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 가린 ‘오너리스크’ 끝났다…주인 바뀐 남양유업 앞날은?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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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불가리스 등 히트 상품도 넘지 못한 남양의 리스크
남양-한앤코 법적공방 3년 만 마침표…60년 ‘오너 경영’ 막 내려
경영권 쥔 한앤코, ‘리브랜딩’에 초점 맞출 듯

남양유업(남양)의 주인이 바뀐다. 남양의 경영권을 둘러싼 홍원식 남양 회장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한앤코) 사이의 법적공방이 3년여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4일 대법원은 주식 양도 소송 최종 판결에서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60여 년간 이어진 ‘오너 경영’에 종지부가 찍히면서, 남양이 그동안 기업의 발목을 잡아 온 ‘오너리스크’를 털어내고 본격적으로 신사업에 닻을 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남양의 경영권을 손에 쥔 한앤코가 무너진 기업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리브랜딩’ 방안을 내놓을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남양유업이 허위 신고를 통해 수입 분유를 무관세로 들어온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br>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사이의 법적공방이 3년여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은 주식 양도 소송 최종 판결에서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10년 째 ‘리스크’의 덫…‘남양 불매’ 여론 만든 논란들은

남양은 ‘대리점 밀어내기’ 사태부터 10여 년째 리스크에 붙잡혀 있다. 남양에 대한 불매 여론은 2013년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며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수요가 없는 상품을 강매한 ‘갑질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작됐다.

여직원 차별 이슈와 경쟁사에 대한 네거티브 마케팅도 성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에 더해 병역 비리와 리베이트 혐의 등 ‘오너리스크’는 갑질 논란을 털어내려는 남양의 발목을 잡았고, 창업주 외손녀의 마약 이슈도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일부 소비자들은 ‘숨은 남양 찾기’를 하며 불매 운동까지 진행했다.

회사 매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21년 ‘불가리스 사태’다. 당시 남양은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위·과장광고로 남양을 고발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 당시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지고 사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자신이 가진 지분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지분을 사들인 회사가 한앤코다. 한앤코는 의결권을 가진 남양의 보통주 53%를 사들이기로 계약했지만, 홍 회장 측이 한앤코가 임원진 예우 등 계약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양측의 소송전이 시작됐다. 1, 2심 법원에 이어 이날 대법원까지 한앤코의 손을 들어주면서, 한앤코는 남양의 새 주인이 돼 ‘기업의 정상화’라는 과제를 수행하게 됐다.

남양유업이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자 실제 효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1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연합뉴스
회사 매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21년 ‘불가리스 사태’다. 당시 남양은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품질과 제품력은 인정…기존 포트폴리오와 시너지도 주목

갑질 논란과 오너리스크로 인해 남양의 실적은 내리막을 걸었다. 2020년부터 ‘매출 1조원선’이 무너졌고, 그때부터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기업 이미지 추락이 실적과도 연결된 것이다. 남양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서 협력사와 대리점까지도 피해를 봤다.

남양은 업계에서 품질과 제품력이 우수한 기업으로 꼽힌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오너리스크에 가려졌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남양은 1964년부터 무려 60여 년의 업력을 이어온 회사다. 국내 최초의 분유인 ‘남양분유’를 생산하며 유가공시장을 열었고, 1970년대 ‘우량아 선발대회’를 주관하며 업계에서의 위상을 지켜왔다.

저출산 세태로 인해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히트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면서 시장 지위를 확보했다. 대표적인 우유 브랜드 아인슈타인은 프리미엄 우유의 대명사가 됐고, 1991년 출시한 불가리스는 지난해 기준 32억 병이 넘게 팔렸다. 현재도 인기 제품을 중심으로 우유와 분유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셀프발표’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2021년 5월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셀프 발표’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오너리스크와 오너가의 잘못된 판단이 소비자 불신을 불러 일으켰지만, 제품 품질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슈는 없었다. 오히려 국제기관 등에서 인정받은 제품력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남양의 경쟁력’으로 해석된다. 한앤코가 남양의 이미지를 어떻게 회복시킬지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지배구조 이슈라는 가장 큰 장벽을 넘어선 남양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국내 유업계의 판도도 달라질 수 있다.

한앤코는 2013년 적자를 기록한 웅진식품을 인수해 자금수혈과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추진하면서 흑자 전환시킨 전례가 있다. 최근 남양이 저출산 등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신성장동력으로 단백질 음료, 건기식 등 제품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업계는 한앤코가 남양을 리브랜딩한 뒤 사업 다각화에 집중하면서 실적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지 변화를 위한 방안으로 CI 변경 등도 거론된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포트폴리오와의 시너지를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앤코가 운영 중인 호텔 체인 식음료 사업,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 등을 활용해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경영 실책으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한 만큼, ‘주인이 바뀐 남양’에 대해 소비자들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며 “한앤코는 빠르게 경영 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개선을 필두로 제품의 경쟁력을 부각한다면 국내 유업계에 새로운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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