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에 보면 좋을 대극장 창작뮤지컬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31 13:05
  • 호수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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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라이선스 독주 속에서도 K뮤지컬 존재감 드러낸 《일 테노레》 《마리 퀴리》

올해도 뮤지컬 시장의 주도권은 해외 라이선스 계열의 작품들이 쥐었다. 현지에서 이미 검증된 작품성과 대중성은 물론이고 여러 채널을 통해 각종 홍보 자료와 사운드트랙 등 작품의 매력을 사전에 알 수 있는 이러한 작품들이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해외 작품들이 한국 작품에 비해 우위를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K팝은 해외 유수 콘텐츠 사이에서도 꾸준히 독자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K뮤지컬 역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영상 매체에 비하면 속도는 느리지만 향후 해외 진출 잠재력이 큰 분야로 꼽힌다.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 중 한국 공연장에서 K뮤지컬을 관람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구에서 비롯된 공연예술 장르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만든 뮤지컬은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는 이 계절에 뜻깊은 추억을 함께 만들고 싶은 주위의 친구,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좋은 웰메이드 K뮤지컬 두 편을 소개한다.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주) 제공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주) 제공

시대의 아픔 속에서 사랑과 예술 그린 《일 테노레》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막한 《일 테노레》는 우리나라의 대표 뮤지컬 제작사 중 하나인 오디컴퍼니(프로듀서 신춘수)에서 새롭게 선보인 대형 창작뮤지컬이다. 전작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등에서 잔잔한 서사와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기를 얻은 창작 콤비 박천휴(작가·작사가), 윌 애런스(작곡·편곡가)의 신작이기도 하다.

제목 ‘일 테노레(IL TENORE)’는 ‘테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기 위해 살아온 세브란스의전 의대생 윤이선이 낯선 서양의 오페라에 빠져들어 스스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선 오페라의 개척자로 불리는 실존 인물 이인선(李寅善·1907~1960)이 걸어온 인생에 영감을 받아 허구를 가미해 만들어졌다.

주요 캐릭터는 윤이선 외에도 ‘문학회’의 리더이자 독립운동을 위한 오페라 공연의 연출인 ‘서진연’과 진연을 짝사랑하며 누구보다 독립운동에 진심으로 임하는 건축학도이자 오페라 무대 디자이너 ‘이수한’이다. 사랑과 예술, 시대의 아픔을 모두 겪어야만 했던 세 사람을 통해 서구에서 건너온 화려한 예술 ‘오페라’와 대비되는 비극적이고 어두운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그럼에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2018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작품 개발을 시작해 첫 리딩 공연을 가지며 업계와 관객들에게 이미 화제가 됐지만, 팬데믹 시기를 지나 5년 만에 본무대가 올라가게 됐다. 창작자들은 대극장 초연에 맞게 대본과 음악을 대폭 보강하고 김동연 연출가, 코너 갤러거 안무가,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등 국내외 베테랑 스태프가 참여해 이번 초연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음악적으로도 오페라의 예술적인 표현과 뮤지컬의 대중적인 선율이 결합된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멜로디와 편곡으로 드라마와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주인공 윤이선 역에는 트리플 캐스팅으로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가 출연한다. 연기와 가창 실력, 대중적인 인기에서 높은 화제성을 일으키는 강력한 주연급 배우들이다. 공연은 2024년 2월2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뮤지컬 《마리퀴리》의 한 장면 ⓒ라이브(주) 제공
뮤지컬 《마리퀴리》의 한 장면 ⓒ라이브(주) 제공

K뮤지컬로 해외 진출 성공한 《마리 퀴리》

뮤지컬 《마리 퀴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Marie Curie·1867~1934)가 과학자와 휴머니스트로 살았던 인생을 그린 팩션 전기(傳記) 뮤지컬이다. 마리 퀴리의 본명은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다.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과학자다. 화학자이자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노벨물리학상을 타고, 금속 라듐을 분리해 노벨화학상을 탔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면서 서로 다른 분야인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해 프랑스 과학계에서 활동했지만 폴란드인이라는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았고, 여성들이 과학 분야에 진출하지 못했던 시대에 선구적인 활동가를 자처했다.

이 작품은 여성 과학자로서 마리 퀴리의 자부심과 노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라듐의 발견이 인간의 삶에 발전을 가져다줬지만, 한편으로 방사능이 주는 위험요소도 존재했다. 인류를 위해 이 라듐을 어떻게 잘 사용해야 하는지를 화두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뮤지컬은 다루고 있다. 작품 속 허구 캐릭터이자 마리의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가 루벤의 공장에서 직공 ‘안느’는 방사선의 폐해를 막으려고 애쓰는 마리 퀴리와 우정을 쌓으면서 이러한 주제 전달을 위한 핵심적인 관계를 구축해 줬다.

이 작품은 현재 3번째 시즌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미 2021년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프로듀서상, 극본상, 작곡상, 연출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2022년 7월에는 마리 퀴리의 고국인 폴란드에서 한국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초청돼 송콘서트를 가졌고, 11월에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현지 스태프와 배우들이 참여한 쇼케이스가 개최됐다. 이 작품의 제작사인 라이브는 한국의 창의적인 뮤지컬 IP 및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글로벌 콘텐츠 회사로 2024년 하반기에는 이 작품의 영국 라이선스 공연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한 서양 인물이 주인공인 창작뮤지컬이 다시 서양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세 번째 시즌 공연은 대구, 부산을 거쳐서 현재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2024년 2월18일(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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