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아이디로 대리처방 지시”…불법진료 내몰린 간호사들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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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협, 전공의 이탈 후 현장 애로사항 신고 154건 접수
대리 처방·진단서 작성, 수술보조 등 의사 업무 떠안아
23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탁영란 대한간호사협회장이 의사 집단행동으로 불법 의료행위에 노출된 간호사의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탁영란 대한간호사협회장이 의사 집단행동으로 불법 의료행위에 노출된 간호사의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로 불법진료에 내몰리는 간호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호사들은 대리 처방 및 진단서 작성, 수술보조·봉합 등 상당수 의사 업무를 ‘불법’으로 떠안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23일 간호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가 이날 오전 9시 기준 154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간협은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공백이 본격화된 지난 20일 오후 6시부터 신고센터를 가동했다.

현장 간호사들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한 것은 ‘불법진료 행위 지시’였다. 간호사가 의사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국내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해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의사가 해야 할 각종 대리처치 업무를 지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신고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대신해 채혈,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RU sono)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비위관(L-tube) 삽입을 포함한 튜브관리 등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더해 전문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 처방과 진단서, 경과기록지 등 각종 의무기록 대리 작성, 환자 입·퇴원 서류 작성을 강요받기도 했다. 

강제 출근 지시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한 간호사는 “당직 교수가 처방 넣는 법을 모른다며 휴일에 출근할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평일 밤 근무로 발생한 휴무임에도 ‘개인 연차’로 소진하라는 지침을 내린 곳도 있었다. 

신고자 대다수는 일반 간호사였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데 평소 의사 업무를 분담했던 PA(진료보조) 간호사뿐 아니라 관련 교육·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간호사까지 동원한 것이다. 이들은 의사 역할을 대신하다 추후 보복성 고발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탁영란 간호협회장은 “간호사들은 전공의가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불법진료에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고 있다”며 “의료공백을 정부가 말하는 PA 간호사뿐만 아니라 전체 간호사가 겪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간협은 간호사들 업무가 가중되자 환자안전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4일마다 해야 하는 환자 소독 주기는 7일로 늘어났다. 주말에도 해왔던 거즈 소독은 인력 부족으로 평일에만 하고 있다. 의료 파업으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환자 처치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 것이다.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의사들이 처방 내지 않고 떠나버린 상황에서 간호사는 진통제 하나도 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 상태가 악화됐을 때 의사와 연락이 되지 않아 환자 처치가 지연 된다”면서 “감염 우려 있는 환자의 격리 해제를 위한 주기적인 검사도 중단돼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데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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