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 시동 건 식품·유통업계…그 안에 숨긴 꼼수 전략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5 16: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상 폭 최소화”라지만 제품마다 제각각 인상률
주목도 낮은 제품가 인상 통해 손실 메우기 전략?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맥주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맥주 ⓒ연합뉴스

먹거리 물가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정부의 압박 속에 인상을 자제했던 식품·유통업계가 하나둘씩 가격표를 바꿔 달고 있어서다. 지난 1일 원유 가격 인상으로 우유 가격이 상승한 데 이어 지난 4일 오비맥주도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업체들은 원·부자재 가격 폭등에도 인상 폭을 최소화했다는 설명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대표 제품 가격은 소폭 올린 반면, 주목도가 낮은 제품의 인상 폭은 크게 올렸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이란 분석도 있지만 소비자들을 사실상 기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캔 제품 가격은 동결”…식당가 맥주 1병당 1만원 시대 오나

맥주업계 1위 오비맥주가 주력 제품인 카스 등의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지난 4일 오비맥주는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격을 평균 6.9% 인상한다고 밝혔다. 오비맥주는 당초 지난 2월 주류세 인상과 원부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가격을 올리려고 했으나 정부의 압박 속에 인상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오비맥주는 이번 인상 배경으로 “환율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입에 의존하는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국제유가 급등으로 물류비도 올라 제품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정용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카스 500㎖ 캔 제품은 현재 가격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부담을 고려해 캔 제품의 가격은 올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출고가가 오르면 식당 등에서 판매되는 맥주 가격 인상은 불가피해서다.

이번 오비맥주의 가격 인상으로 현재 1250원 수준인 카스 500밀리리터(㎖) 1병 가격은 1340원 정도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보통 식당들은 출고가가 인상되면 1000원 단위로 가격을 올려왔다. 이번 인상으로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 가격이 최소 1000원 이상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 1병의 가격은 5000~6000원이다. 업종과 지역에 따라서는 7000~8000원을 받고 있다. 점주 입장에서는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음식 가격보다는 부대 가격에 해당하는 주류 가격을 올려 수익을 높이는 것이 덜 부담이다. 이런 이유로 맥주 1병에 ‘1만원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이번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우유 판매대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우유 판매대 ⓒ연합뉴스

주력 제품 인상률 낮추고 나머지는 껑충 올리고

최근 식품·유통업계에선 이와 유사한 ‘가격 인상 전략’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른바 주력 제품의 가격 인상률은 낮추고 나머지 제품군 가격은 크게 올리는 방식이다. 이에 일각에선 가격 민감도가 낮은 제품 가격 인상을 통해 손실을 메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원유 가격 상승으로 지난 1일 우유 가격을 올린 유업계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상에 나섰다. 서울우유의 경우 흰우유 1ℓ 제품인 ‘나100% 우유’ 가격을 대형마트 기준 3% 인상한다. 대신 편의점 유통 흰우유 1ℓ 가격의 상승 폭은 4.9%였고, 200㎖와 1.8ℓ는 각각 9.1%, 11.7% 인상했다.

다른 업체 상황도 비슷하다. 남양유업은 ‘맛있는 우유 GT 900㎖’의 출고가를 4.6% 인상하는 대신 기타 유제품의 출고가는 평균 7% 올렸다. 매일유업도 흰 우유는 4~6%, 가공유는 5~6%, 발효유와 치즈는 6~9% 각각 인상했다. 대체적으로 흰우유 1ℓ 가격은 3000원에 못 미치게 올리는 대신 다른 가공유나 유제품 가격 인상폭을 더 크게 높인 셈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라면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라면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모습은 가격 인상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지난 7월 라면업계는 밀가루 가격 하락을 내세운 정부 압박에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하지만 인하가 적용된 제품은 일부에 불과했다. 농심은 신라면 가격만 내렸고,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 인기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삼양식품은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불닭볶음면을 인하 목록에서 제외했다. 오뚜기는 진라면, 팔도는 팔도비빔면 가격을 동결했다.

대신 라면 업계는 신제품 가격을 대폭 올렸다. 지난 8월 농심이 내놓은 ‘신라면 더 레드’의 가격은 1500원으로 기존 신라면(950원)보다 57.9%(550원)나 가격이 높았다. 비슷한 시기에 새롭게 나온 오뚜기의 ‘마열라면’도 기존 열라면(950원)보다 57.9% 올린 1500원에, 삼양식품의 ‘맵탱’은 기존 삼양라면 매운맛(910원)보다 42.9% 상승한 1300원에 선보였다.

식품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가격 압박 속에 업체들이 변형된 인상 전략을 꺼내들고 나오는 모습”이라며 “정부의 압박도, 업체의 인상 정책도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결국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