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귀’에 닿는 노래, ‘마음’에 닿는 노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5 08:0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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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혁신’은 없었다. 두 다수 정당이 경쟁하듯 혁신위원회를 세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다 아는 대로 공허했고, ‘혁신’은 그저 들러리만 되었을 뿐이다. 먼저 진용을 꾸린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는 별달리 인상적인 장면도 남기지 못한 채 활동을 끝냈고, 국민의힘의 인요한 혁신위 또한 자체적으로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를 내놓았지만 눈에 띄는 성과 없이 간판을 내렸다. 두 혁신위 모두 기대했던 혁신의 결실은 거의 내놓지 못하고, 설화를 비롯한 불필요한 논란으로 비판을 자초하기까지 했다. 김은경 위원장은 고령자들을 겨냥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일대일 표결을 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으로, 인요한 위원장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그것은 부모 잘못이 크다”라는 말로 고초를 겪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혁신도 없이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 4월 총선은 벌써 90여 일 앞으로 훌쩍 다가와 있다.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렸고, 민주당은 별다른 변화 없이 익숙한 행보로 총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양당 모두 선거제도 등을 포함한 한국 정치 전체의 승리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 당의 승리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갈 기세다.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그야말로 ‘닥치고 총선 앞으로’라는 느낌만 줄 뿐, 국민을 감동시킬 새로운 정치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지금도 매주 방영되고 있는 방송 콘텐츠 가운데, 그동안 노래를 계속 불러왔으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무명 가수들이 나와 경연을 펼치는 한 프로그램이 요즘 큰 화제다. 출연하는 가수들의 실력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뛰어나 매번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떤 가수는 음정·박자를 능수능란하게 이끌고, 어떤 가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조율해 큰 호응을 얻는다. 우리 주변에는 노래를 잘 불러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귀를 넘어 마음까지 파고드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청중은 당연하게 귀가 아닌 마음을 흔들어 깨울 줄 아는 가수의 노래에서 감흥을 느끼기 마련이다.

결국 정치도 노래의 그런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듣기 좋은 말만 앞세우고 마음을 울려 감명을 주는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 정치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이 해야 할 일도 그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 지도자의 새로움, 후보자의 새로움, 정책의 새로움을 말한다, 그 새로움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 노래 경연이 그렇듯 이제는 과거와 같은 빤한 실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주항공청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투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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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가 이렇다 할 성적표를 못 낸 상황에서 늘 하던 대로 혹은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총선에 임했다가는 정당의 후퇴뿐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의 후퇴를 초래할 것임은 분명하다. 정치에 요행은 없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국민이 바보이길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미 국민은 귀를 울리는 정치인과 마음을 울리는 정치인을 구별해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청중이 되어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일 능력을 지닌 인물들을 얼마나 많이 총선 경연 무대에 올리느냐는 이제 오롯이 각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손에 달렸다. 특히 최근에 불거진 ‘성비위 의혹’이나 과거의 잘못으로 이미 유권자의 눈 밖에 난 인물들에 대해 단지 당 지도부와 가깝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후보 공천을 한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자멸의 길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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