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보여준 ‘K사극’의 힘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0 11:05
  • 호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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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에 보편적인 멜로 서사 더해 글로벌 인기
진중함과 상상력 겸비한 K사극, OTT 자본 등에 업고 전성기 맞을까

오랜만에 사극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MBC의 《연인》이다. MBC 드라마는 올해 《꼭두의 계절》(1.6%), 《조선변호사》(2.9%), 《넘버스: 빌딩 숲의 감시자들》(2.4%) 등이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위기에 처했다. 《연인》이 구원자로 떠오른 모양새다. 남궁민은 2021년에도 저조한 MBC 드라마를 《검은 태양》으로 견인하면서 MBC 연기대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연인》으로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또다시 MBC 연기대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19년 《닥터 프리즈너》 이후 불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남궁민을 내세웠기 때문에 《연인》은 방영 전부터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요인도 있었는데 바로 사극 멜로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극과 멜로 장르가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추세인데 《연인》에서 그 두 개가 겹쳤다. 남궁민이 사극 멜로로 성공했던 경력도 없는 데다, 《연인》의 배경이 어두운 역사인 병자호란이었기 때문에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MBC 드라마《연인》 포스터 ⓒMBC제공
MBC 드라마《연인》 포스터 ⓒMBC제공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흥행몰이 

그런 배경 때문에 초반엔 5% 정도의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와중에 여주인공(안은진) 미스 캐스팅 논란까지 벌어지며 먹구름이 끼었다. 하지만 4회 엔딩이 입소문을 타더니 5회에 시청률이 8%대로 뛰어올랐고 이내 10% 선까지 돌파했다. 1부 마지막 회는 자체 최고인 12.2%를 기록하며 2부를 기대하게 했다. TV 화제성 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드라마+OTT 통합 화제성 순위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남궁민은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4주 연속 1위, 안은진은 3주 연속 2위에 올랐다. 드라마 전체 뉴스 기사 수 1위, 동영상 조회 수 1위, VON 게시글/댓글 수 1위, 검색반응 드라마 부문 1위도 차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터졌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연인》은 8월 5주 차 집계에서 미국, 캐나다, 스페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에서 톱2에 올랐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 42개국에서 톱5에 들었고, 총 68개국 톱10에 진입했다. 정공법이 통했다. 거대한 역사적 격변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서사적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 속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아픈 사랑 이야기는 시청자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이건 거의 기본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성공 공식인데 《연인》에 그대로 구현됐다. 

하지만 기본 법칙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이런 설정을 적용하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잘 표현돼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전 세계 영상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보는 인터넷 OTT 시대라서 시청자의 눈높이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연인》은 그렇게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킬 정도로 만듦새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드라마는 병자호란에 휘말린 양반 사내 이장현(남궁민)과 양반 처자 유길채(안은진)의 이야기다. 왕이나 장군이 나와 스펙터클하게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이 외적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이야기는 시청자 입장에서 선뜻 선택하기 힘들다. 이 드라마의 황진영 작가도 그 부분 때문에 이 작품을 시도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소설이자 동명의 영화로도 나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미 검증된 성공작이다. 그 설정을 조선시대에 대입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래서 너무 무겁지 않은 대중적인 이야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안에 절절한 멜로를 장착했다. 요즘 한국에서 멜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적 관심사로서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장르로서 멜로 드라마의 위세가 약해진 것뿐이지 남녀의 사랑이란 코드 자체는 모든 장르의 기본 바탕에 깔려 끊임없이 흥행을 견인한다. 이렇게 《연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검증된 이야기와, 사랑이라는 보편적 코드로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초반에 여주인공 캐스팅 논란이 벌어지고 반응이 미미했던 것은 전란 이전의 티 없이 화사한 모습이 과장되게 표현됐기 때문이었다. 그게 몰입을 끌어내기 힘들었지만, 전란 이후 주인공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변화하면서 극의 울림이 커졌다. 그러면서 멜로에 시동이 걸리자 반응이 터진 것이다. 4회 마지막에 속을 알 수 없던 남주인공이 액션을 시전하며 적군을 물리치고 여주인공과 극적으로 대면했을 때 그런 멜로 정서가 폭발했다. 그 후 전란이 진행되며 두 주인공이 갈라지고,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갈라지는 과정이 시청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렇게 잘 구현된 멜로의 아픔은 폐인을 양산하게 마련이다. 과거 《다모》 폐인처럼 《연인》 폐인이 양산됐는데 해외에서까지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MBC 드라마 《연인》의 한 장면 ⓒMBC제공
MBC 드라마 《연인》의 한 장면 ⓒMBC제공

조선시대, 외국인들에겐 이색적인 볼거리  

해외에선 영상미에도 주목했다. 조선시대 모습은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겐 이국적인 볼거리다. 특히 《연인》은 청군의 만주어가 그대로 나올 정도로 고증에 신경 쓰면서 미술에도 공을 들였기 때문에 더욱 이목을 끌었다. 한 해외 시청자는 “《연인》은 시각적인 축제”라며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잘 구현된 시대극의 배경에 보편적인 이야기, 보편적인 코드가 표현되면 국내외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 이것이 K사극의 가능성이다. 국내에선 사극이 PPL 광고가 어려운 장르라서 기피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OTT 시대엔 PPL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 《연인》처럼 보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드라마화하면 제작비는 OTT에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극은 과거 정통 사극 위주였다가 2000년대 이후 화사한 퓨전 사극 위주로 바뀌었다. 요즘은 정통 사극과 퓨전 사극이 합쳐지면서 진중한 시대 묘사와 다양한 상상력이 동시에 구현되는 추세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대규모 액션도 가능해졌다. 우리 사극의 시대 묘사와 액션이 얼마나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는지는 《킹덤》이 극명하게 보여줬다. 당시 서구 시청자들이 갓 같은 모자에 열광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 사극이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이색적인 스펙터클인지를 알 수 있었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한 장면 ⓒSBS제공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한 장면 ⓒSBS제공

최근 국내에선 사극의 역사 논란이 뜨거웠다.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경우 폐지까지 간 것은 너무 과도했다고 본다. 사극의 상상력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역사에 충실한 사극도 필요하기 때문에 정통 사극과 퓨전 사극이 공존하는 구도가 바람직하다. 물론 퓨전 사극이라고 해도 친일 미화 금기 같은 기본적 금도는 지켜야 하겠다. 잘 만든 우리 사극의 만듦새에 보편적인 이야기, 그리고 OTT의 자본이 더해진다면 K사극의 전성기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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