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판매 왜 가능해졌나…‘부정적 시각’도 나오는 이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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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부터 위스키·와인·소주 등 잔술 판매 법적 허용
합법적 ‘잔술 문화’에 매출 확대 기대감도
남은 소주 재사용 등엔 우려…위생 문제 떠올라

이르면 내달부터 식당과 주점에서 ‘잔술’ 판매가 법적으로 가능해진다.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최근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주류를 술잔에 나누어 판매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긍정적·부정적 시각이 엇갈린다. 가벼운 음주가 가능해지면서 매출 확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한편, 위생 문제로 인해 소주 등 주류를 잔술로 마시는 문화는 보편화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 한 식당 메뉴판에 주류 가격이 적혀있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한 식당 메뉴판에 주류 가격이 적혀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사실상’ 허용된 잔술…그 전엔 불법?

과거에는 칵테일이나 맥주 이외의 주류를 잔술로 판매하는 것에 불법의 여지가 있었다. 술을 판매하는 사람이 ‘출고된 술’을 임의로 ‘가공’하거나 ‘조작’하는 것을 주세법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행위는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해 주류의 종류나 종목, 규격을 바꾸는 것’으로 정의됐는데, 술을 원래 담겨 있는 병이나 캔에서 잔으로 옮기는 것도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주류에 탄산이나 다른 주류를 섞거나 맥주를 빈 용기에 담는 행위는 예외로 둬, 칵테일과 생맥주의 경우 ‘잔술 판매’를 허용했다. 위스키나 양주, 막걸리, 소주 등을 잔으로 판매하는 것은 법으로 허락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위스키나 와인 등 주류를 잔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법리와 실제 주류 판매 문화간에 괴리감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국세청은 모든 잔술 판매를 술을 가공·조작하는 행위로 보지 않겠다는 내용을 주세법 기본통칙에 포함시켜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 ‘규격’을 병 자체로 보지 않고 원료나 재료, 비율 등을 뜻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단순히 술을 잔으로 옮기는 것은 규격 위반에 해당하지 않게 됐다.

국세청은 이 같은 조치가 실제 주류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동안의 잔술 판매에 대해 “처벌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기본통칙은 법의 해석 방법이나 집행 기준을 정한 것에 그친다.

이에 더해 기재부는 확실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그간 모호했던 잔술 판매 가능 여부를 명확히 하고, 해석 영역에 맡겨져 있었던 부분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차원에서 지난 20일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로 인해 잔술 판매가 ‘법적’으로 공식 허용되는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오는 9일부터 소주·맥주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잔술 판매가 법적으로 가능해진 상황에서, 소주와 병맥주 등 대중적 주류에서는 잔술 문화가 보편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연합뉴스

가벼운 음주 문화 확산?…소비자들 ‘위생’ 거론

그동안 모호했던 잔술 판매 가능 여부가 명확해지면서, ‘가볍게 마시는’ 주류 트렌드를 타고 매출 확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과음을 원하지 않아 술을 병째 시키지 않던 소비자들이 잔술을 소비할 경우, 추가적 매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처벌 위험성을 우려해 잔술 판매를 꺼렸던 영업장들도 합법적으로 메뉴를 도입해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특히 하이볼 등으로 대표되는 믹솔로지(술에 음료 등을 섞어 마시는 것) 문화를 기반으로, 소주나 증류주를 활용한 섞음주들이 활성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주와 병맥주 등 대중적 주류를 잔술로 마시는 문화가 보편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많다. 위스키나 와인 등으로 잔술이 익숙해졌음에도 이번 법률 개정에 대해 거부감이 나오는 배경에는 ‘남은 술’에 대한 ‘불신’이 있다.

위스키나 와인 등은 업장에서 따라주는 주류를 잔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소주나 병맥주는 보통 병 단위로 마시는 주류인데다, 남기는 일이 많다. 타인이 먹고 남긴 술이 내가 주문한 ‘잔술’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잔반(남은 반찬) 재사용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강조된 위생 관념 등으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소주 잔술 판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메뉴 도입은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업장별로 자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부정적인 소비자 인식을 고려해 ‘소주 한 잔’을 메뉴에 도입하지 않는 업장도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비교적 고가이고 남들이 잘 남기지 않는 술인 증류 소주 등을 잔술로 소비하는 경우는 늘어날 수 있겠지만, 다중이 소비하고 자주 남기는 소주의 경우에는 위생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어 소비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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