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인가 ‘본심’인가…김기현이 끝까지 이재명 만나지 않은 이유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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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측, ‘李 병원행’에도 “尹 순방도 있고 곧바로 만나긴 어려운 상황”
‘이재명은 피의자’ 尹心에 ‘뜬구름 野 요구’ 반발심…“정무적 고심할 듯”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3월15일 오전 국회 민주당 대표회의실을 찾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 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3월15일 오전 국회 민주당 대표회의실을 찾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면담 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째 단식’ 도중 건강 악화로 병원에 실려 갔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여전히 이 대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있다. 여당 대표로서 야당 대표의 단식을 최장 기간 외면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이 대표의 단식에 명분이 없고, 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등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정치권 일각에선 김 대표가 이 대표를 피의자로 인식하는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8일 오전 이 대표는 무기한 단식 여파로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 이 대표가 쓰러졌지만 김기현 대표 측은 여전히 ‘이 대표를 직접 방문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실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 등 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야 김 대표랑 당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나올 것 같다”면서도 “저희도 곧바로 진행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윤 대통령도 순방 중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앞서 김 대표도 지난 16일 페이스북으로 이 대표에게 단식 중단을 요청했으나, 직접 방문 의사는 표명하지 않았다.

당 차원에서도 이 대표를 방문할 계획은 전무한 상황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직후 취재진에 “이 대표 병원 방문은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며 “지금 병원에서 사람을 만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이 대표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면서도 이 대표가 직접 대표 자리로 돌아와 김 대표가 제안한 여야 대표 회담을 받을 것을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퇴장하며 김기현 당대표 후보 등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퇴장하며 김기현 당대표 후보 등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용산-지지층’ 주파수 맞추기?…“골든타임 지나” 지적도

정치권에선 김 대표와 여당이 이 대표의 단식을 외면하는 핵심 이유로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지목된다. 최근 윤 대통령과 정부는 이 대표를 사법리스크 중심에 있는 ‘피의자’로 간주해 철저히 외면하는 분위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관련해 “이재명 개인의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범죄 혐의 수사”라며 “수사 받던 피의자가 단식 자해한다고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도 이 같은 대통령실과 정부의 주파수에 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대표의 단식 명분이 모호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여권은 이 대표가 내건 ‘내각 총사퇴’, ‘윤 대통령 사과’ 등 단식 조건들을 정부·여당에서 수용하기 어렵다고 비판해왔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이 대표의 단식 출구로 ‘한 총리 해임건의’와 ‘비리 검사 탄핵’ 등을 들고 나오면서, 김 대표가 민주당에 손을 내밀기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1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대표가) 이 대표의 건강을 우려하는 뜻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총회 결의안은 스스로 민주당이 공당임을 포기한 것”이라며 “(이 대표의 단식은)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용이고, 또 내부 결속용 말고는 저희들이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이날 “이 대표의 단식은 정기국회를 민생이 아닌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

여권 일각에선 김 대표가 ‘민심’에 근거해 이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최근 김 대표는 어떤 이슈나 정책을 놓고도 내부 여론조사나 통계 등을 바탕으로 꼼꼼히 분석 후 냉정하게 판단한다”며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입김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정무적으로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여론 향배에 따라 김 대표의 입장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당내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이 대표를 만나지 않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앞서 이정현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김 대표가 이 대표를 찾는 것이 정치적 도리라는 취지로 말하며 “정말 좀 통 크게 (김 대표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이날 한 여권 관계자도 “여당 대표로서 단식장을 방문하는 것은 국민 통합의 이미지를 쌓을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는데, 이 대표가 병원까지 간 지금은 골든타임이 지난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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