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세 뒤집힌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국민연금·법원 결정에 달렸다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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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보터’ 신동국 회장, 형제 우군으로 등장
지분 구도 요동…모녀 측, 형제 해임으로 맞불
국민연금 침묵 속 가처분 인용 여부 최대 분수령
한미약품 본사 모습 ⓒ연합뉴스
한미약품 본사 모습 ⓒ연합뉴스

한미약품-OCI그룹 통합의 향방을 가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캐스팅보터인 개인 최대주주가 임종윤·종훈 형제 측의 손을 들었다. 이로써 형제 측의 지분은 약 40%에 도달했고, 모녀 측(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 지분은 최대 35%인 상황이다. 이에 주총의 향방은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과 20% 수준인 소액주주의 선택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주총 전에 나올 가처분 결과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는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총을 앞두고 한미약품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캐스팅 보터’로 꼽혔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임종윤·종훈 형제 측을 지지하고 나선 탓이다. 신 회장은 지난 23일 임종윤 사장 측을 통해 배포한 입장문에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새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키고 기업의 장기적 발전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후속 방안을 지속 모색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형제 측의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질 뜻을 밝힌 것이다.

신 회장은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고교 후배로 한미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5%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신 회장의 선택에 따라 주총 결과에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 등 모녀 측 지분이 약 35%라는 점에서 신 회장의 지지가 있다면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종윤(왼쪽)·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임종윤 측 제공
임종윤(왼쪽)·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임종윤 측 제공

하지만 신 회장이 형제 측을 지지하면서 형제 측의 지분은 40.57%에 달하는 상황이 됐다. 일단 지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 모양새다. 신 회장은 형제를 택한 이유에 대해 “상속세와 주식담보대출 등 대주주들이 개인적인 사유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동안, 회사 경영에 대한 적시 투자활동이 지체되고 기업과 주주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판단했다”며 “기업가치가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이제라도 주요 주주로서 명확한 의사 표현을 통해 회사의 발전과 주주가치 회복 및 제고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새 경영진의 등장 필요성을 역설한 셈이다.

그간의 친분과 최근 만남을 강조했던 모녀 측은 다소 당황한 기색이다. 한미사이언스는 “대주주 중 한 분인 신 회장에 그룹 통합의 필요성과 한미의 미래가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며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3일 내내 펼쳐진 공방전…법원 판결 분수령 되나

팽팽한 표 대결 구도에 균열이 생기자 양측의 여론전도 격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24일 임주현 사장은 형제를 향해 “본인들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매각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분에 대해 3년 간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예탁하는 ‘보호예수’를 선언하며 형제에게도 보호예수를 요청했다.

이에 더해 25일에는 임종윤·종훈 형제를 각각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한미약품 사장직에서 해임했다. 한미약품그룹은 해임 사유에 대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중요 결의 사항에 대해 분쟁을 초래하고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야기했으며, 회사의 명예와 신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 ⓒ연합뉴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 ⓒ연합뉴스

임 사장은 또한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형제 지지를 선언한 신 회장을 향해 “남은 이틀간 우리 입장을 좀더 설득할 수 있을지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할 것이다. 제안할 수 있는 게 뭔지 계속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에 대해선 “관련 부서를 통해 입장을 전하며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임종윤 사장에게 무담보로 빌려준 266억원의 대여금에 대해 “즉시 상환을 촉구하는 대여금 반환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채무 관계가 정리된다면 나로서도 상속세 상당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도 알렸다.

이에 형제 측은 25일 입장문을 내고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한 번도 팔 생각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어떤 주식 매도 계획도 없다”고 반박했다. 해임 통보에 대해선 “의도가 의심스럽다”면서 주총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여금 266억원’에 대해선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양측의 지분 싸움이 격해지면서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선택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방침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

다만 국민연금이 참고하는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는 현 경영진이 제시한 이사진 후보 6명에 전원 찬성했으나 ISS는 사측 후보 3명, 형제 측 후보 2명에 찬성을 던지며 중립 의견을 제시했다. 국내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사측 후보 6명 전원 찬성했으나 한국ESG기준원은 형제 측 후보 4명에만 찬성하고, 사측 후보 6명 선임안엔 불행사를 권고했다.

법원의 결정도 관심사다. 앞서 형제 측은 지난 1월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한미그룹과 OCI 통합 과정에서 이뤄진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무효라는 취지다. 법원이 형제 측 주장을 수용해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OCI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예정대로 이전받지 못하게 돼 주총 결과와 상관없이 통합이 최대 난관에 빠진다. 반대로 기각할 경우엔 주총 표 대결이 통합의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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