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막 오르는 2024년 주총 전쟁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6 07:3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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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롯데·금호석화·영풍 가족간 경영권 분쟁…사안마다 이견, 주총 표 대결 불가피

재계에서 경영권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재벌가 대부분은 가족 간 골육상쟁을 겪었다. 최근에는 행동주의펀드 등 외부 세력의 공세에 풍파를 겪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기업과 배경, 시기는 제각각이다. 그러나 매년 산발적인 갈등이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미약품 사옥 ⓒ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미약품 사옥 ⓒ 시사저널 임준선

주총 시즌 맞아 제편 늘리기 안간힘

한미약품그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미약품가(家)는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부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모녀와 이에 반대하는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 형제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은 최근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에 자신들을 포함한 6명을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해 달라는 취지의 주주 제안을 했다. 사실상 경영 복귀를 공식 선언한 셈이다.

발행 주식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제안한 안건은 주총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이를 감안하면 임종윤·임종훈 형제의 제안은 주총 표 대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모녀와 형제가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주총 표 대결에서는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과 국민연금(7.38%) 등 주요 주주와 소액주주(21.0%)의 표심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롯데알미늄도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주주 제안을 제출한 상태다. 신동주 회장은 앞서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사실상 패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갈등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신동주 회장은 이번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해 달라고 밝혔다.

이런 요구는 롯데알미늄이 지난해 말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양극박 사업 부문 등을 물적분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분할계획서 승인안은 3월 주총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신동주 회장은 물적분할이 이뤄질 경우 롯데알미늄에는 자동판매기와 쇼케이스 사업 부문만 남게 돼 기존 주주의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롯데알미늄 지분 22.84%를 보유한 광윤사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서울 송파구의 롯데월드타워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송파구의 롯데월드타워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박철완 전 금호석화 상무가 주주 제안을 냈다. 금호석화 개인 최대주주(9.10%)인 박 전 상무는 금호가(家) 장손이자 박 회장의 조카다. 그는 금호석화에 자사주 소각에 관한 정관 변경의 건, 자사주 소각의 건 등을 요구했다. 금호석화 전체 주식의 18%에 달하는 자사주가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까닭에서다.

앞서 박 전 상무는 2021년과 2022년에도 주주 제안을 통해 자신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 등을 제안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이번에는 행동주의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박 전 상무는 이번 주총에서 차파트너스에 모든 권리를 위임한 상태다. 차파트너스는 맥쿼리인프라, 남양유업, 사조오양 등을 대상으로 주주행동에 나선 바 있는 행동주의펀드여서 결과가 주목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도 고려아연 정기 주총에서 격돌이 예상된다.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일궈낸 영풍그룹은 장씨 일가가 전자 계열을, 최씨 일가가 비전자 계열을 각각 맡는 식의 공동경영이 이뤄졌다. 고려아연의 경우는 장씨 일가가 소유하고 최씨 일가가 경영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2022년부터 두 집안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지분 경쟁을 벌여오고 있다.

올해 고려아연 추종 의안으로는 재무제표 승인안과 정관 일부 변경안, 이사 선임안, 감사 선임안, 이사 보수 한도 승인안 등이 올라왔다. 그러나 장 회장 측은 최 회장 측 주총 의안인 배당 결의와 정관 일부 변경안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주주 권익의 심각한 침해와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호석유화학 사옥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호석유화학 사옥 ⓒ 시사저널 최준필

행동주의펀드와 표 대결 기업도 다수

행동주의펀드와의 표 대결이 예정된 기업도 적지 않다. 삼성물산이 그런 경우다. 영국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펀드(지분율 1.46%)는 올해 정기 주총을 앞두고 삼성물산에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과 주당 4500원(우선주 4550원) 배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물산은 과도한 주주 환원이 이뤄질 경우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원 확보가 어렵다며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태광산업을 상대로 주주행동을 벌여온 트러스톤자산운용(5.8%)은 이사회 후보를 추천하는 주주 제안을 하기로 했다. 앞서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도 주당 1만원 현금배당과 주식 10분의 1 액면분할, 자사주 취득 등의 주주 제안을 했으나 모두 부결된 바 있다. 또 싱가포르 헤지펀드 고디안캐피털은 한국 기업만을 겨냥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코리아펀드를 설립하고 KB·신한·하나·우리·JB·BNK·DGB 등 국내 금융지주사 7곳에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을 통한 주주 환원 강화를 압박하고 있다.

이 밖에 KCGI자산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에 지배구조 개선과 우리사주 소각 등을, VIP자산운용은 삼양그룹 계열사인 삼양패키징에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KT&G를 상대로 주주행동을 벌여온 플래시라이트캐피털파트너스(FCP)도 올해 정기 주총 전까지 주주 제안을 전달한다는 방침을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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