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주주 유고에 회오리치는 SM그룹 승계구도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0 10:05
  • 호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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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현 회장 사실혼 배우자 갑작스러운 별세 배경에 의문
핵심 계열사 지분 향방에 따라 후계구도 갈릴 듯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인수합병(M&A)의 마법사’로 불린다. 조그만 지역 건설사로 시작해 재계 서열 30위의 대기업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으로 SM그룹의 자산은 16조5000억원이다. 계열사는 62곳으로 건설과 철강, 제조, 해운, 레저, 금융 등을 아우르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SM R&D센터 건물 ⓒ시사저널 박정훈

지방 건설사에서 재계 30위 대기업으로

초고속 성장의 비밀은 M&A였다. SM그룹의 모태회사는 1988년 광주에 설립한 삼라건설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부동산 ‘붐’이 일었다. 분양만 하면 다 팔리다 보니 삼라건설은 성장을 이어갔다. IMF 외환위기는 우 회장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됐다. 매물로 나온 알짜 회사들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우 회장은 그룹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SM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M스틸과 경남모직, 동아건설산업, 남선알미늄, 대한해운 등도 이때부터 인수했다. 그래서일까. SM그룹의 지배구조는 웬만한 대기업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소유 지분도가 마치 전자 회로를 연상시킬 정도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발표하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가장 많은 그룹 중 하나로 SM그룹은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배구조만큼이나 복잡한 것이 가족사다. 현재 우 회장의 법적인 부인은 심아무개씨로 알려졌다. 슬하에 장녀인 우연아 전 삼환기업 대표와 차녀인 우지영 태초이앤씨 대표, 삼녀인 우명아 신화디앤디 대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사실혼 배우자는 김혜란 전 삼라마이다스 이사다. 장남인 우기원 삼라마이다스 부사장과 사녀인 우건희 코니스 대표가 김 전 이사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SM그룹의 후계구도를 두고서도 그동안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장녀인 우연아 전 대표의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11년 SM하이플러스 감사를 맡으며 그룹에 합류했다. 2013년에는 그룹 경영관리담당 부사장에 선임됐고, 2014년에는 동양생명과학(현 SM생명과학) 대표도 맡았다. 그룹을 대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에 여러 차례 동행할 정도로 경영에서 두각을 보였다.

2017년 장남인 우기원 부사장이 그룹 경영에서 합류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당시 분양대행 계열사인 라도의 대표를 맡았다. 이후 우 부사장은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2019년 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라마이다스 사내이사에 선임됐고, 이듬해에는 그룹 전략사업본부장(전무), 지난해에는 그룹 해운부문장(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자연스럽게 후계구도 또한 장남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우 부사장의 생모인 김혜란 전 이사가 9월16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현재까지 김 전 이사의 별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SM그룹 측도 언론에 “회장 일가의 가족사여서 별세 외에 확인해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 전 이사의 가족들은 별도의 부고 없이 조용히 장례를 치렀고, 19일 발인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사실은 김 전 이사의 그룹 내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김 전 이사는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주)삼라(12.31%)와 SM스틸(3.24%), 동아건설산업(5.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이 그룹 지배구조의 상단에 있는 핵심 계열사들로, 김 전 이사는 우오현 회장에 이은 2대 주주다. 이 때문에 상속 지분의 향방에 따라 후계구도 또한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김 전 이사가 우오현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라는 점에 주목한다. 공정위는 최근 재벌 총수의 사실혼 관계자를 친족(특수관계자)에 포함시키는 시행령 개정안을 검토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규제 사각지대를 보완한다는 차원이었다. 김 전 이사가 그룹의 2대 주주이니만큼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분이나 거래 관계를 모두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뒷말이 적지 않았다. “공정위가 흥신소냐”는 말까지 나오면서 아직까지 개정안은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기원 부사장과 우건희 대표가 이 주식을 물려받을 가능성을 재계에서는 높게 점치고 있다.

이 경우 우 부사장의 그룹 내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주)삼라의 연결 기준 자산은 2조2518억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077억원, 4820억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주)삼라는 SM스틸, SM인더스트리, 우방, 남선알미늄, SM하이플러스, 케이엘홀딩스, SM상선, SM신용정보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우 부사장이 김 전 이사가 보유한 (주)삼라의 지분을 넘겨받을 경우 자연스럽게 그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이미 장남에 대한 경영권 승계가 상당 부분 진행돼 왔다”면서 “김 전 이사가 우기원 부사장의 친모이니만큼 딸보다는 아들에게 지분을 넘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 부사장은 2017년 라도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당시 나이 25세 때였다. 이후 라도는 SM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넘겨받으며 고속성장을 이어왔다. 2021년 7월에는 지주회사 격인 삼라마이다스와 합병했다. 라도 지분 100%를 보유한 우 부사장은 덕분에 삼라마이다스 지분 25.99%를 보유하게 됐다. 아버지인 우오현 회장(74.01%)에 이은 2대 주주다. 삼라마이다스는 현재 동아건설산업과 SM상선, SM화진, SM벡셀 등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들 회사에 대한 지배력 또한 가지게 됐다. 본처의 딸들이 SM생명과학과 삼환기업의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우오현 SM그룹 회장 ⓒ연합뉴스

2세들 간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재계 일각에서는 우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전 이사가 사실혼 배우자로 법적 상속권이 없지만, 특정 자녀에게 보유 지분을 모두 증여했을 경우 자칫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 회장의 차녀인 우지영 대표는 최근 대우조선해양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자신이 100% 지분을 소유한 태초이앤씨를 통해서였다. 인수가격은 200억원대 후반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 회사가 2022년 말을 기준으로 부채가 자본보다 많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SM상선이 3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오현 회장의 재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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