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 학부모’ 파장…서이초 사건 ‘수사 축소’ 논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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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사건’ 가해학생 母, 경찰청 소속 경위로 파악
교사에 밤 9시 “억울하다” 취지 문자 보내기도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7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한 20대 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근무하던 20대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한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경찰 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른바 '연필 사건' 중심에 있는 학부모가 현직 경찰과 검찰 수사관 부부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유족 측은 일기장 내용 유출을 포함한 경찰 초동 대응부터 수사 전반에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23일 유족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 A(24) 교사는 연필 사건 당일 가해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연필 사건은 7월12일 A 교사 학급에서 한 학생이 자신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려는 상대 학생을 막는 과정에서 이마에 상처를 낸 것으로, 이 일로 A 교사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부모 양측과 수 차례 전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교사와 주로 연락을 주고 받은 가해 학생 어머니 B씨는 현직 경찰관으로 경찰청 본청에 소속된 경위로 알려졌다. 학생의 아버지는 검찰 수사관으로 재직 중이며 연필 사건 이튿날 학교를 방문해 교사와 면담을 가졌다.

 

"'하이톡' 통해 경찰 신분 드러내부담·압박으로 작용했을 것"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문유진 변호사에 따르면, 연필 사건 이전인 지난 5월께 B씨가 이미 하이톡(업무용 메신저)을 통해 교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연필 사건 발생 후 B씨는 오후 9시가 넘은 시각에 교사의 휴대전화로 '1번, 2번, 3번, 4번' 항목을 정해 "억울하다"는 취지로 자신의 자녀가 일방적 가해자로 몰리는 데 대해 항변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가해 학생 학부모는 교사에게 '살짝 억울한 면이 있다'면서 자녀의 평판이 걱정되니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연락해 달라고도 했다. 이에 피해 학생 부모는 반발했고, A 교사가 배석한 가운데 가해 학생 부모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연필 사건으로 이틀에 걸쳐 양쪽 학부모와 연락을 해야 했던 A 교사는 지난달 13일 자신의 모친에 '너무 힘들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족 측은 '경찰 신분'을 드러낸 가해 학생 모친의 민원이 A 교사에게 상당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로부터 닷새 뒤 A 교사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꾸민 교실 내 작은 공간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서울 서이초등학교에 근무하다 극단 선택으로 사망한 교사(24)의 유족 측이 공개한 고인의 생전 모습 ⓒ 유족 측 네이버 블로그 캡처
서울 서이초등학교에 근무하다 극단 선택으로 사망한 교사(24)의 유족 측이 공개한 고인의 생전 모습 ⓒ 유족 측 네이버 블로그 캡처

A 교사 사망 후 경찰은 연필 사건에 관련된 학부모들을 불러 조사하고 교사의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포렌식해 학부모들과 온라인 및 유선으로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을 분석했다. 현직 경찰인 B씨 역시 경찰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인물이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까지 참고인 조사를 받은 4명의 학부모 중 입건된 사람은 없으며, 악성 민원이 교사 사망에 영향을 끼쳤다는 범죄 혐의점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들을 만나 학부모들이 A 교사 개인번호로 전화를 건 기록이 없고, 반대로 A 교사가 먼저 전화를 건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일부 학부모가 A씨에 '선생 자격이 없다'는 등 폭언을 했다는 동료 교사의 제보도 있었지만 경찰은 폭언과 갑질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도 가세 "경찰 발표, '검경 가족' 감춰주려던 기만극?"

유족은 사건 초기 A씨 일기장 일부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한 언론에 유출된 점, 이로 인해 개인적 사유로 극단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확산한 점, 일기장 유출 경위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점, 수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교사가 먼저 연락했다'는 부정확한 내용을 발표한 점 등을 지적하며 '수사 축소' 또는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건 중심에 있는 연필 사건 학부모가 현직 경찰이라는 점이 수사 전반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유족 측 입장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연필 사건 학부모의 정확한 직업은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학부모가 수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위치에 있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며 부실 수사나 의도적 사건 축소는 없다고 반박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서이초 '연필 사건' 가해 학부모가 현직 경찰과 검찰 수사관으로 밝혀졌다"며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던 경찰 발표는 '검경 가족'을 감춰주려던 기만극이었나"고 쏘아붙였다.

박 대변인은 "세상을 떠난 교사의 억울함을 밝혀야 할 경찰이 국민적 비난을 피하려고 가해 학부모를 숨겼다니 충격적"이라며 "사건 해결에 경찰 명운이 달려있다는 각오로 조사에 나서주길 바란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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