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어디로 가나…피해자들 “처벌 센 미국 가길”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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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형 ‘한국행’ 원점 재검토…‘미국 송환’ 가능성 열려
국내 피해자들 “한국은 솜방망이 처벌, 미국 보내야”
권도형 씨가 23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무장 경찰대에 이끌려 경찰청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권도형씨가 3월23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무장 경찰대에 이끌려 경찰청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3)의 한국행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국내 피해자들의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권씨의 ‘미국행’ 가능성에 구제 불발을 우려하는 피해자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오히려 반색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금융범죄 처벌이 국내보다 훨씬 강력해 최대 100년 형에 준하는 처벌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이 지난 21일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지 하루 만에 현지 대검찰청이 해당 결정에 불복했다. 검찰은 법원이 권씨의 인도 절차를 약식으로 진행한 점과 인도국 최종 결정권이 검찰에게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법원은 권씨의 한국 송환을 잠정 보류했다.

이 결정으로 권씨의 ‘미국행’ 불씨도 되살아났다. 시사저널과 통화한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대 고문 변호사는 “대법원이 권씨의 송환 국가 결정을 검찰총장에게 온전히 맡기게 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될 경우 검찰은 권씨를 미국으로 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2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국내 피해자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금융사기없는세상과 금융피해자연대은 성명을 내고 “미국에서는 권씨의 범죄에 대해 수백 년의 중형을 선고할 것이지만 한국은 ‘솜방망이’ 처벌을 할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수되지 않는 범죄수익을 가지고 있는 권씨가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내세워 법정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크다”며 한국 송환을 반대했다. 

회원 2700여 명이 모인 ‘루나 테라 코인 공식 피해자’ 커뮤니티에서도 권씨의 미국 송환을 요구해왔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권씨는 한국에서 조사만 마치고 미국으로 송환돼야 한다”며 “미국은 투자 피해자가 제일 많고 사기 범죄자에 대한 100년 이상의 형 집행도 가능하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외 피해자 규모가 상당한 만큼 국내에서 수사를 진행할 경우 ‘권도형 특별수사본부’ 신설과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해 수사 지연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권씨의 한국 송환 필요성을 제기한다. 권씨가 미국으로 갈 경우 피해자들의 구제 순위가 밀리거나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변호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가 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변호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가 2023년 6월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증권성’ 인정에 ‘100년형’ 가능성도

권씨에 대한 처벌 수위는 한국과 미국 중 어느 국가로 송환되는 지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우선 국내 법원은 미국과 달리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변호사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즉 루나 코인이 금융투자 상품으로 인정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인데 한국은 관련 판례가 없어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만약 증권성 인정이 안 되면 (자본시장법상) 무죄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본시장법상 처벌이 어려워지면 권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사기 혐의에 대해서만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된다. 

실제로 권씨의 공범으로 지목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는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루나 코인이 자본시장법에서 규제하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금융범죄에 대한 두 국가의 처벌 방법도 변수다. 한국은 유죄판정 시 ‘가중주의’를 적용한다. 즉 여러 혐의 가운데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를 기준으로 가중 처벌(동종 형일 경우 해당)하는 것이다. 형법에 따르면, 유기징역의 경우 상한을 30년으로 두고 형을 가중할 때는 최대 50년형까지만 선고할 수 있다. 권씨가 국내 형사재판에서 유기징역이 결정되면 최대 형량은 50년이다. 

금융피해자연대는 “한국의 양형제도는 사기꾼에게 유리한 부분이 많다”며 “여러 범죄 중 큰 것 하나를 두고 이것저것 고려해 양형을 정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미국은 ‘병과주의’를 적용한다. 동시에 여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개별 범죄의 형량을 모두 합산해 양형을 결정하는 것이다. 앞서 뉴욕 연방검찰은 지난해 3월 권씨를 사기·시세 조종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권씨에 대한 100년 형 처벌까지 기대하고 있다. 

앞서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은 약 650억 달러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에 징역 150년과 벌금 1700억 달러를 선고한 바 있다. 

기로에 선 권씨 측은 미국보다 형량이 낮은 한국으로의 송환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지난달 미국 송환을 결정했지만 권씨 측이 항소하면서 고등법원과 항소법원을 거쳐 한국행으로 변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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