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가전, AI 입고 ‘공감가전’으로 거듭나다
  • 고명훈 시사저널e. 기자 (komh123@sisajournal-e.com)
  • 승인 2024.03.03 10: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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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전자가 그리는 스마트홈의 미래
사람 마음·표정 읽고 상호작용도 가능

“오늘은 매우 우울해 보이시네요. 지금 진행 중인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실시간 중계방송을 켜드릴까요?” 스마트홈 AI 에이전트가 늦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주인의 표정을 살피더니,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이렇듯 가전이 이용자의 성향과 상태까지 이해하는 시대가 왔다.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집 안 구석에서 가사를 조용히 담당했던 백색가전이 센서와 인공지능(AI) 기술을 등에 업고 공감 가전으로 거듭난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설계한 스마트홈은 가전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반려 가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전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하고 기존 기능으로는 이제 더 이상 차별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 없게 됐다”며 “마침 AI 시대가 왔고 학습 능력을 통해 소비자들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그만큼 퍼포먼스를 내는 툴을 각 가전제품에 맞춰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재철 LG전자 H&A 사업본부장이 2023년 7월25일 열린 LG전자 UP 가전 2.0 미디어데이에서 UP 가전 2.0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개인 마음 읽어 맞춤형 가전 제공”

삼성전자는 생활가전사업부의 신제품 개발 전략 핵심인 ‘코어 테크(Core Tech)’ 가운데 ‘AI-파워드(AI 기반 혁신기술)’를 강조한다. AI-파워드는 기기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이용자의 가사 관여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례로 가전제품에 탑재된 센서 종류가 늘어나면서 이용자 분석 데이터의 종류와 양도 많아졌다. 센서와 부품 동작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집하는 삼성전자 가전 센서 신호는 냉장고의 경우 약 300가지, 세탁기는 약 200가지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그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 이무형 삼성전자 DA사업부 CX팀장(부사장)은 최근 삼성 뉴스룸 인터뷰에서 “코어 테크는 결국 삼성전자 비스포크가 추구하는 ‘맞춤형 가전’의 가치를 뒷받침한다”며 “비스포크 가전과 삼성만의 코어 테크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파워드가 적용된 신제품도 올해 속속 나올 예정이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처음 공개했던 일체형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는 조만간에 국내 출시된다. 세탁물 무게와 옷감 재질, 오염도를 보고 세탁하고 건조하는 ‘AI 맞춤’ 코스 기능이 추가된 게 특징이다. ‘비스포크 냉장고 패밀리허브 플러스’ 신제품도 지난 1월 출시됐다. 냉장고 내부에 탑재된 카메라가 들고 나는 식재료를 촬영해 음식 리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냉장고다. 약 100만 장의 식품 사진을 학습한 ‘비전 AI’ 기술이 적용돼 각 식품의 종류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푸드 리스트에 반영해 준다. 기존 대비 2배 이상 커진 32형 풀HD 터치스크린에서 음악과 영상 등 콘텐츠를 듣고 볼 수도 있다. 흡입청소와 물걸레 기능을 하나로 합친 올인원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봇 콤보’ 또한 3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인식된 사물에 따라 기기 스스로 공간을 구분해 화장실, 현관 등의 구역을 진입 금지 구역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제품 모두 사용 습관과 환경을 스스로 학습해 실행한다.

LG전자는 생활가전에 적용된 AI를 ‘공감지능’으로 재정의했다. 공감지능의 차별적 특징으로 실시간 생활, 조율·지휘, 책임지능 등을 지목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올 초 CES 현장에서 개최한 LG 월드 프리미어 컨퍼런스에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집, 모빌리티, 상업 공간 등에서 약 7억 개의 LG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AI 지원 지능형 센서가 탑재돼 신체적·정서적 생활 패턴을 학습하고 분석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 됐다”면서 “다양한 공간에서 사용되는 수십억 개의 스마트 제품 및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통해 수집한 실시간 생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CES 2023 삼성전자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정재연 삼성전자 디바이스플랫폼센터 부사장이 새 스마트싱스 허브 ‘스마트싱스 스테이션’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LG, 사용자와 감성으로 소통

실제로 LG전자는 올해 초 공감 가전 제품인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를 공개했다. 동그란 눈을 가진 귀엽게 생긴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는 카메라, 스피커, 다양한 홈 모니터링 센서 등을 통해 집 안 곳곳의 실시간 환경 데이터를 수집한다. 얼굴 인식과 목소리 식별 등이 가능한 온디바이스 AI 기능도 탑재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대화 서비스를 갖춰 사용자와 양방향 대화도 할 수 있다. 음성·음향·이미지 등을 인식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사용자의 상황과 상태도 유추한다.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반려동물처럼 현관 앞으로 마중 나와 반갑게 반겨주며 목소리나 표정으로 감정을 파악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재생해 주기도 한다. 디스플레이에 표정을 표출해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향은 LG전자 H&A사업본부 상무는 최근 스마트홈 AI 에이전트의 개발 비하인드를 공개하는 인터뷰에서 “의인화된 폼팩터를 통해 사용자와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서 “집 안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교감할 수 있도록 두 개의 바퀴 달린 다리를 디자인했으며 섬세한 움직임을 만들어 좀 더 디테일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이어 “사용자들이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는 스마트홈 사업을 지속할 계획이며, 오픈 플랫폼인 AI 에이전트는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고객이 개인화된 서비스 콘텐츠를 직접 다운로드할 수 있는 스마트 라이프 플랫폼이자 집 안 전체를 아우르는 토털 스마트홈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AI·IoT를 접목한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2022년 1176억 달러(약 155조6789억원)에서 2027년 2229억 달러(약 295조759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황용식 교수는 “AI는 기존에 포화된 가전 시장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수요를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가전이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로보틱스 개념으로 가게 되면서 가정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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