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걸린 전기차 시장, 해법은 없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2 10:00
  • 호수 179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격 인하에도 美 전기차 판매율 눈에 띄게 감소…판매율 주춤하지만 배터리 등 기술 혁신은 계속될 전망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EU)의 1월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12월보다 42.3%나 줄어들었고, 미국은 25% 감소했다. 조짐은 작년부터 있었다. 2023년 4분기 미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전 분기 대비 불과 1.3% 증가했다. 이 숫자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포드와 테슬라, GM이 전기차 가격을 평균 20% 인하하며 가격 전쟁에 나섰는데도 고객이 떠났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45.6%를 기록한 세계 전기차 판매량 증가율은 작년에는 31.4%로 하락했다. 올해는 21.0%로 둔화할 전망이다.

2023년 10월12일 경기 여주시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기아 EV 데이’ 행사에서 취재진이 전시된 전기차 ‘EV4 콘셉트’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0월12일 경기 여주시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기아 EV 데이’ 행사에서 취재진이 전시된 전기차 ‘EV4 콘셉트’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테슬라 주가 올해에만 22% 감소

전기차 산업을 선도해온 테슬라의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2%나 급락했다. 실적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테슬라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7% 급감했다. 애플은 결국 전기차 사업을 포기했고, 혼다는 GM과의 전기차 공동개발 계획을 중단했다. 전기차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우리나라의 전기차, 이차전지, 양극재 등 전기동력화 품목의 수출 증가율도 2022년 69.1%로 정점을 찍은 후 작년엔 28.1%로 둔화했다. 일부에서는 전기차 대세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다. 혁신 제품의 확산과 수용에 대해서는 협곡이론(Chasm Theory)이라는 게 있다. 협곡은 지층이 이동하면서 생긴 깊고 넓은 골짜기를 말한다. 경영학에서는 혁신 제품을 일반 소비자들이 널리 사용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침체기를 가리킨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제프리 무어(Geoffrey A. Moore)가 1991년 벤처업계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용해 널리 알려졌다. 신기술이 초기 수요자에게 수용되는 과정을 지나면 많은 소비자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수요 정체나 후퇴가 일어나는 단절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기 수용자와 다수 소비자가 신제품을 수용하는 태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초기의 소비자가 혁신성을 중시한다면, 이후 주류시장의 소비자는 실용성을 중시한다. 전기차는 이제 첨단기술이나 친환경에 열광하는 혁신 수용자를 넘어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다수 소비자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전기차는 대중화 단계로 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충전 시설은 너무 부족하고, 비용은 많이 든다. 겨울철 배터리 성능 저하나 배터리 과열로 인한 화재 위험도 있다. 특히 충전 문제는 전기차 확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요가 둔화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가격일 것이다. 전기차 시장은 정부의 규제와 보조금에 의지해야 한다는 구조적으로 치명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전기차 산업 성장의 기폭제는 사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규제였고 2035년 탄소를 배출하는 신차 판매를 종료한다는 유럽연합의 발표는 오늘의 전기차 산업을 키운 전환점이었다. 지금도 전기차 시장의 수요는 어느 나라나 정부의 지원책과 보조금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결국 차를 사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재정이 넉넉한 정부는 없고 보조금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파격적인 가격 인하는 전기차 대중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스크도 2만5000달러짜리 테슬라 모델을 언급한 바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없다.

좀처럼 기술적으로 도약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배터리가 문제다. 전기차의 값은 곧 배터리값이다. 배터리 가격은 전기차 원가에서 30~40%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전기차 제조사들이 저가형 배터리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가격 때문이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LFP 배터리 비중은 2020년 17%에서 2022년 36%로 상승했다. 올해는 40%대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주력인 국내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기도 하다. LFP 배터리의 확산 추세를 고려하면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의 시장점유율은 당분간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기업의 세계 생산량 합산 점유율은 62%로 집계됐다. 우리로서는 지금의 LEP 배터리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게 다행인 셈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신모델 출시, 가격 인하, 세액공제 등의 노력에도 소비자들의 관심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미국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자동차 노조의 요구를 반영해 전기차 전환 가속화를 위한 배기가스 배출 제한 등 규정 일부를 완화할 계획이다.

전기차 보급은 그만큼 늦어질 것이다. 만약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전기차 시장은 더욱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이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전기차와 청정에너지 산업을 촉진하는 바이든 정부의 기후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기차 시대는 이미 시작됐고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속도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결국 전기차라는 흐름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테슬라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처음 내놓은 것은 2008년이었지만 2019년만 하더라도 판매량은 250만 대를 밑돌아 비중으로 치면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기차라는 큰 흐름은 바뀔 가능성 없어

하지만 전기차 판매는 2020년 320만 대로 뛰어오른 후 2021년 650만 대, 2022년 1050만 대, 지난해 1380만 대 등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엔 세계 신차 여섯 대 중 한 대가 전기차였다. 연간 3000만 대가 판매되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는 이미 40%를 차지한다. 전기차 판매는 계속 늘고 있다. 다만 판매 성장세가 느려지고 있을 뿐이다. 올해 예상되는 판매 증가율 20%는 위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전기차 대중화가 주춤하는 동안 기술 혁신은 계속될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미국이나 중국만이 아니라 EU, 일본 등 모든 선진국이 국력을 집중하고 있는 산업이다. 누가 먼저 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저가의 고성능 배터리 개발은 전기차 가격을 크게 낮출 것이고, 기존 배터리 고도화나 전고체배터리 개발로 안전성 문제도 결국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오기 전까지 당분간은 전기차와 함께 하이브리드차, 수소연료전지차, 수소합성 연료 기반 내연기관차 등 다양한 친환경 자동차가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하이브리드차다. 일본의 도요타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지난 1년 동안 도요타 주가는 GM 주가를 40%나 앞질렀는데,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에 주력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