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전쟁 터지면 돈 번다"헛된 기대 심리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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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 ‘북한 공포증’ 다투어 유포… 제2차 ‘한국전쟁 특수’ 기대 심리도 작용
요즈음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화제를 꼽으면 단연 ‘불황’ ‘지역 진흥권’ ‘한반도 위기설’ 세 가지이다.

지역 진흥권이란 정부가 국민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상품권의 정식 명칭.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달부터 지역 진흥권을 일제히 지급하기 시작했다. 세금 약 7천억엔을 풀어 15세 이하 자녀가 있는 세대와 소득이 낮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2만엔 상당의 상품권을 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불황을 탈출할 묘약으로.

소비를 늘려 불황을 탈출한다는 이 기상 천외한 발상은 ‘해외 토픽감’이라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부러운 뉴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분개할 토픽이 하나 더 있다. 일본 사회에서 번지고 있는 한반도 위기설이다.

<슈칸 분순(週刊文春)>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요즘 일본인들은 직장이나 술집에서 심심치 않게 한반도 위기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말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가로지른 후 북한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크게 변했다. 아사히 텔레비전이 미사일이 발사된 후 보름 뒤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매우 불안하게 느낀다는 사람이 53%, 조금 불안하게 느낀다는 사람이 41%에 달했다. 무려 94%가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또 북한을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가장 ‘위험한 나라’로 지목했다. 그 직전만 해도 일본인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낀 나라는 중국이었다.

일본 언론들의 무책임하고 과격한 보도도 ‘북한 공포증’을 널리 유포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예컨대 <요미우리 신분(讀賣新聞)>이 연재하는 ‘일본은 안전한가’의 최근 기사를 읽어 본 독자라면 마치 한반도에 내일이라도 위기가 닥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인 ‘서울 재팬 클럽’은 지난 1월 말 세미나를 열어,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불러 한반도 사태가 긴박해질 경우 피난할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 특수=불황 탈출’은 망상

충격적인 것은, 한국에 진출한 어떤 일본 종합상사가 1월 말 사무실을 서울 중심부에서 강남으로 이전하고, 언제든지 갱신이 가능한 유효 기간 1년짜리 오픈 항공권을 일본인 직원들에게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주간지나 월간지들의 제목과 내용은 더 과격하다. 격주간지 <사피오>는 최근 ‘제2차 조선 전쟁, 공포의 시나리오’라는 특집을 실었고,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방일에 맞추어 발행된 월간지 <분게이 순주(文藝春秋)> 4월호는 국회의원 5명의 대담 기사에 ‘제2차 조선 전쟁 발발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서점가 진열대에도 <조선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다섯 가지 이유> <북조선, 일본을 공격> 등과 같은 자극적인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심지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6·25 때처럼 호황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일부 일본인들의 기대 심리도 감지된다. 실제로 <슈칸 분순>은 최근 ‘제2차 조선 특수는 있을 것인가’라는 특집 기사에서, 술집에서 샐러리맨들이 ‘조선전쟁’이라도 일어나 특수가 일어나면 좋겠다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은 50여년 전의 ‘한국 특수’와 같은 호경기를 다시 누릴 수 있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일본 언론들의 무절제한 보도대로 한반도에 위기가 닥쳐올 경우 일본 열도는 결코 무사할 수 없다. 50여 년 전에는 일본 열도가 한반도로 출동한 미군의 후방 기지였는데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는 수많은 일본인이 직·간접으로 한국전쟁에 관여했었음에도 말이다.

예컨대 <아사히 신분(朝日新聞)>(91년 5월8일자 조간)과 산케이(産經) 신문사가 발행한 <전후사 개봉>이라는 책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옛 일본군의 소해정(掃海艇) 21척이 대원 2백여 명을 태우고 원산 앞바다로 출동했다. 미국 점령군사령부가 원산 앞바다의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옛 일본군의 소해 부대를 차출한 것이다. 그러나 원산 앞바다에서 소해 작업을 하던 일본 함정 1척이 기뢰를 건드려 폭발해 1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하자 곧 철수했다고 한다.

미군 병력과 물자를 수송한 상륙용 함정에서도 일본인 천여명이 종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통신요원으로 차출되었던 요시다 겐지(吉田建二)씨는 포항·인천·원산·진남포 상륙 작전과 홍남 철수 작전에 참가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일본이 한국전쟁에 관여한 대가가 이른바 ‘한국 특수’였다. 일본 경제기획청이 53년에 발행한 <경제 백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벌어진 3년간 ‘조선 특수’에서 일본이 벌어들인 돈은 15억3천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일본은 대외 무역에서 3년간 11억6천 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무역 결제 대금이 없어 허덕이던 일본은 별안간 생겨난 조선 특수 덕분에 단기간에 무역 흑자국으로 돌아섰다.

조선 특수가 일본에 부흥할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면, ‘베트남 특수’는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해 준 가미카제(神風)나 다름없었다.6·25 때와 상황 판이…일본 부담도 무시 못해

그렇다면 지금 일본에서 한반도 위기설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증폭되는 까닭은 최근의 극심한 불황 탓이 아닐까? ‘한반도 위기’ ‘북한 선제 공격’ 같은 어휘들이 날뛰고 있는 이면에 ‘제2차 한국 특수’를 은근히 바라는 일본인들의 기대 심리가 짙게 깔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군사 평론가들에 따르면, 한반도에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일본에서 출동하게 되는 미군은 요코스카의 제7함대, 오키나와의 제3해병사단, 가데나의 제18항공단, 미사와의 제35전투항공단 등이다. 이는 한반도에 투입되는 미군 병력의 약 30%에 해당한다. 나머지 70%는 일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한반도에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6·25 때 일본이 떼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미군에 대한 물자와 서비스 제공을 완전 독점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군은 일본에서 막대한 전쟁 물자만 조달한 것이 아니라 군인·군속과 그 가족들이 52년 한 해에만 약 2억9천만 달러를 떨어뜨렸다. 일본인 노무자들에게도 약 1억5천만 달러가 뿌려졌다. 이 돈만 해도 일본의 52년 외환 증가액(2억2천만 달러)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또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와 같은 서비스 수입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미군의 대부분이 한반도로 직접 투입되기 때문에 미군과 그 가족이 뿌리는 돈은 미미할 것이 뻔하다. 당시에 비해 3분의 1로 절하된 달러 시세 때문에 미군과 그 가족의 구매력도 형편없이 낮아졌다.

현재 일본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는 미·일 방위협력 지침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에 대한 후방 지원 임무를 맡게 된다. <아사히 신분>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졌을 때 주일미군이 일본 방위청에 1천59개 항목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물자와 병력 이동에서부터 수송과 항만·공항 시설 사용 등에 이르는 잡다한 항목이다. 그러나 50여년 전과 달리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이같은 물자 구입비와 수송, 시설 사용료를 미국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부담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또 총 전투 비용의 일정한 몫을 갹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걸프전쟁 때 일본 정부는 미국의 압력으로 총 전비 5조 엔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1조3천억 엔을 부담했다.

물론 일본 정부가 부담하든 미군이 부담하든 막대한 전쟁 비용이 일본에 뿌려진다면 일본 경제는 또다시 제2차 한국 특수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 조선 특수나 베트남 특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두 전쟁이 모두 장기간 지속되었기에 가능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단기전으로 끝나리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예측이다. 미군이 새롭게 개정한 것으로 알려진 대북 군사 작전 계획인 ‘오퍼레이션 5027’도 단기 제압을 목표로 하고 있다. 1주일이나 2주일 만에 전투가 종료된다면 제2차 한국 특수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오히려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일본은 특수는커녕 자국이 보게 될 피해를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50여년 전만 해도 북한은 일본 열도를 사정권에 둔 노동 미사일이나 대포동 미사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유사시 일본 후방을 교란하게 될 조총련과 같은 열성적인 친북 단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명중도에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이 노동 미사일이나 대포동 미사일로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나 원자력 발전소 등에 선제 공격을 퍼부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또 미사일과 풍선 폭탄을 이용해 생화학 무기로 일본 열도를 오염시키려 들지도 모른다.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나 조총련 특공대가 신칸센 등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일본에 잠입해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특수 공작원은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에 학습조로 불리는 3천명 정도의 조총련 열성 분자들도 큰 위협이다. 한반도가 전쟁 상태에 돌입한다면 이들이 일본 국내에서 테러 활동을 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일본도 난민 문제 등 한국전쟁 후유증 시달려

한반도에서 밀려오는 난민을 구제하는 일과 전쟁 후 복구 비용을 지원하는 일도 일본의 몫이다. 방위청이 93년에 추산한 바에 따르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에서 약 45만명, 북한에서 약 24만명에 이르는 난민이 바다와 육지를 통해 주변 국가로 이동한다. 그 중 한국에서는 약 22만명, 북한에서는 약 5만명이 규슈나 산인 지방 연안에 상륙한다. 사태가 완전히 수습될 때까지 난민 유출이 계속되어 초기의 10배인 2백70만명까지 일본에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대응 능력은 3만5천명 정도가 고작이다. 오무라 수용소의 수용 능력도 현재 천명에 불과하다. 대량 유입되는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난민 수용소를 새롭게 설치하고 식사 등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은 막대한 복구 비용을 독자적으로 염출할 여력이 없다. 당연히 일본이 지원해야 하므로 조선 특수는커녕 과중한 부담으로 몸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도쿄 도지사 선거에 입후보를 선언한 국제경제학자 마쓰조에 요이치씨는 “한국전쟁 때와 지금과는 일본의 국제적 책임이 다르다. (만약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일본이 한국을 지원하고 통일 후의 부흥을 도울 차례다”라고 말한다. 제2의 한국 특수를 기대했다가는 오히려 큰코 다칠 수도 있다는 충고이다.

군사 평론가 에바다 겐스케(江畑謙介)씨는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선제 공격에 공포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북한이 그런 공포심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격주간지 <사피오>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 열도의 87%가 산악이기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로 선제 공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평지에 떨어질 확률은 13%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군사적 의미가 있는 파괴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발에서 천발 정도의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데,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노동 미사일은 수십 발 정도이고, 대포동 미사일은 몇 발 정도라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의 공황(恐慌) 현상은 일본 정부의 불충분한 정보 공개와 일본 언론들의 부정확하고 왜곡된 보도에서 말미암은 측면이 많다. 따라서 불황 탈출을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터졌으면 하는 세간의 소리는 대다수 일본인들이 전쟁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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