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지키려는 성웅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 《노량: 죽음의 바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3 11:05
  • 호수 17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량》 《한산: 용의 출현》에 이은 ‘이순신 3부작’ 마무리
남다른 비장함과 여운, 압도적인 전투 장면도 화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웅(聖雄). 바다를 호령하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출정의 돛이 올랐다.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는 1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명량》(2014),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726만 관객을 동원한 《한산: 용의 출현》(2022, 이하 《한산》)을 잇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마무리다. 1편의 최민식, 2편의 박해일에 이어 김윤석이 임진왜란 말기의 이순신을 연기한다. 장군이 지휘한 가장 큰 해전으로 손꼽히는 전투인 노량해전은 2시간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크린을 치열하게 물들인다. 10년에 걸친 3부작의 대단원인 데다 실제 역사에서 장군이 전사한 해전이었던 만큼 그 비장함과 여운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의와 불의의 싸움’에 몸 던진 이순신

임진왜란 발발 7년 후인 1598년 12월. 왜군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후 일본은 퇴각을 결정한다. 왜군 선봉장 고니시(이무생)는 권력 공백 상태인 일본 열도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순천 왜성을 포위하고 있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함대를 뚫을 방도가 없다. 조선은 명나라와 조명연합함대를 꾸리고 왜군의 퇴각로를 틀어막고 있다.

끝까지 쫓아 왜를 섬멸하려는 이순신의 다짐은 명나라 도독 진린(정재영)과 일부 병사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고집이다.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끝내 전투를 치른다면 더 큰 희생이 불 보듯 빤한 일이어서다. 진린이 고니시의 회유 전략으로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사이, 이순신 장군은 크게 분노하며 조선군과 함께 싸우거나 철군할 것을 명에 요청한다. 그사이 ‘살마군’이라 불리는 시마즈(백윤식)의 함대는 고니시와의 협공을 위해 노량으로 이동한다.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다.”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닌, 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정의했다.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고 도의와 정의를 회복하려는 태도. 장수이자 한 인간인 이순신을 지탱하는 힘은 그것이었다. 불의가 눈앞에 있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그릇된 야망으로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동아시아 전체에 피바람을 몰고 왔던 자의 철병 선언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때, 불의로 빚어진 무수한 죽음들 사이에서 완전한 의를 지키고자 하는 고독한 싸움. 《노량》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한 초인의 신념이다.

러닝타임 153분 중 초반 한 시간가량은 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조선과 명나라, 왜군 사이의 치열한 첩보 외교전이다. 각 군의 정치적 상황과 명분이 맞부딪치며 쌓이는 긴장이 해전 못지않다. 한산도대첩부터 이순신 감독의 곁을 지켜온 항왜 군사 준사(김성규) 등 낯익은 인물뿐 아니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부도독 등자룡(허준호),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의 왜군 수장 시마즈 등 새로운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소개된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전에 없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긴 전쟁의 고단함 속에서 그는 늙고 지쳐 있다. 여전히 흔들림 없이 장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이, 셋째 아들 이면(여진구)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은 아픔은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 《노량》은 왜군들이 악귀처럼 들러붙는 와중에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이순신 장군의 악몽을 통해 그의 한 서린 내면을 목격하게 한다.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들과 수많은 조선 병사의 죽음 앞에서, 이순신 장군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왜군에게 뱃길을 열어줄 수 없다.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

국가적 영웅 한 사람을 세 편에 걸쳐 서로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연작. ‘이순신 3부작’은 한국 영화 사상 전례 없는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인 명량해전, 한산도대첩, 노량해전을 스크린에 옮긴 것은 영화적 스펙터클과 역사를 결합해 대중성을 이끌어낸 성공적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그간 기술도 함께 발전해 왔다. 전투 장면은 3편 모두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데, 2편인 《한산》부터는 아예 바다에 나가지 않은 채 대규모 해전을 촬영했다. 이번 《노량》도 마찬가지다. 앞선 두 경우와 달리 겨울, 그것도 야간에 벌어졌던 노량해전의 격랑은 강원도 강릉 아이스링크에 실제 비율 크기로 만든 판옥선 등의 오픈 세트에서 재현했다. 3부작 전체가 사전 애니메이션 작업, 촬영과 시각특수효과(VFX) 등 기술의 최전선으로 나아가며 빚어낸 새로운 역사인 셈이다.

특히 노량해전은 조선·일본·명나라까지 3국 전함 1000여 척이 동원된 동북아시아 역사상 최대 해상 전투다. 러닝타임 153분 가운데 100여 분이 할애된 해전 장면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선의 전략, 만만치 않은 왜군의 반격을 번갈아 보여주며 위력적인 장면들을 만든다. 불이 붙은 배 한 척을 시작으로 화포와 총통 등을 총동원해 화력을 퍼붓는 조선군의 작전, 뛰어난 전략에 기습당하자 스스로 선봉대를 포격해 침몰시키는 시마즈의 잔인함, 진린이 망설이는 사이에 조선을 돕기 위해 지체 없이 나서는 등자룡의 포효 등이 잘 짜인 하나의 군무처럼 유려한 리듬을 만든다. 실제 노량해전 출전 기록은 없지만, 조선군에 큰 의지가 된 상징적 의미로 등장하는 거북선의 기세도 압도적이다.

규모만을 강조한 설계는 아니다. 3부작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전투 장면 역시 《노량》에 있다. 전투가 백병전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카메라는 왜군과 명나라, 조선군까지 일반 병사들의 시점으로 옮겨 다니며 난전의 지옥도를 펼쳐 보인다. 7년간 이어졌던 살육의 치열함이 피부에 와닿을 듯 전해지는 순간, 카메라는 이순신에게 다가간다. 그는 죽은 아들과 동료들의 환영을 차례로 본 후 갑판에 떨어져 있던 북채를 쥐고 북을 치기 시작한다. 바다를 호령하며 전투를 독려하는 북소리는 입으로 토해 내지 못한 인간 이순신의 절규이자 회한이다. 인물의 감정을 관통해 관객의 마음 안으로 파고드는 클라이맥스라는 점에서, 3부작을 거치며 만나온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그제야 조금 더 구체적이고 가까운 실체가 된다.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 《명량》에서는 비장함을 담은 용장(勇將), 《한산》에서는 가장 알맞은 때를 아는 지장(智將), 《노량》에서는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지혜로운 현장(賢將)으로서 다가왔던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은 담담해서 더 여운이 짙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저 북쪽 대장별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이미 명운을 다했을 것”이라는 진린의 대사는, 10년에 걸친 3부작을 마무리하는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에 보내는 최선의 예우일 것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장’으로 분한 세 번째 이순신, 배우 김윤석

앞서 최민식이 불, 박해일이 물의 성질로 이순신을 표현했다면 세 번째로 바통을 이어받은 김윤석은 가장 인간적인 깊이를 아우르는 장군을 연기한다. 김윤석은 “최후의 전투를 앞둔 상황이니만큼 《명량》과 《한산》에서 그려진 장군의 모습을 모두 담고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웅에 다가간 그만의 비기(祕器)는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내려놓으면 장군님의 실체가 조금 느껴지는 정도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