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회담, 한·미·일 협력 반작용…‘한국형 좌표’로 대응해야” 
  • 김종일 기자·이승주 인턴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5 15:05
  • 호수 17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 사무총장(前 주러시아 대사)
“한·미·일-북·중·러 신냉전 구도 심화하면 북핵·평화·통일 해결 요원”
“시험대에 선 한국외교…미·중·러에 대처할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 제시해야”

“엄중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상황은 한국전쟁 이후 최고로 어렵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고도화됐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관계는 사상 최악이다. 미·중, 미·러, 남북 관계 모두 최악이다. 한·미·일 공조가 강화됐지만, 그 이유로 북·중·러와의 대결 구도가 뚜렷해졌다. 지금 우리는 ‘냉전시대의 길’로 되돌아갈 것인지 아닌지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4년5개월 만의 정상회담이 열린 9월13일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 사무실에서 위성락 사무총장을 인터뷰했다. 위 총장은 북·러 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북·중·러의 밀착을 한·미·일 협력의 반작용으로 평가하며, 지금 우리 앞에는 한·미·일 협력의 시대와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가 함께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캠프 데이비드의 3각 공조 강화는 한국 외교의 전환점이 됐고, 그렇게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섰다는 것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군사 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고 분석한 위 총장은 최근 한반도를 단층선으로 신냉전 구도가 뚜렷해지는 상황에 우려를 표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걷고 있는 길의 방향에 대한 동의를 나타내면서도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이 심화하면 한반도가 안고 있는 북핵·평화·통일이라는 과제 해결은 요원해진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미국·일본과의 공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미·중·러에 대한 통합되고 조율된 외교 방안인 ‘한국형 외교안보 좌표’를 내놓을 것을 제언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북·러 공조 움직임, 일시적 이벤트라고 볼 수 없어”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양측의 어떤 이해가 닿았던 걸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제재와 고립에 갇혔고 활로를 찾아야 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상황이다. 양국은 미국의 패권주의와 적대 정책의 피해자라는 인식도 강하다. 그래서 이미 서로에게 접근하는 기류가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폭제가 됐다. 러시아는 북한에 포탄과 로켓 등 무기를 얻을 수요가,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식량과 에너지를 조달할 유인이 충분했다. 여기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의 맞대응 차원이 더해졌다.”

북·러가 재래식 무기와 첨단 군사기술을 주고받는 거래에 나섰다.

“일정하게 예고됐던 장면이기도 하다. 이번 회담은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렸다.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다. 왜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는지 생각해 보면, 위성 개발 관련 기술 혹은 로켓 발사 관련 기술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기 거래나 우주 협력 등의 합의가 이면에 있었을 수 있다.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회담이 군사 협력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핵 관련 기술의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보가 워낙 제한적이라 확실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무기를 건네고 식량을 얻는 거래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핵추진잠수함·탄도미사일 등 핵 관련 기술 거래까지 갔을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간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핵 비확산 체제 수호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비상한 상황을 맞은 러시아가 기존의 전통적 문법을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양국이 여기까지 갔다면 대외적으로 거래 사실은 부인할 것이다.”

이번 북·러 공조 움직임은 일시적 이벤트일까, 북·중·러 협력의 출발점일까.

“일시적 이벤트라고 볼 수 없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하는데,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도 함께 열리게 됐다고 봐야 한다.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국에 억지력 강화와 방어 역량 증진 등 선순환적 의미를 낳았지만, 북·러 공조와 같은 반작용도 불러왔다. 중·러는 오랫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프로세스를 경계해 왔는데, 이번 캠프 데이비드 선언은 중·러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왜 중국보다 러시아가 먼저 반응했을까.

“두 나라의 외교 스타일은 차이가 뚜렷하다. 러시아는 현상과 사안에 즉각 대응하는 성향이 강하다. 터프하고 대증적이다. 중국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힘을 갖고 5년, 10년을 두고 천천히 밀어붙여 상대가 수용하게 만드는 방식의 대응을 주로 한다. 러시아 외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외교적 공략과 군사적 수단을 결합시킨다는 점이다. 시리아,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등이 다 그런 방식이었다. 중국은 군사와 외교를 결합해서 하는 대응을 잘 하지 않는다.”

북·러가 빠르게 밀착하면서 중국이 불편해한다는 시선도 나온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중·러가 양국 사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놓고 경합성을 갖고는 있다. 하지만 이를 크게 보면 상황 전체를 오독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을 두고 중·러가 경합하던 시기는 1980년대 냉전 후반기다. 하지만 중국이 부상하고 러시아가 쇠퇴하면서 영향력 면에서 중국은 러시아를 압도하고 있다. 러시아도 이런 부분을 인정하고 움직인다. 그래서 중국은 러시아의 최근 움직임 같은 행동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아울러 중·러는 최근 신냉전 구도 속에 빠르게 연대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많은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많은 공감대 속에 연대를 하고 있다.” 

 

“대만해협 등 미·중-일·중 마찰 연루 가능성”

한·미·일 공조 강화에 따른 청구서가 곧 밀려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많은 주문이 정치와 군사, 외교, 경제, 과학기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밀려올 것이다. 특히 군사안보와 관련해 미국의 더 많은 주문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이슈에 대한 연루 가능성도 커졌다. 대만해협 이슈는 물론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 중·일 마찰이나 쿠릴 인근의 일·러 마찰 등도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많은 참여와 기여도 요구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러, 한중 간 마찰과 갈등도 점점 에스컬레이터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대만해협, 동중국해, 경제안보 등 미·중 마찰에 대해 협의하고 대응을 조율해야 한다.”

명확하게 짚고 가자. 향후 한·미·일 공조의 범위와 정도는 어떻게 될까.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동맹의 지역적 역할’에서 극적인 진화가 이뤄졌다. 핵심은 한·미·일 정상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도발·위협에 대해 서로 협의해 대응을 조율한다는 점이다. 눈여겨봐야 점은 ‘도전·도발·위협’이란 대목이다. ‘도발’과 ‘위협’은 규정이 쉽다. 반면 ‘도전’이란 표현은 매우 광범위하다. 해석이 다양하게 될 수 있다. 넓게 해석한다면 ‘중국의 부상’을 뜻한다. 도전이 문제가 된다면 모든 게 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끌고 가면, 우리가 ‘노(No)’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미·일 공조의 전개는 어떻게 될까.

“이미 미국은 협력의 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공약에는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역내 위협이 협의 대상인데, 미국은 한 나라에 대한 위협이 있으면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좀 더 나토 식이다. 나토는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니 공동 대응한다고 했다. 한국이 공동의 이해가 아니라고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연중 열릴 각종 3국 협의를 주도할 것이다. 미국이 하기에 따라서는 안보 협력 수위는 예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

결국 한·미·일 협력의 시대와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가 함께 열리게 됐다. 

“지금까지 역대 모든 정부는 미·중 대립에 대해 회피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부상하는 중국이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님에도 한국은 전략적·정책적 고심을 하지 않았다. 무려 30여 년을 그랬다. 그때그때 상황별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식의 대응만 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이 동맹으로서의 자세가 부족하다고 섭섭하게 여기고, 중국은 한국이 밀면 밀린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렇게 양국이 서로 한국을 견인하려는 힘은 커졌고, 우리의 입지는 점점 없어졌다. 더 이상은 이런 식으로 처신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권들과 달리 명료하게 미국 쪽으로 가는 선택을 했다. 현 정부가 취한 방향은 불가피한 방향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대미 정책, 한·미·일 전략은 알겠는데, 대중·대러 정책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나온 게 거의 없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한국은 독특한 지정학적 이해를 가진 나라다. 분단되어 북핵을 마주하고, 4강에 둘러싸여 있다. 비핵화, 평화 구축, 통일 추구라는 절대적 과제도 안고 있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일과의 공조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이 심화하면 북핵·평화·통일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이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확보하려면 먼저 미·중·러에 대처할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진영 구도에서 대미 정책 따로, 대중 정책 따로일 수는 없다. 대미 정책의 이면이 대중 정책이니 분리 운용은 가능하지 않다. 즉 한·미·일 공조는 어디까지이고 중·러와의 외교 공간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한국형 외교안보 좌표’가 필요하다. 한국형 좌표를 내놓고 움직여야 외교의 예측성, 지속 가능성, 신뢰성 등이 높아질 수 있다.”

 

“美 3시, 中 9시, 한국 좌표 ‘1시 반’ 설정 필요”

‘한국형 좌표’를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 수 있나.

“우리가 12시에 놓여 있는 가운데 미국은 3시 방향, 중국은 9시 방향으로 각각 한국을 잡아당기고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변화된 상황에 따라 우리는 대체로 ‘1시 반’ 정도로 좌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호주는 2시 반, 일본은 2시, 인도는 12시 반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모두가 미국의 동맹이지만 각자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움직이는 셈이다. 우리는 이런 큰 기조 없이 사안별로 3시로 갔다가 10시로 왔다가 다시 2시로 가는 널뛰기 외교를 해왔다.”

미국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형 좌표라는 전략을 제시하면 한국의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갖게 될 딜레마적 상황을 주변국에 설득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진다. 더 예측 가능해지고, 지속 가능한 외교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전략을 갖고 미국과는 한·미·일 공조 속에 한국의 과도한 연루가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 구축, 통일 추구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협의해야 한다. 중·러와도 이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 협력의 여지를 남기도록 교섭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비확산 명분에 배치되는 북핵 문제를 미·중, 미·러 대립 분위기에서 떼서 공통의 이해 사안이 되도록 고난도 외교를 해야 한다.”  

☞ ‘북·러 밀착 후폭풍’ 특집 연관기사 
김정은과 푸틴의 ‘위험한 거래’…한반도, 신냉전 각축장 되나
“북·러 회담, 한·미·일 협력 반작용…‘한국형 좌표’로 대응해야” 
김정은의 ‘철통보안 속 전격 방문’ 공식 깨져…한미 첩보전쟁 막전막후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