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국민이 버텨주는 나라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1 08: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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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류의 공무원이 있었다. 한쪽은 한국에서 열릴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앞두고 과거 개최지들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해외에 나갔던 공무원들이다. 그 중 일부는 국민 세금을 들고 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흥민이 출전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직관했다. 또 일부는 잼버리 대회를 전혀 개최해본 적이 없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가 마음껏 관광을 즐겼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올여름 잼버리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분투한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대회 막바지에 자신의 고유 직무와 상관없이 동원돼 전국 각지로 산개된 대회 참가자들의 버스 탑승, 일정 안내 등을 도왔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8월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을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8월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을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잼버리 세계대회가 남긴 오점은 하도 많이 알려져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초창기부터 이어진 부실 운영은 돌이켜보기조차 싫을 만큼 끔찍했다. 특히, 당시 나타난 잘못들이 대부분 생명 안전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서 조기 퇴영을 결정했던 영국 스카우트 연맹의 대표는 그에 대해 “햇빛을 피할 그늘의 미비, 식이요법이 필요한 참가자들을 위한 음식의 부족, 열악한 위생 상태, 충분치 못한 의료 서비스 등 4가지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불편한 기억들을 안고 참가자들은 태풍까지 겹친 상황에서 예정된 날짜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야영지를 떠나야 했고, 그 순간 스카우트를 상징하는 두터운 배낭은 빛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스카우트 체험이라는 고생을 사서 한 그들이라도 그처럼 예기치 않은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막바지에 이르러 총력을 기울인 정부는 마지막 일정인 K팝 콘서트의 성공적 개최로 유종의 미는 거두었다며 자화자찬했지만, 그런 ‘정신승리’ 방식으로 모든 잘못을 감싸 덮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대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정부의 필사적 노력이나 K팝 콘서트가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은 따로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수습을 위해 기꺼이 구슬땀을 흘린 시민과 민간 기업이 그들이다. 대회 현장에서 화장실 청소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묵묵히 도운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나, 퇴영한 대원들의 남은 일정을 위해 교육·연수시설을 제공하고 음식·물품 등을 지원한 기업들의 노력은 아무리 칭송해도 모자랄 판이다. 또 대원들에게 할인을 해주고 심지어 공짜로 케이크 등을 나눠주기까지 한 일부 가게의 온정도 잊기 어렵다. 막판에 태풍이 들이닥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콘서트 무대를 세우느라 고생한 노동자들과, 바쁘게 출연진을 끌어모아 라인업을 구성한 방송 관계자들의 노고 또한 빠트릴 수 없다. 그런 애씀이 있었기에 한 외국 참가자의 부모 입에서 “딸은 한국인들이 믿을 수 없도록 친절하다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사과하고,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알려줬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터다. 결국 정부와 대회 조직위원회, 지자체가 벌려놓은 틈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잼버리는 끝났고 이제는 반성과 책임의 시간이다. 이 시간만큼은 애초에 대회를 기획한 전 정권 인사들이든, 그 계획을 실행한 현 정권 인사들이든 그 부끄럽고 쓰라린 기억 앞에서 단 한번이라도 겸허하고 솔직해지기를 다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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