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 고갈, 연금으로만 풀 수 없다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2 11: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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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도 개선 시나리오도 목표 달성에 못 미쳐…저출산·고령화 등과 연계한 해법 고민해야

국민연금 개혁 방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9월1일 제5차 재정계산 공청회를 개최하고 연금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노동계, 경영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한 최종안이 마련되면, 대통령 승인을 거쳐 10월말 국회에 보고되고 공시된다. 어떻게 봐야 할까.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이 9월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재정 안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제도로는 32년 후 연금 고갈

먼저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현행 제도로는 지속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말 최종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의 추계 결과에 따르면 제도 개선이 없을 경우 32년 후인 2055년, 적립기금이 소진된다. 기금 소진으로 인해 보험료만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보험료율은 2055년 26.1%, 2080년 34.9%까지 올라간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민연금법 제4조, ‘국민연금 재정계산 및 장기재정균형 유지’ 조항이다. 복지부 장관은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재정 전망과 연금보험료 조정 및 기금운용계획 등이 포함된 연금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003년 처음 실시됐고, 올해가 다섯 번째다.

이번에 발표된 제도 개선 방안은 재정계산 기간 70년 동안, 즉 2093년까지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2023년 현재 20세인 가입자의 평균수명 기간 동안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지급개시 연령을 이연하며, 기금운용 수익률도 제고하겠다는 방안이다.

연금 보험료율부터 살펴보자. 지난 20년간 유지돼온 기준소득의 9%인 현행 보험료율을 12%, 15%, 18%로 인상하는 방안으로, 2025년부터 각각 5년, 10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63년, 2071년, 2082년 등으로 어느 방안도 2093년까지 기금 소진을 막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지급개시 연령은 2033년부터 65세로 예정돼 있는데, 이를 2038년부터 5년마다 1세씩 68세까지 늘리는 방안이다. 66세, 67세, 68세 이연에 따른 예상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57년, 2058년, 2059년 등으로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기금 운용수익률도 연평균 0.5%p, 1.0%p 높이는 방안인데, 이 경우 예상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57년, 2060년 등으로 연장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하나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세 방안을 조합할 수밖에 없다. 경우의 수는 18가지(3×3×2)다. 이 중 목표 달성이 가능한 조합은 ‘15% 인상, 68세, 1%p 상향’ ‘18% 인상, 68세’ 또는 ‘18% 인상, 1%p 상향’ 등이다. 수익률 제고는 다른 방안과는 달리 달성이 불확실하므로 사실상 ‘18% 인상, 68세’ 방안 하나가 제안된 셈이다.

당장 반발이 일었다. 연금 본래의 취지인 노후소득 보장 강화, 즉 소득대체율 인상 방안이 제외된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견을 가진 재정계산위 일부 위원이 사퇴했고, 공청회 현장에서는 노조 대표가 이의를 제기했으며, 국회 연금개혁특위도 소득보장 강화 방안이 추가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을 통해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제도로, 2028년 이후 가입기간 40년 기준, 40%를 설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에는 70%였지만, 재정 안정을 위해 1997년 60%로 낮췄고, 2007년에 현행 비율로 결정했다. 문제는 가입기간이 40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실질 대체율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연합뉴스
9월1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민간전문위원에서 사퇴한 남찬섭 동아대 교수가 사퇴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보험요율, OECD 국가 중 가장 낮아

어떻게 해야 하나. 소득보장 강화와 재정 안정은 정확히 상충되므로 정답은 없다. 재정계산위에서 검토됐다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안의 경우, 2093년 연금 소진 방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음은 너무도 명확하다. 가장 센 조합인 ‘18%, 68세, 1%p’로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현 수준 유지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비교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 9%는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의무(mandatory)연금 기준 기여율은 OECD 35개국 평균이 18.2%이고 프랑스 27.8%, 스웨덴 22.3%, 독일 18.6%, 일본 18.3%, 칠레 12.8%, 미국 10.6% 등으로 나타난다. OECD 기준 평균 소득대체율(세전)은 대체로 연금 기여율과 같은 방향이다. OECD 평균이 51.8%이고 프랑스 60.2%, 스웨덴 53.3%, 독일 41.5%, 일본 32.4%, 칠레 31.2%, 미국 39.2% 등이다. 우리나라는 31.2%로 매우 낮은 편이지만, 기여율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다. 다시 말하면, 내는 것에 비해 많이 받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연금을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 언젠가 누군가는 개혁해야 하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소득대체율을 고정시키고 보험료율을 높일 것인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동시에 높일 것인가. 두 번째 선택을 한다면 연금 선진국과 같은 20%대 보험료율을 감수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율을 고려한다면 더 높아져야 할 수도 있다.

사실 연금 문제를 연금재정 관점에서만 접근할 경우 해법이 제한된다. 연금 자체를 벗어나 좀 더 큰 틀에서 미시 정책과 거시 정책이 종합적으로 강구될 필요가 있다. 초저출산 대책, 이민 정책, 성장 정책, 노동 정책 등을 통해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종합 처방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현역 세대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살찌우는 것이, 은퇴 세대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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