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사이코패스의 모든 것
  •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5 10: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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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요인·선천적 뇌기능·성장 환경 등 세 가지 요인이 공격성 발현의 필요충분조건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1920년대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개념으로, 한국에서는 2004년 20여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시작으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살인 같은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무엇보다도 언론이나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경찰마저도 온통 범인의 사이코패스 여부에 관심이 집중될 정도로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런 관심과 현실이 바람직한 것인가.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사이코패시(Psychopathy)가 이 잔인한 범죄의 원인으로 비춰지도록 만들기도 해 구조적이나 사회환경적인 요인들을 도외시하거나 배제하는 우를 범할 수 있게 한다고 우려를 표한다. 사실 진단검사를 하는 주목적은 범죄자의 범행 동기나 인격적 특성 등을 파악해 그를 교화·개선하고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20개 문항에 대해 각 2점씩 40점 만점으로 검사해 보통 25점 이상을 사이코패스로 판단하고 있는데, 24점과 25점, 단 1점 차이로 누구는 사이코패스로 진단하고 누구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면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가.

더 근본적인 의문은 ‘과연 사이코패스는 존재하는 것인가’이다. 있다면 한국형 사이코패스는 서구의 사이코패스와 다른 점이 있을까. 이 문제에 비판적인 전문가들도 사이코패스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능검사로 알려진 IQ 검사 도구가 미국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구성돼 소수인종과 하위계층에는 편견과 차별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처럼 ‘서양 사회의 문화와 사람들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구성된 검사와 그 결과물들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돼도 괜찮은가’라는 점이다.

유영철 ⓒ시사저널 임준선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 강호순 27점-정유정 28점-유영철 38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부유층 9명을 살해한 정두영, 부유층 노인과 여성 20명을 살해한 유영철,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정남규 등을 포함한 다수의 강력범죄자 중에 미국과 영국식 검사 기준에 부합되는 ‘살인 자체에 쾌감과 희열을 느꼈다’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는 별로 없다는 어느 실무 전문가의 증언도 있다.

반대로, 일부에서는 진단을 통해 강호순이 ‘묻지마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전형적인 쾌락 추구형 살인범이라는 분석이 나왔다는 등 유용성도 적지 않다고 반박한다. 참고로 지금까지 대표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알려진 사람 중에서, 최근 여성을 무자비하게 돌려차기한 남성 피의자가 27점,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27점, 최근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이 28점, 아동 성폭행자 조두순이 29점, 계곡에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은해가 31점, 그리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무려 38점이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에 관해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만큼이나 궁금해할 수 있는 것이 아마도 그들은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가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편도체와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 정도에 그쳐 도덕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색질이 현격히 적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들이 선천적으로 태어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유전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 소위 전사 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높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선천적 요인만으로 사이코패스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명한 뇌과학·신경과학자인 팰런 박사는 자신의 뇌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에 가장 유사하다는 사실을 연구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 그는 유전적 요인과 선천적 뇌기능, 그리고 성장 환경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공격성 발현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사이코패스 성향과 기질이 공격성으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영철과 정남규가 해체된 가정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은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다.

이은해 ⓒSBS 방송 화면캡처
이은해 ⓒSBS 방송 화면캡처
이은해 ⓒSBS 방송 화면캡처
조두순 ⓒ시사저널 임준선
이은해 ⓒSBS 방송 화면캡처
정유정 ⓒ연합뉴스
이은해 ⓒSBS 방송 화면캡처
강호순 ⓒ연합뉴스

사이코패스, 오히려 합리적이고 이성적

또 하나, 우리가 흔히 혼돈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모든 사이코패스는 다 정신병자(psychotic)인가 하는 의문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신병은 질병이지만 사이코패시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고 그 특징도 정신병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정신병자와는 달리 사이코패스는 대체로 합리적이며 망상에서도 자유롭고 주위 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범행 때에도 법의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알며, 당연히 범죄에 대한 옳고 그름도 알고 있으며, 정신병자가 현실감을 상실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반면에 사이코패스는 대부분의 경우 대체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른 장애와 같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장애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인격의 문제라는 점에서 질병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이코패스에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마도 사이코패스와 범죄를 거의 동일시하거나 적어도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마는 아니며, 모든 살인범이 사이코패스도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다수의 사이코패스가 폭력적 개연성이 높게 나타나는 기질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테드 번디나 존 웨인 케이시 같은 연쇄살인범들이 극단적 폭력성을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대다수 사이코패스는 폭력적이지 않다는 점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이코패스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전 국민의 약 1% 미만이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성공한 기업인들에게서는 이 비율이 무려  4%까지 올라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교도소 수형자 다음으로 높은 수치라고 하는데, 호주의 본드대학교가 미국의 최고경영자 1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는 21%가 적어도 임상적으로는 강력한 사이코패시 특성을 보였다고도 해서 더욱 놀라게 했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범죄자도 있지만 팰런 박사처럼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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