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갑 엎어놓은 듯 해” 광주비엔날레 새 전시관 건립 놓고 ‘시끌’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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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억 메가프로젝트…설계작 놓고 광주시-미술계 ‘마찰’
지역 미술인들 “광주 이미지 제고에 적합한 가” 문제 제기
“평범해 제2의 아시아문화전당될라” vs “절차상 문제없어”

새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건립사업을 놓고 광주시와 지역 미술인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이 사업은 오는 2027년 개관을 목표로 총사업비 1182억원을 투입하는 메가 프로젝트다. 그러나 광주지역 미술인들이 신축 비엔날레 전시관 설계 공모가 졸속이라며 다시 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설계 당선작이 과연 광주 이미지 제고에 적합한 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역 미술계 일각에선 설계 당선작이 마치 성냥갑을 엎어 놓은 듯이 너무 평범해 광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와 동 떨어져 세계 미술계 관심을 끌기에 특색이 부족하고, 비엔날레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참신성과 실험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광주시는 예술계 인사로 구성된 건립자문위원회 등을 거쳐 국제 공모로 전시관 설계 작품을 선정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설계공모 당선작 ⓒ광주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설계공모 당선작 ⓒ광주시

‘발칵 뒤집힌’ 지역 미술계…“설계 공모에 문제 있다” 주장 제기 

광주시는 현 비엔날레 전시관이 노후되자 새 전시관을 신축하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초 설계공모 당선작을 선정해 발표했다. 대학교수·건축사로 꾸려진 심사위원회는 국내외 23개 응모팀 가운데 비엔날레 상징성, 전시공간의 효율적 구성, 건축물의 랜드마크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했다는 게 광주시의 설명이다. 시는 심사 공정성을 위해 대한건축가협회에 심사를 의뢰해 당선작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설계 공모 당선작의 조감도를 접한 지역 문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우선 공모방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계적인 유명 건축가들을 초청하는 지명공모 대신 누구나 응모하는 자유방식으로 진행해 ‘레전드 건축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상당수의 외국 유명 미술관들은 건축 취지에 맞는 화려한 외관의 건물을 짓기 위해 권위 있는 설계자들을 후보군으로 끌어 들여 선의의 경쟁을 펼친 것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9일 오건탁 전 광주시립미술관장이 ‘광주비엔날레전시관 당선작 결정에 대한 미술인들의 입장’을 낭독하고 있다.ⓒ독자 제공
9일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건탁 전 광주시립미술관장이 ‘광주비엔날레전시관 당선작 결정에 대한 미술인들의 입장’을 낭독하고 있다.ⓒ독자 제공

지역 미술인들 “졸속 추진 설계…재공모하라”

광주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브랜드가 되기에 역부족이라는 주장도 한다. 설계작이 외형적으로 ‘평범해’ 지난 2002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사례처럼 랜드마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미술이벤트인 비엔날레는 행사기간동안 국내외에 자연스럽게 비엔날레 전시관이 자주 노출된다는 점에서 광주관광의 핵심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를 스스로 걷어찼다는 것이다. 

지역 미술계의 비판은 격렬했다. 원로미술인과 전 시립미술관장·미술협회장, 광주민예총, 광주민미협 등은 9일 광주 예술의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설계를 재공모하라”고 촉구했다. 미술인들은 “재공모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시민 대상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새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은 침체한 광주, 허울뿐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위상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건축이 1∼2년 늦어지더라도 세계적 위상을 갖춘 건축가에 의한 지명공모로 설계를 맡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광주시는 국제 설계공모를 진행하면서 공고 20일 만에 참가신청을 마무리하고 45일 만에 공모 안을 접수해 이후 10일 만에 당선작을 발표했다”며 “현장 답사 등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광주시는 조급히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설계 공모 기간이 턱없이 짧아 외국의 유명 작가의 참여가 제한당하는 등 졸속으로 추진됐다”며 “지역 미술인과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공모가 진행돼 분노를 참을 길 없다”고 강조했다. 

강연균 화백은 “광주시는 4∼5년 전 비엔날레 신축 자문위원회를 결성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회의를 열지 못했다”며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두바이 루불 아부다비 등에 버금가는 전시관을 기대했지만, 마치 성냥갑을 엎어놓은 듯한 설계안이 당선됐다”고 말했다. 

오건탁 전 광주시립미술관장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하에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나왔을 때도 광주 미술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문화전당을 찾는 발길이 저조하다”며 “새 비엔날레 전시관을 제2의 문화전당으로 만들 수 없어 미술인들이 나섰다”고 했다.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광주시 “행정 일관성 위해 재공모 힘들어”

광주시는 미술인들의 ‘재공모’ 주장에 대해 절차상 문제가 없는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건축설계공모 운영지침 등에 따라 72일간 공모를 했고, 지역 미술계 원로가 포함된 비엔날레 건립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도 두 차례 청취했다”며 “지명공고를 하려면 6∼9명을 지명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기준을 두고 논란이 있어 국제 공모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각종 위원회 의견 수렴을 거쳤고 5개 자치구 공모를 통해 위치를 정했다”며 “행정은 일관성 있게 진행해야 하므로 재공모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광주시는 북구 매곡동 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인근 3만4925㎡ 부지에 1182억원을 들여, 연면적 2만2776㎡ 규모의 새 전시관을 짓는다. 오는 2027년 개관 예정이다. 지난해 9∼11월 진행한 국제설계 공모에는 ㈜토문건축사사무소·㈜운생동건축사사무소·㈜리가온건축사사무소가 공동으로 응모한 작품 ‘소통의 풍경 그리고 문화적 상상체’가 선정됐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당선작은 시민이 자유롭게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지하에 기획전시 플랫폼, 지상 1층에는 레스토랑·카페테리아·아트카페·학습공간·교육공간·다목적 상영관을 배치했다. 2층 열린 광장, 3층 자료실과 학예연구실, 4층 상설 전시관 조성을 구상했다. 당선작에 선정된 건축사무소는 이달 중 착수보고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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