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정희·전두환·노태우·YS·DJ 아들 처음 한자리에…“계속 만나겠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7 09: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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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전재국·노재헌·김현철·김홍업 등 박정희 추모 공연에 총집결 
‘통합’과 ‘미래 지향’ 외치며 활동 외연 넓혀가는 대통령 2세들

“인사를 처음 드리네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음악세계 회장(64)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EG 회장(65)에게 조심스레 첫인사를 건넨다. 아버지들 사이의 깊은 인연과 달리 두 사람은 환갑이 넘어 처음 만났다. 11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신 기념 제1회 한국 가곡의 밤’ 공연이 둘 사이를 연결했다.

❶전재국 음악세계 회장(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❷조혜자 여사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❸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❹박지만 EG 회장(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❺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등이 11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신 기념 제1회 한국 가곡의 밤’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도 이날 공연장에 자리했다. ⓒ시사저널 오종탁

전재국, 박지만과 처음 만나 인사

공연은 박 전 대통령의 106번째 생일을 맞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기획했다. 재단은 지난해 4월 유영구 이사장 취임 이후 좌우와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기치로 활동해 오고 있다. 딱딱하고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일쑤인 추모 행사를 성악 공연으로 대체한 것도 그 일환이다. 소프라노 김은경이 총감독을 맡은 공연에는 메조소프라노 백남옥, 소프라노 임세경·박소영, 테너 강무림·진성원, 바리톤 최현수, 베이스 전승현, 피아노 최영민 등 최정상급 음악가들이 출연했고,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공연 관람엔 박지만 회장과 전재국 회장을 비롯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81),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58),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64),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73) 등 전직 대통령 가족 6명이 함께했다. 300여 관객 속에 섞여 띄엄띄엄 앉았고, 공식적으로 소개도 하지 않아 일반인들은 누가 누군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전재국 회장을 제외한 5명은 7월29일 청와대에서 한 차례 만난 바 있다. 당시 윤보선 전 대통령 아들 윤상구 동서코포레이션 사장(74)도 청와대 방문길에 동행했다. 이들은 청와대 개방 1주년 특별전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를 관람하면서 사회에 통합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역대 대통령 가족이 대거 한자리에 모인 건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석 달여 만에 펼쳐진 이날 공연은 역사적인 두 번째 만남을 성사시켰다. 윤상구 사장의 경우 단순한 스케줄 문제로 오지 못했고 전재국 회장은 처음 합류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역대 대통령 가족 모임의 외연이 더욱 넓어진 셈이다. 그동안 전 회장은 꾸준히 역대 대통령 가족 모임에 합류해 달란 요청을 받았으나, 일정상 이유로 완곡히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전재국 회장이 공연의 호스트 격인 박지만 회장에게 다가가 “전두환 대통령 장남입니다. 인사를 처음 드리네요”라고 말하자 박 회장은 “아, 보고 싶었어요!”라며 얼른 악수를 청했다. 이어 전 회장이 추모 공연 개최에 대한 축하 인사를 전했고, 박 회장은 “고마워요. 우리 가끔 모이는데, 나오세요”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알겠다고 답하곤 자리를 옮겨 김현철 이사장 등 다른 대통령 가족과도 인사를 나눴다. 전 회장은 “(역대 대통령 가족들에게) 대통령을 가족으로 뒀다는 사실 외에 별달리 공통분모가 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이렇게 좋은 일이 있으면 참석해 인사하고 축하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11월15일 ‘박정희 대통령 탄신 기념 제1회 한국 가곡의 밤’ 공연이 열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시사저널 오종탁

올 2월 식사 이후 활동 외연 넓혀와

김현철 이사장에게 공연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묻는 도중에 박지만 회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박 회장은 김 이사장의 팔을 붙들고 “우리는 이제 같이 다니기로 했어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 이사장도 환히 웃으며 “앞서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으로부터 공연에 초대받고 (전직 대통령) 2세들의 접촉면을 더 늘릴 기회라고 생각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지만 회장과 노재헌 원장, 김현철 이사장, 김홍업 이사장은 올해 2월 첫 회동 이후 종종 식사 자리를 가지며 사적 인연을 이어왔다. 모임의 기점은 박 회장과 김 이사장이 만들었다. 지난해 김영삼민주센터에 두 차례 기부금을 낸 박 회장에게 김 이사장이 감사 인사를 전한 게 시작이었다. 소통의 물꼬가 트였고, 드디어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7주기 추모식에서 처음 대면하기에 이른다. 노 원장 역시 박 회장과 그때 처음 만났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란 아버지들 이름만 거론하자면 금세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무거운 대한민국 현대사가 소환되지만, 2세들은 함께할 때 알 수 없는 끈끈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여전한,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진 갈등과 대립의 시기에 우리라도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공감대가 네 사람을 묶었다.

5월 두 번째 모임에서 네 사람은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협업 방안을 고민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폐비닐·폐현수막 등으로 친환경 우산을 제작해 각 재단·센터의 추석 기념품으로 활용한 게 첫 결과물이었다. 이들은 9월 추석 연휴 직전에 식사한 후 ‘다함께’라는 문구가 적힌 해당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어 외부에 공개하기도 했다.

아울러 네 사람은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 나란히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념관 건립 모금에도 동참키로 뜻을 모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 공연을 김현철 이사장 옆자리에 앉아 관람하던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는 역대 대통령 가족의 적극적인 사회 통합 행보에 대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여사는 11월1일 남편이자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92)가 평생 통합과 화해를 추구하다 별세한 사실을 환기했다. 이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이로 인해 국민이 반목하는 세태를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쳤다. 사망 두 달 전인 9월1일에는 이 전 대통령 유족으론 처음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사과했다. 이 박사는 “오늘 제 참배와 사과에 관해 항상 국민을 사랑한 아버님께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면서 “국민 모두의 통합과 화해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공연장 로비에서 마주친 노재헌 원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6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야 기념관 건립 이야기가 나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관련 활동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소프라노 박소영
11월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신 기념 제1회 한국 가곡의 밤’ 공연의 사회자 김동건 아나운서(오른쪽 네 번째)와 무대에 선 음악가들 ⓒ소프라노 박소영

노건호씨 합류 의사도 타진 중

준비된 공연 순서가 끝나고 김동건 아나운서는 박지만 회장을 언급했다. 김 아나운서는 박 회장에 대해 “수줍어서 그런지 전혀 나서지 않으려 한다. 한번 소개하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고 농담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박 회장이 관객들을 돌아보며 인사했고, 박수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소프라노 김은경의 리드로 전 출연자와 관객들이 함께 가곡 《선구자》를 부르며 공연은 모두 마무리됐다. 역대 대통령 가족들도 힘찬 목소리로 합창에 동참했다.

박지만 회장과 노재헌 원장, 김현철 이사장, 김홍업 이사장은 모임에 참여하는 역대 대통령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전재국 회장이 처음 얼굴을 비치면서 이런 활동에 탄력이 붙게 됐다. 네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씨(50)에게도 모임 합류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멤버 수와 모이는 횟수, 활동 폭을 늘려가는 대통령 2세들이 향후 정치적 움직임을 나타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모임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데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김홍업 이사장은 “1년에 몇 차례 보면서 서로 안부는 알고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현철 이사장도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보면서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전파하는 계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11월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릴 김영삼 전 대통령 8주기 추모식에도 역대 대통령 가족 상당수가 함께해 사회 통합을 도모할 전망이다.

10월26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서 열린 노태우 전 대통령 2주기 추모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재단 원장이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6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서 열린 노태우 전 대통령 2주기 추모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재단 원장이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니 인터뷰] 노재헌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메시지 필요한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원장은 현재 박지만 회장과 김현철 이사장, 김홍업 이사장과 함께하는 역대 대통령 2세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어려 ‘총무’를 맡고 있다. 노 원장은 11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신 기념 제1회 한국 가곡의 밤’ 공연에 참석해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도 2년밖에 되지 않아 여러모로 배우는 마음으로 왔다”며 “이번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의 공연처럼 국민에게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던지려는 시도가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역대 대통령 가족이 함께하는 공식·비공식 일정에 참여한 것 외에도 노 원장은 사회 통합을 위한 노력을 개인적으로 해왔다. 2019년부터 매년 아버지를 대신해 5·18 민주 묘역을 찾아 사죄해온 게 대표적이다. 2021년 10월26일 노 전 대통령이 별세한 후 두 차례 치른 추모식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노 원장은 누나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직접 추모객을 맞으며, 그들이 쏟아내는 회상과 제언을 곱씹었다.

노 원장은 “요즘 우리나라는 진영이나 이념으로 너무 갈려서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공통의 가치는 등한시되고 있는 듯하다”며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은 어느 진영에 있는 사람이라도 나라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때다. 우리가 이런 부분을 한 번쯤 곱씹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노 원장은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 조직을 발족했다. 그는 “아버지는 대중의 관심도가 낮은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이라면서도 해당 활동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 잘한 일과 못한 일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좋은 면은 이어가고, 모자라는 건 채워가는 선순환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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