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 치우칠수록 인기…진영 대결 굳히는 유튜브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8 11: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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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유튜브 4대 강자 《진성호방송》 《신의한수》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딴지방송국》
상위권에 중도 성향 채널 없어

#1. “대표님 단식하는데 여기서 밥을 x먹냐.” “저게 이재명 같은 인간을 좋아하는 xx다.” “찍지 마. 카메라 안 치워, 이 xxx야!” 9월8일 오전 11시50분경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두 명의 보수 유튜버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 간에 고성과 욕설이 이어지다 몸싸움으로까지 번졌고, 경찰이 출동한 후에야 상황이 정리됐다.

#2. “이재명은 깜빵으로!”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같은 날 보수 유튜버 몇몇이 이 대표 근처에서 음식물을 꺼내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보였다. 화가 난 이 대표 지지자들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밀치는 등 몸싸움이 벌어졌고, 다툼을 막으려던 국회 사무처 직원과도 충돌했다.

8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농성장 앞에 서 이 대표의 지지자들과 보수 유튜버들이 고성을 지르며 대립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의 단식이 시작된 이후 국회 곳곳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진보 유튜버들과 양당의 강성 지지층은 매일 오전 8시경부터 단식 농성장 근처나 국회 정문 앞으로 출근한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줄을 서서 이 대표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을 전하는가 하면 유튜브를 통해 현장 상황을 찍어 실시간으로 내보낸다. 이 대표의 단식을 방해하려는 보수 유튜버들 또한 이 대표의 단식과 민주당을 비난하는 방송을 실시간 촬영해 내보내고 있다. 흥분해 천막 앞으로 가 이 대표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는 일도 있다.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든 유튜브는 TV나 신문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 매개체로도 활용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홍보 영상을 올리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 한다. 국회의원 보좌진에게 유튜브 영상 기획과 제작은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가 되었으며 다양한 의도로 만들어진 영상들은 수백만 조회 수를 웃돌며 시민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유튜브가 가진 알고리즘이라는 속성과 짧게 편집된 영상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단어와 장면들로 극단의 성향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10위권 내 보수 성향 채널 60~70%…진보 30~40%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유튜브 채널은 어떤 곳들이며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구독자 수를 기준(9월13일)으로 보면 진성호 전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진성호방송》이 약 181만 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신혜식 민초커뮤니케이션 대표가 운영하는 《신의한수》가 약 147만 명으로 2위에 올랐다. 이들 모두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이다. 3·4위는 각각 진보 성향의 채널이 차지했는데 동명의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이 약 136만 명으로 3위, 방송인 김어준이 진행하는 《딴지방송국》이 약 122만 명으로 4위로 집계됐다. 이어 5위는 《배승희 변호사》가 약 120만 명으로 집계됐고, 진보 성향의 언론사 《서울의 소리》 채널이 115만 명으로 6위에 올랐다. 그 뒤로 보수 성향의 《고성국TV》 《전옥현 안보정론TV》 《성제준》이 각각 91만 명, 87만 명, 86만 명으로 7·8·9위를, 《펀앤드마이크TV》가 약 84만 명으로 10위를 차지했다.

구독자 수 기준 10위권 내 정치 유튜브 채널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정치 성향이 선명한 채널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채널이 60~70%,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채널이 30~40%를 차지했다. 중도적인 성향을 띠는 채널은 상대적으로 구독자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을 방증한다.

튜브가이드의 주간 조회 수(2023년 9월6~13일)를 기준으로 봐도 유사한 특징이 보인다. 1위에 《젊은 시각》(1683만 회)이 올랐고 2위는 《시사포커스TV》(1646만 회)가 차지했다. 뒤이어 《서울의 소리》(1191만 회), 《성창경TV》(935만 회), 《우모사TV: 우리모두 나라사랑》(873만 회)가 3·4·5위로 집계됐다. 뚜렷한 정치 색채를 가진 채널들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현역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개인 채널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구독자 수 기준 1위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로, 83만 명이 구독 중이다. 다음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태영호TV》가 구독자 28만 명으로 2위,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정청래 TV떴다!》가 구독자 24만 명으로 3위를 각각 차지했다.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 중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구독자가 가장 많았다. 그가 운영 중인 《TV홍카콜라》 채널은 구독자 66만 명을 기록했다.

 

“유튜브가 민심 아니란 것 알지만, 지지층 무시 못 해”

여의도에서 20년 넘게 정치에 몸담아온 국민의힘 관계자는 “유튜브로 진영 간 대결이 고착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당은 개딸, 국민의힘은 태극기부대로 서로 극단으로 가고 있다. 앞으로도 극단으로 가면서 균형 논리가 깨지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이럴수록 당론을 정하기 전에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여론조사 등을 통해 진짜 국민의 생각을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댓글에서 읽히는 즉각적인 반응은 정치인들이 그곳에 더 귀를 기울이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국회의원실은 유튜브 기획·제작 업무를 위한 직원을 따로 고용하거나 전담 업체에 외주를 주고 있다. 과거 TV뉴스에서만 보던 국회 대정부질문은 각 의원실에서 자체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홍보에 이용한다.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 구독자 수나 조회 수에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유튜브 채널 이용과 관련해 “과거에는 우리 의원이 찍힌 신문 속 사진 한 장, 뉴스 영상 한 장면에 목숨을 걸었는데 지금은 영상을 직접 찍어 자체 편집해 쓸 수 있어 우리 의원을 홍보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댓글과 DM을 통해 반응을 확인하고 민원이 있으면 처리해 주기도 한다. 피드백을 즉각 반영하고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유튜브 피드백이 곧 민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기본 토양(지지층)이 없는 정치인이 당선될 수는 없다. 민심과 괴리는 있지만 타깃층을 달리해 채널을 여러 개 운영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지자들을 확장해 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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