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판’ 《우영우》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3 15: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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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소재 '뮤지컬' 잇달아 개막했거나 개막 예정…3월 개막하는 《넥스트 투 노멀》 《디어 에반 핸슨》 등 기대작 꼽혀

서울특별시청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19~74세 서울 시민 2149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80% 가까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33.8%), 우울증(26.2%), 불면증(19.0%) 등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발생 이후 치료는 주로 민간 의료기관의 역할이지만, 효과적인 사전 예방을 위한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 주변의 이러한 문제를 가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포용해 주는 사회적인 성숙과 함께 공공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공연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정신질환 돕고자 발 벗고 나선 문화예술계

정신질환은 우리 가까이서 쉽게 발견되고 있기에, 먼저 이해하고 함께 이겨 나가야 할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문화예술계에서도 이를 위한 노력을 위해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면서 그 고민을 함께해 오고 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소재를 가진 콘텐츠 중에서 2022년 가장 인기가 높은 드라마로 꼽혔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 분야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 이전에도 2013년 KBS 《굿닥터》, 2018년 JTBC 《라이프》, 2019년 SBS 《스토브리그》, 2021년 넷플릭스 《무브 투 해븐》, 2022년 tvN 《우리들의 블루스》 등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다양한 정신질환을 사례 연구처럼 다루면서도 환자와 주변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최근에는 뮤지컬 업계가 이를 이어받고 있는 형국이다. 2022년 뮤지컬 《아몬드》에서는 내면의 감정 표현에는 일정 정도 한계가 있지만, 비장애인들의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공존하며 사는 장애인 주연 캐릭터가 극을 주도했다. 올해 초부터는 경계성 인격 장애, 양극성 장애, 불안 장애 등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이미 관객들을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다.
얼마 전,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작가·연출 조윤지, 작곡가 김승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미국의 화가이자 교육자인 키라 밴 갤더(Gelder Kiera Van)의 자전적 저서인 《키라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원제 The Buddha & the Borderline)를 원안으로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창작품이다.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정의에 따르면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란 자신을 보는 태도, 대인관계,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갖는 인격장애다. 스스로나 타인에 대한 평가가 일관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며, 환자의 정서가 정상에서부터 우울, 분노를 자주 오가며 충동적이기 때문에 자해 및 자살 행위도 흔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키키도 어려서부터 정상과 무질서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다. 힘들게 사랑을 시작한 연인과도 이별을 반복하게 된다. 치유 소모임과 토크 콘서트 형식을 통해 자신이 환자임을 관객들에게 고백하고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다. 특히 정신병원에서 만난 상담사 에단과의 면담을 통해 점차 자신의 병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면서 세상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관객 입장에서 이러한 소재와 설정만으로는 자칫 지루하고 정보 전달에만 치우친 낯선 주인공 캐릭터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키키가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연기뿐 아니라 노래를 통해 고백하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앙상블 배우들의 유쾌한 조력으로 인해 웃고 즐기면서 작품의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결국 키키는 아버지의 이해와 화해를 이끌어내며 객석의 관객들에게는 '완벽한 치료는 없지만, 조금씩 성장하며 살아남는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특히, 키키 역을 여배우 이수정과 남배우 이휘종이 나눠 맡아 부녀와 부자 관계를 모두 포괄하며 연인 관계에서도 이성애자 혹은 동성애자를 함께 아우르는 것도 강점이다.

《넥스트 투 노멀》 캐릭터 포스터 ⓒ엠피엔컴퍼니 제공
《넥스트 투 노멀》 캐릭터 포스터 ⓒ엠피엔컴퍼니 제공

자신의 경험담을 연기와 노래로 고백  

3월5일 개막하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은 16년째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는 주부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4명의 굿맨 패밀리(남편 댄, 아들 게이브, 딸 나탈리)가 서로에게서 비롯된 애정과 상처를 안고 갈등하면서도 점차 이해하고 벽을 허물어가는 화해의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극작가 겸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 작곡가 톰 킷의 창작으로 2009년 토니상 3개 부문(음악상·편곡상·여우주연상)과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받은 명작이다. 2011년 국내 라이선스 초연 이후 팬 층도 두터워 벌써 5번째 시즌 공연이다.

3월28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Dear Evan Hansen)》은 국내 라이선스 초연 작품으로 이미 뮤지컬 애호가들이 꼽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다. 주인공 에반 핸슨은 불안 장애를 앓는 소심한 외톨이 소년으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조차 무서워한다. 치료의 일환으로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에반 핸슨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쓰며 어제보다 나은 하루를 꿈꾸고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쓴 에반의 편지가 극단적 선택을 한 동급생 코너의 유품으로 둔갑한다. 그를 아들의 유일한 친구라고 믿게 된 코너의 부모님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둘의 우정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이야기다.

《디어에반 핸슨》 포스터 ⓒ에스엔코 제공
《디어에반 핸슨》 포스터 ⓒ에스엔코 제공

에반의 거짓말이 점차 더 큰 거짓말을 낳고 사람들 앞에까지 서야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그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겼다. 2017년 토니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극본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고 영화 《라라랜드》 작곡팀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 콤비의 수려한 멜로디의 곡들이 특히 유명하다. 주인공 에반 역은 김성규, 박강현, 임규형이 나눠 맡았다.

이런 뮤지컬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서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어준다. 극 중에 등장하는 다양한 의학 정보도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전달해 주며 그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중한 재료’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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