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혁신인가 퇴보인가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2 16: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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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시장 개선하겠다는 현대차의 의지 통할지 주목
캐피털·카드사·대기업 모여든 ‘쩐의 전쟁’이란 지적도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3월 중고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하면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현대차가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현대차가 우수한 품질과 정확한 정보를 강조하며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자 소비자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로 엇갈리고 있다. 누군가는 현대차의 이번 도전을 혁신으로 반기고 누군가는 퇴행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대차가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 중고차가 10월24일부터 판매를 개시했다. 사진은 용인시 기흥에 있는 현대차 중고차 매물 ⓒ연합뉴스
현대차가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 중고차가 10월24일부터 판매를 개시했다. 사진은 용인시 기흥에 있는 현대차 중고차 매물 ⓒ연합뉴스

중고차로 ‘창조적 파괴자’ 선언한 현대차

경제 관련 대중서적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레몬 시장(lemon market)’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레몬 시장은 판매될 재화의 품질에 관한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좋은 품질의 제품보다 좋지 않은 품질의 제품의 시장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되는 장터를 의미한다. 참고로, 정보의 비대칭성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보유한 정보 불균형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구매자 대비 판매자가 확실히 많은 정보를 소유한 시장이 바로 중고차 시장이다.

판매자는 중고차의 품질을 알기에 당연히 품질이 괜찮은 중고차를 좀 더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구매자는 판매자보다 정보를 잘 모르기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차를 구매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가격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합의 끝에 평균가격에 도달하게 되고 품질이 괜찮은 차량은 판매되지 않고 품질이 낮은 것만 잘 팔리는 기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소비자에게 중고차 시장은 불신의 대상이다.

현대차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의 우려를 씻어내고 중고차의 품질을 향상시켜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엔 명분도 있다. 올해 초, 경기도는 온라인 중고차 판매 사이트 24개를 조사해 그중 17개 사이트에서 허위매물이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현대차는 이와 같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레몬 시장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에 중고차 시장은 혁신의 대상이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소비자에겐 무엇이 좋을까. 당연히 체계적인 차량 검사와 무상 보증 그리고 애프터서비스 등을 충실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차는 기존 중고차 업계 플랫폼에서 볼 수 없던 오감만족 서비스 제공과 함께 차량 색상, 가격대, 옵션 등을 구분해 소비자에게 중고차를 추천하는 ‘내차 추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270개가 넘는 정비 항목을 면밀히 점검한다고 밝혔다.

중고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지만 현대차는 BMW 사례를 들어 이를 반박한다. BMW는 이미 2005년부터 18년째 인증 중고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엄선된 BMW 자동차를 매입한 후 수리·점검을 거쳐 추가 보증을 포함해 판매하는 중고차 서비스는 현대차 이전에 글로벌 완성차 BMW가 먼저 시행해 왔다. 벤츠도 2011년부터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했다. 벤츠와 BMW가 인증 중고차 사업으로 해당 시장에 들어왔는데 현대차에 대해서만 유독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건 곤란하다.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동차의 40%는 현대차의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등이다. 자사의 자동차를 중고 시장에서도 품질 보증을 해주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현대차 그리고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정말 레몬 시장 타파만 생각했을까.

지난해 3월 하나증권의 중고차 산업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차 시장의 규모는 현재 28조원에 이르고 있다. 2024년엔 거래 대수가 260만 대를 초과해 29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국내 신차 시장 규모를 60조원, 중고차 시장을 30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60조원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30조원 규모의 중고차 시장을 외면하는 건 기업가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다.

다수 언론이 현대차 등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관해 소비자의 관점에서 긍정과 부정 전망을 내놓았지만 중고차 시장을 위해 하나 더 살펴볼 영역이 있다. 바로 자동차 금융시장이다. 중고차는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이른바 ‘마이카’를 소유하고 싶은 이들은 자동차 대출, 소위 오토론(auto loan)의 문을 먼저 찾는다. 중고차 시장이 확대되면 현대차 이전에 다수의 캐피털, 카드사가 함께 이득을 보는 게임이다. 실제로 중고차 시장은 현금을 통한 구매가 50.9%를 차지하고 할부 구매 및 리스, 렌터카 등이 남은 49.1%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신차 시장은 현금 구매가 20%, 할부와 리스·렌터가 80%를 차지한다.

유원하 현대자동차 부사장이 10월19일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미디어 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원하 현대자동차 부사장이 10월19일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미디어 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조원 놓고 벌이는 게임의 법칙

현대차가 내놓은 중고차 품질은 우수하지만 소비자는 당장 중고차 가격이 신차 못지않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차가 중고차를 매입해 정밀진단을 거쳐 품질을 개선하면서 중고차 가격이 신차급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내놓는 중고차가 신차급 가격으로 바뀌면, 그리고 대기업이 중고차 수준을 격상시켜 가격이 신차에 준하는 수준이 된다면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등 자동차 브랜드를 전속 취급할 수 있는 캡티브(Captive) 금융사는 금융 영역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오토론에서 캡티브 금융사와 카드사의 파워를 키우지만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캐피털사는 존폐를 걱정할 위기에 직면한다.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퇴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동차 시장을 캐피털, 카드사, 대기업이 모여든 ‘쩐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당장 현대차와 기아차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은 현대캐피탈은 신차에 이어 중고차까지 본격적으로 할부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현대캐피탈의 지분을 99.8% 가까이 소유하고 있다. 현대차가 중고차 가격을 신차급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금융 영향력 확대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5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연세대 경영대학 수업을 참관한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강의는 ‘현대차그룹: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창조적 파괴자’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정의선 회장은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대로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려면 파괴자가 아닌 창조적 파괴자의 내용을 좀 더 제시해야 한다. 시장은 아직 경계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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