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2》, 마침내 SF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바이블이 되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5 15: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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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돌아온 《듄: 파트 2》, 걸작 블록버스터 궤도에 ‘안착’
티모시 샬라메, 내한 간담회에서 “원작 통해 감지하지 못한 부분까지 얻어”

시대를 초월해 반복 소환되고 새로운 해석을 얻는 것은 원형적 서사만의 특권이다. 절대자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듄》은 그 운명 위에 있는 작품이다. 전 우주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난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를 중심으로 정치, 종교 등 인류의 삶과 밀접한 모든 것을 망라한 1965년 원작이 지금까지도 SF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이유다. 

전 세계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린 이 베스트셀러는 《스타워즈》 시리즈,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 게임 ‘스타크래프트’ 등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에 방대한 영향을 미쳤다. 1980년 데이빗 린치 감독의 버전을 지나 2021년,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의 세계로 야심 찬 새 시작을 알린 《듄》의 첫 번째 파트는 코로나 팬데믹 한복판에서도 전 세계 박스오피스 4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대작 탄생을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파트다. 전편이 원작의 세계관을 대하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근사한 비전을 소개하는 차원이었다면, 3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듄: 파트 2》는 걸작 블록버스터의 궤도에 공고히 안착하는 성취를 이룬다. 가히 새로운 바이블이라 할 만하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유약했던 소년 폴, 사막의 메시아로 

《듄》의 시대 배경은 황제가 통치하는 우주 제국사회가 건설된 이후인 1만191년이다. 황제의 명을 받는 귀족 가문 연합은 우주 개발과 각 행성의 통치를 담당한다. 전편에서 폴의 가문인 아트레이데스는 우주에서 가장 신성한 환각 물질인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인 아라키스로 왔다. 모래 언덕을 뜻하는 ‘듄’이라 불리는 사막 행성이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스파이스를 둘러싼 경쟁 가문인 하코넨이 기습적인 전쟁을 선포하면서 폴은 공작인 아버지 레토(오스카 아이삭)와 가문의 전사들을 잃었다. 여성 초능력 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사제인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가 퍼거슨)와 간신히 탈출한 폴은 이후 땅의 신성함을 믿는 원주민 종족 프레멘과 조우한다. 그곳에는 폴의 꿈에 날마다 계시처럼 나타났던 챠니(젠데이아)도 있다. 

《듄》 시리즈의 핵심 줄기는 초월적인 절대자 폴의 성장이다. 유약한 소년이었던 그가 두려움을 딛고 자신의 운명을 조금씩 각성하기 시작하는 것이 전편의 뼈대였다면, 《듄: 파트 2》는 폴이 어떻게 절대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지를 그린다. 폴은 프레멘 전사와의 결투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리한 후 서서히 종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방식대로 사막을 배우고, 나아가 다스리고 조화를 이루는 법을 익힌다. 챠니와의 사랑 역시 깊어진다. 이윽고 프레멘은 그에게 뿌리라는 뜻을 지닌 이름인 우슬을, 폴 스스로는 사막 쥐의 이름을 따 ‘무앗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막에서 북극성을 가리키며 길을 파악하는 자라는 뜻을 담은 무앗딥의 존재는 폴의 새로운 분신이다. 전사이자 지도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아라키스의 북쪽을 손에 넣은 하코넨 가문과 황제에게까지 금세 퍼진다. 

한편 폴의 동생이자 레토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인 레이디 제시카는 프레멘의 정신적 지도자인 대모 자리에 새롭게 앉는다. 예언으로 전해져오는 절대자 ‘리산 알 가입’이 바로 폴이라는 믿음이 프레멘 내부에서 점차 굳건해지는 사이, 레이디 제시카는 여전히 폴을 믿지 않는 자들을 포섭하고 회유하는 일종의 종교적 활동에 나선다. 폴이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이들에게 반격을 준비하는 동안, 인류의 전지적 메시아가 될 ‘퀴사츠 헤더락’의 탄생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인 베네 게세리트의 감춰졌던 음모 역시 서서히 드러난다. 

《듄: 파트 2》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이는 하코넨 가문의 전사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다. 감독의 전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살인자’이자 검술의 대가, 뱀과 팝스타 믹 재거의 이미지를 혼합한 결과다.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이 후계자로 지목한 그는 어떠한 가책도 없이 핏줄의 숨통을 끊어놓을 정도로 잔혹하고 교활하다. 아라키스의 새로운 통치자를 노리는 그는 폴과의 대결을 고대한다. 황제의 딸 이룰란(플로렌스 퓨)도 처음 등장한다. 원작 소설은 매 챕터의 시작 부분에 누군가가 쓴 회고록을 발췌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 기록을 남기는 이가 바로 이룰란 공주다. 폴을 사이에 두고 챠니와 얽히는 인물로, 이후 비중이 더 중요해질 캐릭터다. 태중에서부터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폴의 동생도 마찬가지다. 

 

경외감 선사하는 모래사막 액션 

전편에 이어 《듄: 파트 2》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영상을 보여준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뿐인 사막은 이 영화에서 경외의 대상이다. 프레멘어로 ‘사막의 노인’이라는 뜻을 지닌 샤이 훌루트, 400m까지 자라나는 이 거대한 모래벌레가 언제든 출몰하는 거대한 사막은 등장인물들에게 기회와 죽음을 동시에 선사하는 공간이다. 전편의 사막이 막막함 가운데 생명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공간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폴과 온전히 맞붙은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하는 인상이다. 무앗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폴이 프레멘처럼 사막을 정복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액션은 경외감을 안긴다. 특히 무앗딥의 친위부대인 페다이킨이 황제의 거처를 급습할 때 샤이 훌루트를 타고 전진하는 전투신 묘사가 압권이다. 

페이드 로타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대목의 톤 앤 매너는 180도 다르다. 과거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 흑과 백만 존재하는 듯한 세계에서 잔악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처음으로 등장하는 그는 죽음 그 자체다. “액션이 훨씬 늘어서 전편보다 강인한 인상을 주는 영화”라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자신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빛과 어둠, 사운드 같은 영화의 본질적 요소를 섬세하게 다루며 ‘시네마틱한 체험’의 즐거움을 여실히 목격하게 하던 전편의 장점은 그대로다. 방대한 내용을 담다 보니 후반부 리듬이 조금 급하게 느껴지는 감은 있지만, 규모의 위용이 더해진 《듄: 파트 2》는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아름다움이다. 

지금으로부터 8000년 후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시간 배경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면 시대성을 가뿐히 초월하는 작품이다. 제국주의의 익숙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폴의 성장 역시 어둠의 측면이 훨씬 강조된다. 폴의 강력한 예지력은 선물인 동시에 자유의지를 박탈당하는 저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근미래의 환영에 시달린다. 폴은 영웅인 동시에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향한 광신주의, 계획된 선전에 불과한 종교와 정치가 결탁했을 때 어떤 위험이 도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존재다. 그는 자신이 죽어도 순교자로 추앙받을 것이며, 이긴다면 무적의 절대자라는 신앙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일찍이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는 ‘초인은 인류에게 재앙’이라는 믿음을 가졌고, 드니 빌뇌브는 그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듄》 시리즈는 과거 인류가 초래했던 제국주의의 은유적 초상이 되는 동시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지 모를 미래의 한 조각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드니 빌뇌브는 이미 세 번째 영화의 각본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엄한 시리즈가 두 번째 이야기로 끝이 아니라는 것은 일단 환호할 일이며, 세 번째 이야기가 폴 무앗딥을 둘러싼 새로운 위험과 몰락을 그리는 원작 《듄의 메시아》를 기본으로 할 것이라는 점은 작품의 방향성을 보다 또렷하게 가늠케 한다. 북미 OTT 플랫폼 MAX(전 HBO MAX)는 폴이 태어나기 1만 년 전, 두 명의 베네 게세리트 자매를 주인공으로 하는 《듄: 예언(Dune: Prophecy)》을 연내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두 편의 《듄》 영화는 전 세계에 황홀한 모래바람을 일으킬 거대한 세계관을 선보이는 장대한 시작점일 뿐이다.   

ⓒ 시사저널 박정훈
ⓒ 시사저널 박정훈

■ “《듄》 유니버스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다” 《듄: 파트 2》의 주역들 한국 총출동 

《듄: 파트 2》의 주역들이 2월21일 한국에서 내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티모시 샬라메와 젠데이아는 방문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한국 브랜드 준지(June.J)의 의상을 선택해 박수를 받았다. 한국 팬들의 환대에 여러 번 감사를 전한 이들의 말을 전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는 독자들의 첫 반응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책인데, 폴이 영웅시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이후 《듄의 메시아》를 새롭게 썼습니다. 저는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담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듄: 파트 2》에서 프레멘 집단이 하나의 단일한 생각을 지닌 집단이 아닌, 절대자의 존재를 둘러싸고 양극화되는 모습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죠. 저의 국가인 캐나다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종교와 정치제도가 완벽히 분리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사회운동이 활발했습니다. 그 경험 역시 반영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폴은 페이드 로타보다 윤리적 우위를 점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인정 욕구가 강하고 어두운 면모 역시 가진 인물입니다. 저 역시 폴이 영웅으로만 비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놀라운 세계에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폴 역할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절제력, 수많은 아이디어, 원작에서 제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그로부터 얻을 수 있었습니다. 《웡카》를 보신 분들이 부디 이 영화를 보면서 ‘초콜릿 팔던 청년이 우주에서 뭐 하는 거지’라는 혼란을 느끼시지 않길 바랍니다(웃음).” 

젠데이아 콜먼 

“엄마에게서도 받지 못한 환대를 받았어요(웃음). 한국 팬들과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경험입니다. 영화를 통해 원작의 세계를 처음 접했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딘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일원이라는 영광도 있지만 책임감도 큽니다. 원작 팬들을 존중하는 느낌을 전달하는 영화이길 바랍니다.” 

오스틴 버틀러 

“2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가 깊었습니다. 전작에서 감독이 원작을 어떻게 해석했고, 동료 배우들이 얼마나 멋지게 연기했는지 목격했으니까요. 페이드 로타를 연기하기 위해 칼리라는 필리핀 전통 무술을 익혔습니다. 촬영지인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기 전부터 몇 개월간 훈련에 돌입했고, 티모시 샬라메를 처음 만난 날 바로 격투 장면을 촬영했죠. 어두운 영화관에서 거대한 세계관을 만나고 몰입하는 기쁨이 큰 작품입니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관객들이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시리즈를 사랑해 주신다고 느낍니다.” 

스텔란 스카스가드 

“아주 멋진, 그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보셔야 합니다. 스마트폰 같은 걸로 본다면 별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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