우산업개발은 끝내 몰려오는 채권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기업 회생을 신청하게 됐다.

한재준씨(왼쪽)가 2021년 대우산업개발 측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UCLA 졸업, 맥킨지 근무 등의 이력이 적혀 있다. ⓒ대우산업개발 제공
한재준씨(왼쪽)가 2021년 대우산업개발 측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UCLA 졸업, 맥킨지 근무 등의 이력이 적혀 있다. 취재 결과, 학력과 이력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대우산업개발 제공

한재준의 거짓말, 그리고 숨겨진 진실

매출 5000억원의 회사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한씨의 가장 큰 무기는 ‘거짓’이었다. 한씨는 학력과 이력을 허위로 꾸며 이 회장에게 다가갔다. 급기야 이런 의혹을 제기한 시사저널 보도 이후 한씨의 전 부인까지 연락해 와 한씨의 거짓 인생을 증명해 줬지만 한씨는 압인까지 찍힌 미국 UCLA 대학의 성적증명서를 보내왔다. 해당 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UCLA 대학에 직접 문의한 결과, 위조된 문서라는 답변을 받았다.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질 법한 위조 서류로 언론과 사법부까지 속이려 한 것이다. 보도 이후 그가 몽골 유학생을 모집한 뒤 입학금을 탕진한 혐의로 구속됐던 과거 이력까지 추가로 확인됐을 뿐이었다.

그의 거짓말은 지난 9월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직후 소송전을 벌이며 정점을 찍는다. 한씨는 자신의 대표이사직 해임을 막기 위해 ‘대주주인 이 회장의 지분이 사실은 본인 것이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모든 지분은 이 회장 것’이라고 말한 통화 녹음 파일이 존재했지만, 이를 정체 불명의 파일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6월이 돼서야 법원은 한씨의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할 수 없고, 이 회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내놓는다. 올해 6월까지 이 회장 측은 한씨의 해사 행위를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한씨의 거짓말로 주주권이 제한된 6개월 동안 회사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셈이다.

한씨는 경찰과 검찰을 찾아 과거 대우산업개발 분식회계도 이 회장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 회장이 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 공무원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줬다고 주장해 공수처 수사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회사 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또한 한씨의 거짓 주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복수의 대우산업개발 임직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 회장은 한씨의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경영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회의를 개최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회사 체육대회나 등산행사 등에 몇 차례 참석했을 뿐이었다. 2015년 회사를 인수한 이후 한씨에게 속아 배당을 받은 적조차 없었다.(이 회장 측의 주장에 따르면, 한씨는 이 회장이 배당을 받으면 세금을 많이 물게 되니 회사에서 대여금을 받아 쓰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이를 지시했다면 이를 통해 이 회장이 얻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 연결고리가 증명되지 않고 있다.

한 때 한씨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한 현직 임원은 “현재까지도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는 분식회계 혐의가 어떤 내용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회계법인 관계와 한씨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만약에 대우산업개발의 회사 실적이 부풀려졌다면 누가 이득을 봤는지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씨는 회사 실적이 좋아지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그의 연봉은 2016년 3억원에서 2022년 13억원으로 6년 사이에 10억원이나 올랐다.

이처럼 한씨가 현 경영진과 회사를 상대로 제소한 사건만 20여 건이 넘는다. 현 경영진 모두의 법인카드 사용에 대해 업무상 횡령이라고 고소하기도 했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 등이 언론에 보도되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고발 내용이 너무 많아서 회사 측에서 여전히 어떤 내용인지 여전히 파악 안 된 내용조차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회사 경영진들은 피고소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미 불송치 결정이 내려진 사건도 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 더 많다. 여전히 첩첩산중이라는 얘기다.

대우산업개발 직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한재준 전 대표이사의 자택 앞에서 불법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대우산업개발 직원들이 지난 1월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한재준 전 대표의 자택 앞에서 불법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한재준에 속아 회사 붕괴의 ‘조연’이 된 사정당국

한씨의 거짓말은 지난해 12월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 대우산업개발의 분식회계를 수사하던 경찰도 보도 이후 한씨의 실체를 파악했다. 보도 전까지 한씨를 ‘공익제보자’로 여겼던 경찰은 그를 ‘공범’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잘못이 있다면 대주주와 대표이사 모두 공모했을 것이란 심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수사의 초점은 ‘월급쟁이 대표이사’보다 ‘회장님’에게 더 쏠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씨가 회삿돈을 마음대로 빼갈 때에도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세 차례나 신청됐다. 앞선 두 차례는 검찰의 보완수사 지시로 기각됐고, 한 번은 검찰을 통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사이 한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여전히 청구되지 않았다.

검찰이나 공수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씨의 증언을 근거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에 집중했다. 그간 수차례 대우산업개발과 이 회장 자택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공수처는 지난 2월 한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대우산업개발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4월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 회장 측이 제시한 서류에 따르면, 2023년 4월13일 이 회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던 검사는 “수색한 결과, 증거물 또는 몰수할 물건이 없음을 증명합니다”라는 증명서를 제시했다. 이후 약 보름 뒤인 4월28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또 대우산업개발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공수처는 7월11일 또다시 관계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그럴 때마다 언론에선 ‘대우산업개발, 분식회계 혐의로 압수수색’ ‘대우산업개발 회장, 뇌물 혐의로 압수수색’이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물론 대우산업개발 측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한씨의 해사 행위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한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회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끼친 손해를 회수하기 위해 113억원 규모의 한씨 재산에 가압류도 걸어 놨다. 보도될 때마다 “그런 사실이 없으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해 무혐의를 밝혀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귀 기울이는 언론사는 없었다. 결국 회사는 사법적 판단을 받기 전까지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것처럼 비쳐졌고, 결국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한씨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 회장은 “경영에 대해 잘 몰랐고, 한재준에게 속아 대표이사를 시킨 내 잘못이 크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처벌 받겠다”면서도 “한재준의 거짓 주장으로 사정당국의 수사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회사가 짊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승재 대우산업개발 부대표도 “기업회생 신청 이후 수많은 협력업체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지만 하소연을 들어만 줄 수 밖에 없다”며 “한씨의 개인 욕심이 회사와 450명의 직원, 하청업체까지 모두 힘들게 만든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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