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교육과정 시행되면 학교는 끝장이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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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교육 과정 시행 싸고 논란 가열…“과외 조장하고, 공동체 의식 해쳐”
영수가 쓴 일기에서 영수의 의견을 찾아 봅시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ㅇ씨(58)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딸의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단을 떠난 지 불과 2년. 그 사이에 아이들의 지력이 ‘의견’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이해할 만큼 향상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개정된 초등학교 1, 2학년 교과서에는 이처럼 추상적인 생각을 묻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 교과서는 올해 초등학교 1, 2학년에 처음 적용된 7차 교육 과정에 따라 개정된 것이다.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에도 적용할 예정인 7차 교육 과정을 놓고 교육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7차 과정은 초·중·고 학교 급제 철폐와 수준별 교육 과정 채택이라는 혁신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은 앞서 소개한 초등학교 교과 과정이 문제가 되었다. 인천 신현복초등학교 신은희 교사는 초등학교 1, 2학년 국어·수학 교과서가 너무 어렵고, 고학년에나 나옴직한 내용이 자주 나와 교사·학생·학부모 모두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습지를 구독하거나 보습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학년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급 과정도 따라갈 수 없는 7차 과정의 특성상 학부모가 조바심을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준별 교육 과정은 현재 시범 운영되는 중·고등학교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어·영어·수학 등 다섯 과목에서 학생을 2개 집단(심화·보충 과정)으로 나누어 수업을 따로 진행하게 되어 있는 7차 방식이 내용으로는 우열반 가르기나 다름없다는 것이 전교조의 비판이다.

7차 시범 학교로 지정되어 학생을 심화반·보충반으로 나누었던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지난 1년간 보충반의 성적이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심화반에서는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학원·개인 과외를 받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고 이 학교 교사 ㄱ씨는 말했다. ‘7차 교육 과정만 정착되면 과열 과외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교육부의 낙관이 흔들리는 대목이다.

물론 수준별 학습을 도입한 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학습 의욕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는 학교도 있다. 충남 논산 ㄷ고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학교의 경우 재단 기금으로 우수 교원과 첨단 시설을 대거 확충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고 지역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교조가 지금 7차 교육 과정 시행에 반대하며 ‘수정 고시’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교사나 교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표 참조). 1999년 현재 한국의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35.4명, 중학교 38.9명으로 영국 22명(1995년), 미국 23명(1995년), 일본 31명(1998년) 선을 여전히 크게 웃돈다. 교실 또한 태부족해 아직도 2백53개 초등학교가 2부제 수업을 실시하고 있고, 컨테이너 교실 또한 7백9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보다 20%의 ‘신지식인’을 만들기 위해 80%를 들러리 세우면서 공동체 의식 함양이라는 공교육의 근본 목표를 깨뜨리는 7차 과정의 기본 철학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조 조합원 성낙주 교사(노원중)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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