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지탄’ 받았던 ‘꼼수’ 위성정당 반복되나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9 12:05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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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4년 전 선거제 일방 처리 ‘원죄론’에 ‘연동형-병립형’ 갈팡질팡
범야권 ‘비례연합 위성정당’ 내면 국민의힘도 맞장구 불 보듯 뻔해

‘48.1cm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는 걸까.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교란한 위성정당이 이번 4·10 총선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 다수당으로서 선거제도를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활용할 수 있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당 등 소수정당들이 참여하는 ‘개혁연합신당’은 1월15일 민주당에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논의해볼 만한 상황”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 가운데 47명은 이번 총선에서도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문제는 뽑는 방식이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서 도입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의 의석 독점을 막고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촉진하자는 좋은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애초 입법 취지와 달리 위성정당이 난립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거대 양당이 당초 약속을 파기하고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을 내세우면서 선거가 걷잡을 수 없이 혼탁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최소 득표율(3%)만 달성하면 원내 진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온갖 비례정당이 난립했고, 그 결과로 비례정당은 무려 35개나 나왔다. 이에 4년 전 총선 당시 투표용지 길이는 역대 최장인 48.1cm로, 기존 개표기(34.9cm)로 판독이 불가능해 비례대표 개표는 100% 수개표로 진행되는 불편함이 빚어지기도 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비례정당 35개 난립했던 4년 전 ‘48.1cm의 비극’

민주당이 준연동형제로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국민의힘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월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거가 야바위판도 아닌데, 무슨 페이퍼컴퍼니도 아니고 위성정당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며 8년 전 20대 총선까지 유지됐던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촉구했다. 그는 “선거제는 국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하고, 민의를 명확하게 반영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당이 내세운 정책과 공약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원죄론’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총선이 석 달도 남지 않았는데 ‘선거의 규칙’이 아직도 안갯속인 책임이 민주당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 총선을 앞둔 2020년 초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제1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논의에서 배제하고, 정의당 등 소수정당 3곳과 일방 처리한 선거제도다. 이 제도는 당시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의석을 배분하는) 산식(계산법)은 여러분(언론인)들이 이해 못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극도로 복잡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의 비례대표 제도에 관한 입장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선거제도)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입장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도대체 민주당의 입장이 무엇인가. 책임 있는 입장을 내주기 바란다”는 식의 메시지를 내며 연일 맹공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이 준연동형 도입에 반대해 놓고, 나중에 위성정당을 급조해 의석을 챙겼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별다른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형편이다. 만약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비례제를 준연동형으로 결정하고 범야권의 비례연합정당을 가동한다면,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위성정당을 내놓고 그 책임은 야권에 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6년 20대 총선까지 적용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2020년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만큼 지역구 의석수를 채우지 못하면 비례대표로 부족한 의석수를 채워주는 연동형을 제한적으로 적용해 47석 중 비례의석 30석만 채워줬다. 총선이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게임의 규칙’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여야의 속내와 셈법을 살펴봤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野의 딜레마, ‘비례연합정당=유사 위성정당’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준연동형을 유력하게 검토하면서 당 안팎의 여론 청취는 물론 비례연합정당의 가능성과 효과, 여당과의 협상 전략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준연동형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100% 확정은 아니다”며 “가급적 1월 중 지도부의 입장을 확정 짓고 의원총회에서 결론을 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취재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가 현재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민하고 있는 비례대표제 안은 크게 세 가지다. ①현행 준연동형 유지(다른 야당들과 비례연합정당 구성) ②준연동형과 병립형의 병행(지난 총선 때 한시적으로 적용된 준연동형 상한을 30석에서 더 낮춤) ③병립형으로 회귀(선출 단위를 전국이 아닌 권역별로 나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각각의 안이 모두 득실이 뚜렷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지금 여론의 흐름에 안테나를 바짝 세운 채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가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명분’과 ‘원심력 제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준연동형 유지를 지난 대선 과정에서 수차례 국민 앞에 약속했던 만큼 정치적 명분을 지키는 동시에 병립형 회귀를 우려하며 자신을 비판하던 당내 목소리도 잠재우는 효과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이 대표가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또 위성정당이냐’라는 국민적 질타가 커지는 것과 함께 실제 총선에서의 유불리에 있다고 전해진다. 이 대표는 정치 개혁을 주창하며 위성정당 금지도 지금까지 수차례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안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비례연합정당’ 등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민심은 이를 ‘유사 위성정당’으로 보고 비판 여론이 큰 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 대표가 최근까지도 가장 고민하던 지점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전해진다. 군소 정당들과의 대연합을 조율하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 위성정당’이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면 오히려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최근 이 대표가 준연동형을 검토하고 나선 데는 점점 커지는 원심력을 제어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낙연 전 대표가 탈당한 상황에서 병립형 회귀에 비판적인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 등까지 이탈할 움직임이 나타나면 이 대표로서는 총선을 앞두고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대표는 병립형으로 회귀할 수도 없고, 준연동형으로 돌아가면 현실적 이유로 위성정당을 안 낼 수 없는 딜레마적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범야권의 ‘비례연합정당’을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친명(親이재명)계로 분류되는 4선 중진 우원식 의원이 “용혜인 의원 등 개혁연합신당 추진협의체의 민주진보진영 비례연합정당 제안을 지지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낸 것도 이 대표 측과의 긴밀한 교감 아래 나왔다는 후문이다. 우 의원은 1월15일 “비례연합정당은 과거 위성정당 논란과 전혀 상관이 없다. 이번 비례연합정당은 민주당의 주도가 아니라 비례연합정당에 함께하는 각 정치 세력이 함께 연합해 검증과 공천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형태도 제시했다. 지역구 선거는 민주당이 주력을 맡아 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고, 비례대표 선거는 소수정당을 앞순위, 민주당은 뒷순위에 배치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현재 선거제를 둘러싼 혼란에 대한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는 ‘민주당 원죄론’을 강조하는 동시에 범야권이 추진 중인 비례연합정당이 ‘유사·꼼수 위성정당’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과 달리, 민주당과 범야권은 연합정당과 위성정당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주목할 장면은 민주당과 범야권이 계속 ‘설명’과 ‘반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서 보면, 그만큼 현재 사안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인식이 민주당과 범야권에 유리하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탄희 “연합정당과 위성정당은 다르다”

연합정당과 위성정당이 다르다는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하는 대표적 인물은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다. ‘위성정당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한 이 의원은 ‘위성정당’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확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학술적으로 보면 위성정당이 아니라 ‘위장정당(puppet party)’이라고 해야 정확하다”며 “위장정당은 ‘실체가 없는 정당’이다. 거대 양당이 겉포장만 다른 당인 양 위장해 만든 후 소수정당들이 더 많이 들어와야 하는 비례대표라는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는 것이다. 반면 연합정당은 ‘실체가 있는 정당들의 연합’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실체를 가지고 따로 활동해온 정당들이 연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선은 거대 양당이 지역구에만 집중하고 비례대표는 중소 정당들이 득표율만큼 가져가도록 발을 빼는 것이다. 위장정당이 최악이다”라면서 “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것은 차악 혹은 차선”이라고 했다.

그가 연합정당이 위성정당과 다르다고 강조하는 또 하나의 주된 이유는 자신이 발의한 위성정당 방지법이 통과되면 총선 이후 다시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재흡수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발의한 법은 거대 양당이 비례정당을 합당하면 국고보조금 절반을 날리게 했다. 정당 실무자들 의견을 취합하면 이러면 합당이 어렵다고 한다. 규제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거가 끝나고 합당을 못 하면 거대 양당과 비례정당은 따로 가는 것이다. 우호 관계를 맺더라도 사안별로 경쟁하게 된다. 경쟁이 늘면 국민에게 좋다. 4년 후 총선에서 국민 선택권도 유지된다. 4년간 더 경쟁을 잘한 정당에 표를 주면 된다”고 했다. 

비례연합정당을 공식 제안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연동형 비례제는 복잡하지 않다. 국민이 지지한 만큼 의석을 가지는 제도가 뭐가 복잡하냐”라며 “30% 받은 정당은 30%만큼, 5% 받은 정당은 5%만큼 가져가면 된다.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이 최대한 일치하도록 하는 제도가 연동형”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병립형은 대거 사표를 낳고, 그렇게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용 의원은 “국민의힘은 준연동형이 도입된 21대 총선이 실패한 정치 실험이라고 하는데 틀렸다”며 “지난 총선에서 실패한 건 국민의힘뿐이다. 국민의 표를 사표로 만들고, 국민이 준 표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잘못된 선거제도 없이는 기득권을 유지 못 하는 정당, 위성정당 만들기에 앞장서고도 외면받은 정당이 바로 국민의힘”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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