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보루’ 의대 교수마저 이탈하나…‘의료대란’ 비상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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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직 신분 의대 교수들, ‘진료 거부’ 집단행동 움직임
공동성명에 삭발…“전공의 사법 조치에 경종 울려야”
전공의 이어 전임의·교수까지…의료공백 확산 전망
3월5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삭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5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의대 교수들이 대학 측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삭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현장 이탈 전공의 9000명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에 돌입한 가운데 마지막 보루인 의대 교수마저 집단행동을 논의하면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미 병원을 떠난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 교수진까지 이상기류가 확산하면서 의료공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업무개시명령에 불복한 전공의에 대한 대규모 행정처분과 2000명 정원 증원 관련 배분 절차가 본격화되자 의대 교수들은 탄식 속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수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삭발을 감행하는 한편 일부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제자 지킬 것" 교수들 대거 병원 떠나나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 3곳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대 의대 소속 교수들은 "전공의를 겁박하는 정부의 사법처리가 현실화한다면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교수 996명을 대상으로 전공의 사법 조치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교수 605명 중 469명(77.5%)이 '겸직 해제'와 '사직서 제출' 중 하나 또는 둘 모두를 실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의대 교수는 학교 강의와 병원 진료를 동시에 하는 '겸직' 신분인데 겸직을 해제한 뒤 더 이상은 환자 진료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전공의 복귀 시한이 지나고 이달 인턴과 신입 전공의가 입사하지 않은 3개 병원은 실질적으로 전공의 없이 운영되고 있다"며 "겸직 교수직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전공의 사법 조치에 경종을 울리는 방법으로 겸직을 해제하는 데 대다수가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강원대 교수 10여 명은 이날 대학 의대 건물 앞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삭발식을 열었다. 이들은 대학본부가 교수진과 의대생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기존 정원(49명) 3배에 육박한 140명 증원을 교육부에 요청했다며 날을 세웠다. 

이날 40개 대학이 총 3401명의 의대 정원 증원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각 대학별 의대 교수협의회가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격한 반발이 터져나오는 분위기다. 서울대병원 교수 일부는 전날 열린 교수협의회 긴급 간담회에서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시사했다.

SNS를 통해 공개 사직 의사를 밝히는 교수도 나왔다. 충북대병원의 한 심장내과 교수는 자신의 SNS에 "(전공의들의) 의사 면허를 정지한다는 보건복지부 발표와 현재 정원의 5.1 배를 적어낸 (충북대) 총장의 의견을 듣자니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사직 뜻을 전했다. 경북대병원의 외과교수도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며 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3월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3월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는 시작? 전임의·교수 동요 속 환자 '절규'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법정 공방도 불가피하게 됐다.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피고로 하는 의대 증원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서도 제출했다.

의사 집단행동 규모가 확산하면서 의료공백 우려는 더 커졌다. 수술과 진료를 대폭 축소한 병원들은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병동 통폐합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집단사직 보름차에 접어든 가운데 전날 오후 8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레지던트 1∼4년차 9970명 중 8983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탈률은 90%에 달한다.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며 교수들과 함께 의료현장을 지켰던 전임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병원에서 세부 진료과목 등을 연구하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다. 전공의보다 병원 내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 이탈 시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빅5로 분류되는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은 전임의의 절반 가량이 신규 계약을 맺지 않고 병원을 떠났다. 서울대병원도 상당수 전임의가 가운을 벗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쇄 이탈 여파로 서울대병원은 병상 축소 운영을 검토하는 한편 병동 통폐합도 고려하고 있다. 대부분 상급종합병원도 의사 이탈 상황이 수습되지 않을 경우 병동 통폐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자와 환자 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강대강 대치에 절규하고 있다. 7개 환자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와 정치인, 의료계는 편안한가. 의료공백 속에 우리 중증질환자들은 긴장과 고통으로 피가 마르고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며 현장 복귀와 대화를 촉구했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이 3월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이 3월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 "용납 못해" 파상공세

정부는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 전공의들에 대한 3개월 면허정지를 내리는 행정처분 사전통지서 발송 작업에 착수했다. 동시에 교육부는 2000명 증원에 따른 대학별 정원 배분을 총선 전까지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공의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환자의 곁을 떠났다. 심지어 응급실·중환자실도 비웠다"며 "직업적·윤리적 책임을 망각하고 법적 의무조차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 보건을 위한 의료개혁이 특정 직역에 의해 후퇴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고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의사단체에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의사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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