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증원’ 논란에 가려진 의료개혁…“필수의료 구멍 어쩌나”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8 09: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계 “필수의료 패키지, 구체성 부족”
서울대 의학과 교수 “수가제도 개선 급선무”
3월13일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구급대원이 환자를 옮기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연합뉴스
3월13일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구급대원이 환자를 옮기고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연합뉴스

“핵심은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리는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의료개혁 윤곽이 선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격화하면서 늘어난 의사를 ‘필수·지역의료’로 유치하는 논의는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경대응과 의료계 집단행동이 지속되면서 의료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부진한 상태다. 내년부터 늘어난 의대생들을 필수·지역의료로 유입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내놓은 의료개혁(필수의료 패키지)에는 4개 과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 등이 포함돼 있다. 현재 의정갈등의 ‘핵’인 의대 증원은 이 중 첫 번째 과제다. 나머지 과제에 대한 본격 논의는 시작조차 못한 상태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패키지가 ‘방향’ 제시에 그친다는 입장이다. 가령,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과 공정 보상 등은 필수의료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정갈등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원 배정이 일단락 된 가운데 증원된 의대생들이 필수·지역의료를 지원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인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지난 26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핵심 문제인 의료 접근성과 형평성이라는 본질이 사라지고 ‘의사 수 증원이 참이냐 아니냐’는 단순한 진리 게임으로 전락했다”며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의료개혁의 핵심인 필수의료는 전공의 지원율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2024학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이른바 ‘빅5’ 병원(삼성서울·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대·서울성모병원)의 필수의료과는 대부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대표적인 ‘기피과’로 알려진 소아청소년과(소청과)는 서울아산병원만이 유일하게 정원을 채웠다. 세브란스병원은 정원이 10명이지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성균관대 의대 본과 4학년인 A씨는 “저뿐만 아니라 동료, 소청과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의 선배들도 (소청과에) 오지 말라 한다”며 “가장 큰 이유는 소아 진료의 보험수가가 너무 낮고 의료소송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특히 한국의 필수의료과는 다른 국가에 비해 기소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처벌 수위가 높다”고 덧붙였다. ‘필수의료과=기피과’ 인식이 만연한 가운데 향후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해당 진료과를 지원할 가능성이 낮은 분위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 참석해 전국 병상 및 병원 진료 현황과 정부의 대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 참석해 전국 병상 및 병원 진료 현황과 정부의 대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낙수효과 아닌 자발적 선택 돼야”

전문가들은 ‘자발적인’ 필수의료 지원 유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사인력 증가로 인한 낙수효과가 아닌 합리적인 근무환경을 구축해 필수의료 인력을 유입하자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최소 6년 이내 이러한 대책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시한은 내년도 입학하는 의대생들이 졸업할 때까지인 마지노선이다.

가장 시급한 대책으로 수가제도 개선이 거론됐다. 오주환 서울대 의학과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하루빨리 필수의료 수가제도를 개선해 필수의료과의 자부심과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필수의료 의사는 지금까지 밀린 임금을 돌려받고 (제도적 허점으로) 초과 이윤을 받은 의사는 그만큼 토해내서라도 파격적인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행위기반의료 지불보상 체계(행위별 수가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진료를 할 때마다 진찰·검사·처치·입원·약값 등에 각각 가격을 매긴 뒤 합산하여 진료비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진료량은 적지만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진료과의 보상이 낮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오 교수는 “특히 맨손 기술이 많이 들어가는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과의 노동 규모는 값비싼 장비에 의존하는 진료과보다 훨씬 크다”면서 “노동에 비해 임금을 현저히 적게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치기반 수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행위별 수가제도와 달리 ‘결과’ 중심 의료다. 환자가 제공받은 행위의 양과 무관하게 현재 건강상태를 잘 유지하는 결과에 따라 보상하는 개념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지난 18일 필수의료 수가제도 개선에 대한 의료계 요구가 커지자 “행위별 수가제도를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혁신해 나갈 예정”이라며 의료개혁 중 하나인 ‘보상체계의 공정성 제고’ 방안을 강조한 바 있다.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전공의가 수련 받는 병원들의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오 교수는 “현재 (지역에는) 대학병원의 병상도 많지 않을뿐더러 임상 실습 등 전공의를 교육할 교수도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상급종합병원만 수련해야 한다는 틀을 깨면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상급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의료원과 민간병원 등 1차, 2차 병원에서도 수련의를 받아 각 병원이 3분의 1씩 분담해서 전공의를 교육한다면 오히려 서울권보다도 수련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인프라 구축 없이 억압성이 강한 지역필수의사제만 내놓는다면 전공의들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