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기념관 폐관 번복, 무슨 일 있었나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7 09:0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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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폐관 예고했다가 돌연 ‘없었던 일로’…비좁은 한옥에 전시 작품도 태부족해 뒷말 나와

‘백남준 기념관’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서울 동대문역과 동묘역 사이에 위치해 접근성이 높은 전시장이라는 사실은 더욱 모를 것이다. 그 기념관이 지난 11월 폐관 예정이었으나, 폐관을 성토하는 언론보도와 칼럼이 실리자 느닷없이 폐관을 번복했다는 사실도 관련 기사를 우연히 접한 극소수 시민만이 알고 있을 게다. ‘백남준 기념관’의 존재감이 이토록 낮은 게 기념관 폐관 결정의 여러 사유 중 하나였다. 하루 방문자 수는 10명 내외다.

백남준을 다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한 장면
백남준을 다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한 장면
백남준을 다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한 장면

하루 방문자 10명 내외로 존재감 없어

2017년 개관 당시 백남준 기념관 측은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집터 일부에 기념관을 건립한 점을 내세웠다. 그런데 기념관 폐관 결정의 이유 중에는 현재 기념관 자리가 백남준이 유년기를 보낸 3000평 규모의 창신동 집터로 추정되는 곳에 건립한 한옥 개조 건물이라, 역사성이 낮은 점이 지목됐다. 기념관에 비치된 브로슈어에도 “백남준의 옛집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도시 개발을 거치며 파편화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옥들 중 하나에 새롭게 조성됐다”고 언급돼 있다. 더욱이 비좁은 평수의 한옥이라 전시실로는 부적합하다. 명칭과는 달리 소장된 백남준의 작품도 태부족하다. 기념관의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백남준 기념관’의 폐관 예정을 처음 알린 매체는 10월초 ‘한겨레’였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투입 예산 대비 성과가 미미한 문화기관을 정리하는 차원이었는데, 전임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때 재원 사용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서울시립미술관 산하 3개 장소 중 하나로 ‘백남준 기념관’이 포함됐다는 기사였다. ‘한겨레’의 기사 타이틀은 ‘[단독] 오세훈 시장 재개발 바람 속…백남준 옛 집터 기념관 문 닫는다’였다. 그렇지만 백남준 기념관 터는 서울시의 창신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흡사 재개발 바람에 문화시설을 밀어내는 듯한 오해를 줄 제목을 붙였다.

10월말께 ‘조선일보’도 기념관 폐쇄를 비난하는 기사에 동참했다. 힐튼호텔, 동대문운동장, 충정아파트, 피맛골 등 건축사적 가치가 높지만 실리적 이유로 철거됐거나 철거가 결정된 선례에 빗댔다.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없애고 너무 간단하게 헐어온 것”이라고 비통하게 마감하는 기사였다. 조선일보 기사의 마지막 결론엔 나도 공감한다. 그렇지만 3000평 규모 집터 중 백남준의 유년기 거주지 중 일부로 추정되는 집터를 한옥으로 개조해 기념관으로 쓰는 건 역사성도 낮고, 하루 평균 방문자가 10명을 밑도는 수치 역시 기념관의 정당성을 지탱하지 못한다. 손쉽게 헐린 동대문운동장이며 철거 예정인 힐튼호텔 등과 백남준 기념관을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다.

백남준 기념관 폐관 결정을 성토해 결국 폐관을 번복하게 만든 이들도 정작 백남준 기념관을 거의 방문하지 않으리라 본다. 가봐야 볼 게 없으니까. 그곳이 전시장으로 적합한 곳인지는 가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다. 통유리로 마감된 벽면과 비좁은 전시실은 기념관으로도 전시실로도 어울리지 않는 개조된 한옥일 따름이다. 기념관 폐관이 번복된 후 지킴이에게 하루 몇 명이 방문하는지 물어보니, 폐관 보도의 영향으로 하루 10명(팀) 정도가 방문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폐관 결정 이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왼손이 먼저 제기한 문제를 오른손이 거드는, 보기 드문 언론계 좌우합작이 옹립하는 백남준은 누구인가. 그를 소개하는 영화가 12월초 국내 개봉했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수입 배급한 영화사에 따르면, 이 영화는 백남준 사후 17년을 맞은 2023년까지 백남준을 다룬 최초의 영화라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어맨다 킴이 연출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배우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의 한국계 미국인 주연배우 스티븐 연이 총괄 프로듀서와 내레이션을 맡았다.

‘괴짜, 천재, 파괴자, 크리에이터, 아웃사이더, 예언자.’ 이 영화가 백남준을 평가한 표현들이다. 이는 백남준을 둘러싸고 매스미디어가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표현들이라 우리에겐 조금도 낯설거나 새롭지도 않다. 이 영화도 백남준 예찬 공식을 기계적으로 따를 뿐이다. 솔직히 진부하다. 백남준이 1974년 비디오에 의한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 프로젝트로 뉴욕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은 걸 두고, “그가 인터넷 시대를 예고했다”고 백남준 추앙자들은 단정하는데, 그런 평가를 이 영화도 반복한다.

인터넷의 초기 아이디어는 이전에도 과학계 바깥에서 있어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쓴 소설가 아서 클라크는 무선통신 전문지 ‘와이어리스 월드(Wireless World)’의 1945년 10월호에 ‘인공위성으로 전 세계를 잇는 통신망’이란 아이디어를 낸 바 있다. 이 매체는 “가정용 컴퓨터가 향후 미래시대를 이끌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내놨다. 이 영화는 한 수 더 떠 브라운관 TV의 유리면 뒤로 숨어 장난치는 백남준의 영상을 보여주며 “그가 오늘날 유튜브로 대표되는 개인 채널 시대를 예고했다”고 묘사하는가 하면, 마주 보는 부처상과 TV 모니터 설치물 《TV 부처》를 보여주며 작금의 셀카 유행의 선례인 양 설명한다.

백남준 기념관 입구 ⓒ반이정 제공

예술이 신앙이 될 때 벌어지는 일

백남준 기념관에는 그의 일대기를 요약한 텍스트가 벽면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안에 백남준을 인터뷰하는 도올 김용옥 사진이 보인다. 도올은 저서 《석도화론》에서 백남준에게 유난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 당신은 천재가 아닌가?” 이에 백남준은 “난 천부적 재능은 없다. 친구들을 잘 사귀었을 뿐이다. 플럭서스의 녀석들이 다 유명해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유명해진 것이다. 내 인생 체험의 묘사엔 두 가지 속담이 적절하다.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와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이다.” 이 답변을 백남준의 겸허한 성품의 표현으로 친다 해도, 모국이 같은 예술가 백남준을 향한 선망이 지나치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신앙으로 봐야 맞다.

폐관이 번복된 ‘백남준 기념관’의 운명은 향후 어떻게 될까. 기관 스스로 번복한 사안이니만큼 폐관 논의가 쉽게 제기되진 않으리라. 그렇지만 이 기념관은 무용하게 몇 해를 버티다가 폐관 의견이 다시 제기되리라고 나는 본다. 먼 훗날 폐관의 필요 사유로 이런 요건들이 나열될 것 같다. 저조한 방문자 수, 백남준 실제 생가 터가 아닌 점, 전시장으로 부적합한 공간의 한계 등. 망자를 기리는 제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떠난 이를 기리고 업적을 살피려는 본분에서 멀어져, 망자와 연결된 이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알리바이로 눌러앉는 일은 흔하다. 제사를 지배하는 이치가 백남준 기념관이라고 피해 가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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