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사직’ 울분 토한 의대 교수들…정부, 총선 전 배분 마무리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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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0개 의대 3401명 증원 신청…교수들 강력 반발
강원대 교수진 “교육역량·학생 의견 반영 안돼…깊은 우려”
3월5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삭발하고 있다. 강원대는 교육부에 현 49명 의대 정원을 14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 연합뉴스
3월5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삭발하고 있다. 강원대는 교육부에 현 49명 의대 정원을 14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 배분을 총선 전까지 마무리 짓기로 한 가운데 교수와 의대생 반발이 격화하고 있다. 교수들은 삭발·사직으로 정부와 대학본부에 강력 항의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5일 교육부는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 수요조사 결과 전국 40개 의대에서 총 3401명의 증원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의 의대 증원 목표 2000명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지난해 실시한 수요조사 최대치인 2847명을 상회하는 수치다. 

이번 신청에서 서울 소재 8개 대학은 365명, 경기·인천 소재 5개 대학 565명 등 수도권 13개 대학이 총 930명의 증원을 신청했다. 비수도권 27개 의대는 2471명의 증원을 신청, 전체의 72.7%를 차지했다. 

특히 정원 50명 미만의 소규모 의대들이 2배에서 5배에 달하는 증원을 신청했다. 거점 국립대 역시 적극적인 증원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충북대는 기존 정원의 5배 이상을 신청, 기존 49명에서 201명 늘어난 250명으로 정원을 조정해달라는 신청서를 냈다. 울산대는 기존 정원 40명의 4배에 가까운 150명으로 정원 확대 의향을 제출했다.

건국대(충주·정원 40명)는 120명, 강원대(정원 49명)는 140명으로 현재 대비 3배 안팎의 정원 조정을 희망했다. 대구가톨릭대(정원 40명)는 80명, 동아대(정원 49명) 100명으로, 부산대(정원 125명) 250명으로 이들 대학도 각각 기존 정원의 2배 수준의 증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개강일인 3월4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생 휴학으로 비어 있다. ⓒ 연합뉴스
개강일인 3월4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생 휴학으로 비어 있다. ⓒ 연합뉴스

대학본부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증원을 희망하면서 의대 교수들은 반발하고 있다. 

강원대 의대 교수 10여 명은 이날 오전 의대 앞에서 삭발식을 열고 학교본부에 항의했다. 강원대는 현재 49명인 의과대 정원을 140명까지 3배 가량 늘려달라는 신청안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삭발에 나선 류세민 의과대학장(흉부외과 교수)과 유윤종 의학과장(이비인후과 교수)은 대학 측의 증원 규모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료 교수인 박종익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이승준 호흡기내과 교수가 직접 동료들의 머리를 밀었다.

류 학장은 "지난해 11월 개별 의과대학의 희망 수요조사는 교육역량 확인이나 피교육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 자료가 현재 정부의 2000명 증원의 주요한 근거로 둔갑해 비민주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 항의하며 교정과 병원을 떠난 학생들과 전공의들을 압박하는 정치적인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의학과장은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지만 꺾여버린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는다" "필수의료분야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교수들의 사직이 시작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성토했다. 

삭발식에 참석한 교수들은 "지난주 교수 회의에서 77%가 의대 증원 신청을 거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학교본부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원대 외 타 대학에서도 의대 교수들이 집단사직 중인 전공의와 동맹휴학을 하고 있는 의대생들에 힘을 보태겠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교수는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혔고, 실제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A교수는 이날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학교본부는 아직 A교수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A교수는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정부의 의사 면허정지 방침과 충북대가 현 의대 정원의 5.1배 확대 신청을 한 점을 언급하며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면 중증 고난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더는 남을 이유가 없어 사직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경북대병원 소속 한 외과교수도 SNS에 글을 올려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며 사직 의사를 표명했다. 

충남대 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교수 370명으로 구성된 충남대병원 비대위는 전날 대학본부에 의대 학생 정원 동결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경북대 의대·의학전문대학원 동창회도 반대 성명을 냈고 경상국립대 등도 의대 교수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본부의 증원 추진 의지가 확인된 만큼 4월 총선 전인 이달 말을 목표로 인원 배정 작업을 마무리짓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 비수도권 의대 중심 집중 배정 ▲ 각 대학의 제출 수요와 교육 역량 ▲ 소규모 의과대학 교육역량 강화 필요성 ▲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지원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는 기본 배정 원칙을 세워둔 상태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증원 수요와 함께 어떤 식으로 의대를 운영할지에 대한 계획도 받았다"며 "서류 검토를 하고, 선정 기준을 복지부와 협의한 후 배정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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