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시론] 주택 정책,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8 17:00
  • 호수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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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정책을 고민하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결국 마주하는 문제는 재원이다. 주변 분양가 또는 주변 전월세보다 훨씬 저렴한 주택을 계속 공급하기만 하면 해결될 것 같은데, 무슨 돈으로 그걸 하느냐로 넘어가면 항상 답변이 막힌다. 예를 들어 서울처럼 수요가 많은 곳에 정부가 공공 아파트를 지어 5억원쯤에 분양하면 좋을 것 같지만 정부가 땅을 사고 정부가 공사를 한다고 땅값과 공사비가 적게 들 리 없다. 결국 원가는 10억원이 훨씬 넘을 것이고 우리가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5억원쯤에 분양하면 그런 집을 한 채 지을 때마다 예산 부담이 커진다. 그렇다 보니 정부도 그런 집을 몇 채 못 짓게 되고 그런 집은 이른바 ‘로또 아파트’가 된다.

그러나 발상을 조금만 전환하면 이런 악순환을 깰 수 있다. 정부가 주변 시세보다 싼 집을 공급하려고 노력하는 걸 포기하는 것이다. 그냥 주변 시세에 맞춰서, 아니 가능하면 주변 시세보다 오히려 비싸게 공급하는 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7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3월 첫째 주(4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번 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주에 비해 0.05% 하락하면서 15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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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장에 주택이 공급될 때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이 공급돼야만 주택 가격이 내려간다는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공공주택을 지어 분양하더라도 주변 시세의 ◯◯%로 싸게 공급하려고 하고,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도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해 더 저렴하게 공급되도록 압박하려고 한다. 마치 욕조에 차가운 물을 한 컵 부으면 욕조 물이 차가워지고 끓는 물을 한 컵 부으면 욕조 물이 더워지는 것처럼 싼 집이 시장에 공급되면 집값이 내리고 비싼 집이 공급되면 집값은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은 새로 지어져 공급되기만 하면 그게 얼마에 시장에 나오든 주택 가격에는 똑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 10억원짜리 주택이 3채 있고 수요자도 3명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5억원짜리 반값 아파트가 한 채 더 공급되면 어떻게 될까. 가격이 내려간다. 5억원짜리 아파트가 누구에게 돌아가든 결국 시장에는 10억원짜리 주택 3채와 그걸 사줄 수요자 2명이 남게 되고 이제 10억원짜리 아파트 3채는 수요자 2명을 대상으로 가격 내리기 경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15억원짜리 비싼 주택이 한 채 더 공급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요자 3명 가운데 가장 부유한 사람이 15억원짜리 주택을 매입하면 시장에는 10억원짜리 주택 3채와 그걸 사줄 수요자 2명이 남는다. 앞선 가정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서울처럼 집값도 땅값도 비싼 곳에서 정부가 아까운 예산을 투입해 가며 100채의 저렴한 아파트를 공급하든, 정부가 그냥 일반 건설회사처럼 시세와 비슷한 아파트를 100채 지어 분양하든 그 결과가 같다는 의미다.

임대주택도 마찬가지다. 주변 월세가 100만원인 동네에 정부가 집을 지어 억지로 월세 60만원에 공급하려면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월세가 100만원인 그 동네에 정부가 집을 지어 월세 100만원이나 110만원에 내놓더라도 그 집이 다 나가기만 하면 효과는 마찬가지가 된다. 월세 100만원을 내고라도 그 동네에 거주하려는 수요자를 정부의 임대주택이 흡수해준 셈이기 때문에 그 동네의 수급 상황은 공급 우위가 되고 월세는 슬금슬금 내려가게 된다.

정부가 월세 60만원에 내놓는다고 그 동네 월세가 더 내려가지는 않는다. 100만원을 내야 할 집을 60만원만 내고 거주할 수 있게 된 운 좋은 수요자들에게 그 집들이 돌아가고 나면 그 동네의 남은 집과 남은 수요자들의 상황은 월세 100만원짜리 임대주택을 정부가 지어 공급할 때의 상황과 똑같기 때문이다. 싼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비싼 집을 공급해도 그 결과는 같다는 생각으로 주택 정책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예산 고민 없이 지속적인 주택 공급이 가능해진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br>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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