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만큼 버렸다”…코로나 백신 98% 쓰레기통에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1.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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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904만 회분 사들여 1872만 회분 폐기
올해 예산 3487억…접종 무관심에 악순환 이어질 듯
한덕수 국무총리가 11월24일 서울 종로구보건소를 방문해 코로나19 2가 백신 추가 접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1월24일 서울 종로구보건소를 방문해 코로나19 2가 백신 추가 접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폐기율 98%’ 

코로나19 백신이 찬밥 신세가 됐다. 팬데믹 초반 각국의 치열한 ‘모시기 경쟁’ 속 한국 정부도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었던 백신이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처지에 놓였다. 

2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구매한 코로나19 백신 1904만 회분 중 1872만 회분이 폐기돼 백신 물량과 수요에 엇박자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구매한 만큼 버린 셈이다.

폐기된 코로나19 백신은 모더나가 1502만 회분으로 가장 많았다. 화이자가 149만 회분, 얀센이 198만 회분, 노바백스가 9만 회분으로 그 뒤를 이었다. ‘국산 1호 백신’으로 불리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스카이코비원도 14만 회분 폐기됐다.

원인은 물량 대비 접종 인원이 급감한 탓이다. 제조사와 계약한 물량이 순차적으로 들어오는데,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은 낮아져 접종 인원이 줄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기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4.6%인 227만여 명에 불과했다.

올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접종률이 곤두박질치면서 막대한 혈세가 투입된 백신 대부분이 폐기될 공산이 크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코로나19 백신 구입 예산으로 3487억을 책정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한국리서치의 ‘코로나19 예방접종 의향’ 조사를 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향이 없는 사람의 37%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느끼거나(22%) 접종 효과를 믿을 수 없어(22%) 접종을 망설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현저히 낮아진 데다 이미 감염으로 면역력을 갖춘 사람이 많아 올해 들여온 백신 역시 소진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이미 코로나에 한 번 감염됐던 사람들은 면역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수차례 맞을 이유는 없다”면서 “렘데시비르 등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됐기 때문에 백신이 소진될 확률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또 “청소년 등 면역반응이 강한 연령이거나 건강한 사람들은 부작용 등을 고려해서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접종 받는 것을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펜데믹 초기에는 백신 개발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 다양한 백신을 다량으로 구매한 측면이 있다”면서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위험도는 낮아지고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백신 접종률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방역 당국은 고위험군에 공급하는 백신을 사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접종률에 따른 구매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올 겨울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거세지고 있는 만큼 접종 편의성을 보완하고 홍보를 강화해 접종을 독려하겠다는 계획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델타변이 때보다는 방역의 시급성이나 코로나19 중대성 떨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여전히 우리 곁에 코로나19가 남아있고 고령층 사이에서 입원환자나 사망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접종 독려 방안에 대해서는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백신의 동시 접종을 권유하면서 접종 편의성을 높이고, 고위험군에 한해 1년에 한 번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된다고 홍보할 계획”이라며 “올해 동절기에 코로나19가 얼마나 전파력과 독성을 갖느냐에 따라 백신 소진률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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