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는 덕 봤는데…카드사, 애플페이 도입 머뭇거리는 이유는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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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부터 삼성카드 제치고 개인결제 2위로
해외 신용판매 취급액, 74.8% 증가…3위에서 1위 등극
수수료, 인프라 문제 여전…긴축 경영 속 새 시도?

지난해 3월부터 애플페이 서비스를 시작한 현대카드가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지난해 현대카드는 각종 지표에서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애플페이’가 국내 간편결제 시장의 ‘메기’ 효과까지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카드사들의 애플페이 도입엔 소문만 무성한 모습이다.

서울시내 한 식료품 매장에서 애플페이로 물건을 결제하는 모습 ⓒ연합뉴스
26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월말 기준 전업 8개 카드사(롯데, 비씨, 삼성, 신한,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 연간 누적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에서 현대카드는 2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애플페이 효과?…현대카드 성장세 고공행진

26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전업 8개 카드사(롯데, 비씨, 삼성, 신한,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의 1·2월 누적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에서 현대카드는 2위를 차지했다.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은 이용자가 신용카드로 국내외에서 일시불과 할부로 결제한 금액을 합산한 액수로, 통상 카드 업계 경영건전성을 따지는 주요 지표다.

지난 2월까지 현대카드의 1·2 누적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은 21조1180억원으로 업계 1위인 신한카드(22조8885억원)의 뒤를 이었다. 삼성카드(20조1836억원), KB국민카드(17조7517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현대카드의 연간 누적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은 122조원으로 삼성카드(128조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월별 취급액을 따져보면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현대카드는 개인결제 부문 2위를 유지하던 삼성카드를 추격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현대카드의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은 11조9억원을 기록했다. 월별 개인 신용판매 규모가 11조원을 넘긴 것은 처음이었다. 새 기록과 함께 삼성카드(10조806억원)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카드는 이후 매월 11조원 안팎의 개인 결제 금액을 기록하며 업계 2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유지된다면 올해 누적 취급액에서도 삼성카드를 제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현대카드와 삼성카드와의 격차는 2022년 11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원대로 줄어든 바 있다. 

해외 실적도 눈에 띈다. 현대카드의 해외 신용판매 취급액은 2022년 1조5592억원에서 지난해 2조7258억원으로 74.8% 급증했다. 2022년 당시만 해도 해외 실적에서 8개 카드사 중 3위였지만 1년 만에 1위로 올라섰다.

국내 이용자는 해외에서 애플페이를 이용하기 위해선 현대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애플페이 도입과 맞물려 현대카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해외 여행자가 애플페이의 편리함을 만끽할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미국, 일본을 비롯해 웬만한 나라에선 이미 애플페이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강점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3월21일부터 애플페이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은 애플페이 광고 문구가 쓰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건물 ⓒ시사저널 이종현
애플페이 광고 문구가 쓰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건물 ⓒ시사저널 이종현

애플페이 견제 나선 삼성페이…간편결제 시장 흔들

현대카드의 ‘애플페이 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애플 페이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간편결제 시장의 변화를 주도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전자지급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페이, 애플페이 등 휴대전화 제조사 간편결제 서비스의 하루 평균 이용건수는 859만8000건으로 전년 대비 약 19.9% 늘었다.

결제 금액도 일 평균 2238억1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0.8% 급증했다. 다른 휴대전화 간편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와 LG페이가 도입된 지 7~9년이 지난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도입된 애플페이 이용자들의 수치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애플페이의 국내 상륙으로 삼성페이가 견제에 들어가면서 간편결제 시장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삼성페이는 현대카드의 도입 시기에 맞춰 네이버 페이와 연동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온·오프라인 모두 고르게 사용 가능한 애플페이에 비해 삼성페이는 오프라인에서 주로 사용되는 만큼 온라인 저변 확대에 나섰고, 이 수치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삼성페이는 오는 4월부터는 카카오페이와의 연동을 통해 온라인 영향력 확대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애플페이가 간편결제 생태계 변화까지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신용카드 ⓒ연합뉴스
신용카드 ⓒ연합뉴스

“아직 부족하다”…도입 망설이는 카드사들

애플페이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타 카드사들의 구체적인 도입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도 KB국민카드, 신한카드 등이 애플페이를 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이들 카드사들은 "진전된 논의는 없다"고 한 목소리로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선 애플페이 상륙 초기부터 지적돼 온 수수료와 인프라가 도입을 꺼리는 주 원인으로 꼽힌다. 수수료가 없는 삼성페이와 달리 애플페이는 현대카드로부터 0.15%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카드 애플페이의 소액성 결제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아직 국내에 애플페이 결제가 가능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만큼, 수익을 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카드 업계도 불황이다. 아직 실적발표를 하지 않은 현대·롯데·비씨카드를 제외한 전업카드사 5곳의 지난해 순이익은 모두 하락했다. 특히 우리카드는 전년보다 45.3% 급감하며 반토막이 났고, 애플페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 KB국민카드와 신한카드도 각각 7.3%, 2.1% 순익이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카드사들은 지난해부터 카드 한도와 할부 혜택 등을 대폭 축소하며 긴축 경영에 나서고 있다.

다만 현대카드가 애플페이와 해외 여행객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치면서,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대카드의 대한항공 카드, 아멕스 등 여행 특화 상품과 애플페이가 시너지를 내면서 고액 결제를 통한 수익성도 확대하면서다. 실제로 지난달 현대카드의 1인당 사용 금액은 111만6000원으로 8개 카드사 중 1년 연속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업계의 입장 변화가 크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이제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는데, 이에 따른 효과가 실질적으로 입증 되면 다른 카드사들의 관심이 급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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