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북한에 밀가루 극비 제공
  • 북경·단동/李興煥 특파원·李敎觀 기자 ()
  • 승인 1997.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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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계약서’ 등 물증 공개/96년 여름 3천4백t 전달, 구입비 백만달러 현대그룹이 ‘협찬’…대북 정책 이중성 드러나
남북한 간에 쌀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95년 10월 이후 정부 및 민간 차원의 식량 지원을 중단한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의 자금 지원에 따라 96년 여름 밀가루 3천4백t(98만6천달러어치)이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식량 지원 사업을 중계하거나 간여했던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무역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사업은 청와대 비서실의 지휘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혼선을 일으켜온 북한 정책과 관련해 정책 입안·실행에서의 이중성을 입증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1월 이처럼 비밀리에 진행된 대북 식량 지원 사실을 취재하여 지면 제작에 착수했으나, 배포 직전 청와대와 관계 당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기사에 대한 물적 증거를 보강할 때까지 인쇄 배포를 연기키로 결정하고 이미 배포 중이던 해당 호를 회수한 바 있다. 청와대 김광일 비서실장은 이 사태와 관련해 <시사저널> 편집 관계자 3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했고, 이에 따라 <시사저널> 박상기 편집장과 이교관 기자에 대한 재판이 2월14일부터 시작되었다.

밀가루말고도 4백만달러어치 더 갔다?

대북 식량 지원에 직·간접으로 연관되었던 중국 북경 및 요령성 단동 관계자들과 중국의 대북 무역 관계자,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 그리고 현대그룹 관계자의 증언과 <시사저널>이 입수한 관련 서류에 따르면, 청와대가 주도한 대북 식량 지원 계획에 따라 96년 여름에 밀가루 3천4백t이 북한에 전달되었다. 98만6천달러에 달하는 밀가루 구입 대금은 현대그룹이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대북 밀가루 지원 사업은 95년 들어 입안된 총 5백만달러 상당의 식량 지원 계획에 따른 것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승수 현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이었다. 이 계획은 한부총리가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기 위해 비서실장 직을 사임한 후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현 김광일 비서실장에게 인계되었다. 현대그룹의 자금 지원에 의한 밀가루 공급은 5백만달러어치 식량 지원 계획의 첫번째 성과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대북 식량 지원 계획의 다른 ‘두·세 번째 성과물’은 없는가에 모아진다. 당초 한승수 비서실장 시절에 입안된 5백만달러 상당의 식량 지원 계획에서 <시사저널>이 확인한 98만6천달러어치의 식량 지원은 김광일 비서실장 시절에 현대의 자금 제공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4백만여 달러어치의 식량 지원 계획은 무산되었을까? 또 현대그룹을 제외한 다른 대기업들은 식량 지원 계획에 자금을 대지 않았을까? 해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 단서는 최근 망명한 황장엽 비서의 수양딸인 박명애씨(34·중국 심양 明興經貿公司 총경리)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비밀리에 수행한 대북 식량 지원사업의 전모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그룹이 자금을 지원해 96년 6~7월 총 60여 차례에 걸쳐 북한에 공급된 밀가루는 1t당 2백90달러짜리로 중국산 1급 표준품이며, 25㎏짜리 PP마대에 포장되어 화물 열차편으로 중국 단동을 거쳐 북한의 수출입회사인 조선광명성총회사에 인도된 것으로 알려졌다. 밀가루 구입 대금은 현대그룹의 해외 현지법인 가운데 하나인 ‘현대상사 홍콩’이 지불했다.

현대상사 홍콩은 96년 5월8일 홍콩의 스위스 유니언뱅크에 신용장을 개설한 뒤 이 은행을 통해 밀가루 구입 대금 98만6천달러를 중국은행 단동 지점에 입금했고, 밀가루 3천4백t은 현대의 신용장을 접수한 중국 요령성 단동의 단동수출입집단 소속 경공산품(輕工産品)공사를 통해 북한의 조선광명성총회사에 인도되었다. 광명성총회사는 삼천리·은하무역·능라도 총회사 등과 더불어 북한의 대표적인 무역회사로서 (주)녹십자와의 의약품 사업이 95년 9월 통일원으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은 바 있다.

대북 밀가루 지원에서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업무를 추진한 사람은 미주한인식품상총연합회 명예 회장인 재미 동포 김양일씨와 북한의 대외 경협 창구인 중국 북경 소재 금강산국제무역개발총회사 박경윤 회장이다.

따라서 대북 밀가루 지원은 겉으로는 재미 동포 김양일씨가 북한에 원조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양일씨가 청와대 관계자들과 직접 접촉해 밀가루 지원 사업을 입안했고, 밀가루 구입 대금을 현대가 지원한 것으로 밝혀져, 실제로는 정부가 관련된 대북 지원인 셈이다.

김양일씨는 한승수 현 부총리가 대통령 비서실장일 때 한실장과 같이 대북 식량 지원 계획을 입안했으며, 한부총리는 주미 대사로 근무할 때 김씨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밀사를 자처한 재미 동포 김양일씨와 금강산총회사 박경윤 회장이 북한에 식량을 원조하는 형식을 취한 대북 밀가루 지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남북한 간의 북경 3차 쌀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95년 10월부터이다.

김양일씨가 중국 북경 소재 백두산무역유한책임공사 대표 리용석씨(34)와 중국산 1급 표준품 밀가루 3천4백t 거래 계약서를 작성한 일자는 95년 10월30일. 백두산유한공사는 금강산총회사의 북경 대표부 대표이기도 한 리용석씨가 별도로 운영하는 대북 사업체이며, 조선족인 리씨는 박경윤 회장 밑에서 대북 사업을 담당하다가 박회장의 지시로 김양일씨가 주도한 대북 밀가루 지원 사업을 총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리씨는 중국 수출입 대행 회사인 단동수출입집단을 통해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에 밀가루를 인도할 때 단동에 3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실무를 담당했다.
미주한인식품상총연합회(회장 전기풍)를 대표한 김양일씨가 백두산유한공사 대표 리용석씨와 체결한 계약 내용에 따르면, 김씨가 리씨에게 백만달러 상당의 중국산 밀가루 공급을 의뢰했으며, 계약 합의 후 20일 이내에 양자가 동의한 수입상사에 ‘취소 불능 신용장’을 개설하는 형식으로 김씨가 밀가루 구입 대금을 지불한다는 조건이다. 밀가루는 신용장 접수 뒤 30일 이내에 선적하도록 했다.

이 계약 내용대로라면 늦어도 95년 말까지는 모든 거래가 끝나도록 되어 있으며, 밀가루를 최종 인수하게 될 북한측 회사는 양자가 별도로 합의하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 밀가루는 계약서를 작성한 후 6개월 뒤에 북한에 넘겨졌다.

백두산유한공사는 수출입 권한이 없는 회사여서 국제 무역 거래에 필요한 신용장을 접수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 요령성 단동의 단동수출입집단을 신용장 접수 대행 회사로 내세웠고, 또한 이 회사로 하여금 밀가루 최종 인수자인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에 밀가루를 공급하도록 했다. 밀가루 구입 대금은 현대상사 홍콩이 지불하고, 밀가루는 중국측 대행 회사를 통해 북한으로 인도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중국을 통해 북한에 반입되는 물품의 80%는 단동-신의주간 국경 철로와 육로를 통하기 때문에 단동은 중국-북한간 최대 물류 유통지이며, 북한의 식량난 이후 단동에 있는 중국인 밀가루 장사들은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기도 하다).

형식적으로는 삼각 무역 꼴을 갖추고 있지만 내용으로는 무상 증여인 이 거래에는 세 가지 계약이 필요했다. 김양일씨와 백두산유한공사 사이의 공급 의뢰 계약, 백두산유한공사와 조선광명성총회사 사이의 매매 계약, 김양일씨와 현대상사 홍콩 사이의 자금 지원 계약이다. 이 계약 관계는 <시사저널>의 취재에서 확인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김양일씨는 대북 밀가루 지원을 진행하기 위해 북경에 올 때마다 북경 시내 京廣中心호텔 1824호실에 투숙했으며, 96년 5월 초 현대종합상사 북경대표부의 중국본부장 정재관 부사장을 접촉해 현대그룹의 밀가루 구입 대금 지원 방법에 관해 논의했다. 그는 또 북경에 머무르면서 백두산유한공사 및 현대상사 홍콩과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현대상사 홍콩과 팩시밀리를 통해 계약서를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허락 없는 북한 지원은 자살 행위”

현대상사 홍콩은 홍콩 소재 스위스 유니언뱅크에 96년 5월8일 신용장을 개설했다. 그후에도 신용장 내용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고, 실제로 밀가루 대금이 입금된 시점은 6월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두산유한공사와 김양일씨, 백두산유한공사와 광명성총회사 사이에 각각 공급 의뢰 계약과 매매 계약이 체결된 것은 95년 10월이다. 그러나 현대가 지원한 밀가루 구입 대금은 당초 계약 내용과 달리 시일이 훨씬 지난 뒤에 이루어졌다. 현대에 의한 자금 지원이 김씨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음을 뜻한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양일씨는 자금 조달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현대와 접촉하기 전에 이미 다른 자금 지원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자금 지원자로부터 밀가루 구입 대금 지원을 약속받은 후 지원자가 신용장을 개설한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에서 북경에 온 지원자를 만나 입금을 종용했으나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대북 밀가루 공급 자금 조달이 순탄치 않았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대북 밀가루 지원에서 현대그룹의 역할은 주도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청와대 비서실의 자금 지원 요청이 현대그룹측에 전달되었다는 것이 많은 관계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북경의 한 정보 소식통은 “현대가 밀가루 공급 자금을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그 자금을 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해 현대가 주도적인 입장에 있지 않았다는 정황을 뒷받침했다.

현대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의 자금 지원 사실을 부정하지 않은 채 “만일 밀가루 자금을 댄 것이 사실이라면 현대도 피해자다”라고 말해 청와대 요청에 따른 자금 지원 사실을 간접 시인했다.

한 재벌 그룹 북경대표부의 고위 관계자 증언도 청와대 주도설을 뒷받침한다. 그는 “6월 초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서 현대그룹이 밀가루를, ㄱ그룹이 테트론 천t을 각각 북한에 공급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당시 상황에서 정부의 허락 없이 민간 기업이 사사로운 차원에서 대북 지원을 한다는 것은 파산을 각오한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참 배짱 좋은 기업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바꿔 말하면 권력 핵심층의 승인이나 암묵적인 동의 없이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북 밀가루 공급 사업의 실무를 주도한 김양일씨는 전과정을 통해 자신이 ‘청와대 밀사’임을 내세웠다. 한 소식통은 “김양일씨는 김광일 대통령비서실장의 서명이 있는 김비서실장의 친필 메모를 제시하면서 ‘나는 대통령 밀사’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대북 접촉 ‘부적합 인물’이 핵심 역할 맡아

그렇다면 대통령 밀사를 자처한 김씨는 왜 자기가 직접 북한에 밀가루를 공급하지 않고 굳이 금강산총회사의 박경윤 회장을 동원하는 복잡한 방법을 선택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대북 사업을 담당하는 북경의 상사 주재원들과 정보 소식통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는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을 움직일 만한 힘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북 사업 관계로 김씨를 여러 차례 접촉했었다는 한 그룹 북경대표부의 관계자는 “김양일씨는 대북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인들 사이에서 이미 부적격 판정을 받은 지 오래된 사람이며, 그가 청와대 밀사라고 자처하면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들었으나 우리 기업인들은 대부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북한 정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의 한 소식통은 “이미 우리의 일선 정보기관이 공식 경로를 통해 김양일씨가 대북 접촉에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을 상부에 보고했으며, 그 정보는 청와대에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경 현지 기업인들과 정보 관계자들의 지적에서도 드러나듯이 김양일씨에 대한 평판은 사뭇 부정적이다. 대북 사업이나 접촉에 관한 한 상당히 낮은 점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가 직접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지 못하고 중간에 금강산총회사 박회장을 동원했으리라는 것이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즉, 지금은 비록 ‘빛바랜 인물’이 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했었고 여전히 북한과 ‘끈’을 대고 있는 박경윤 회장을 통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박경윤 회장 역시 김양일씨가 필요했다. 박회장은 몇년 전만 해도 북한의 대남 경협 관계자나 고위층 인사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박회장과 북한과의 사이는 예전과 달리 서먹서먹해졌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일치된 평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박회장 처지에서는 북한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만한 ‘사업’이 필요했고, 94년부터 관계를 맺어온 김양일씨를 통해 밀가루 공급 사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금강산총회사 박회장과 김양일씨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해 대북 밀가루 지원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대북 사업을 추진하는 우리 기업이나 정보기관으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은 그들은 청와대가 주도한 대북 밀가루 지원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 밀사’ 자처하는 사람 수두룩

밀가루 지원 계획이 대통령 밀사를 자처한 김양일씨를 매개로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 95년 10월은 남북한 관계가 쌀회담이 결렬되고 나서 한동안 관계 개선 가능성을 보이다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때이다.

투자나 임가공 등 대북 사업의 실무를 담당하는 북경의 기업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대통령 밀사를 자처하는 인물이 양산되곤 하는 풍토를 개탄한다.

한 그룹의 실무자는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는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재미 동포 등 대통령 밀사를 자처하는 기업인들이 나타난다. 몇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밀사’들을 만나 보았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한마디만 들어보면 어떤 성분의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남북한 간의 공식 접촉 채널과 밀사가 구분이 잘 안될 만큼 밀사들이 극성을 부리기도 한다. 이른바 밀사들의 공통점은 누구든지 권력 핵심층 또는 그 주변 인사와 한가닥 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관계를 확인해 보면 사실로 드러나곤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앞서의 북경 정보 소식통은 대북 밀가루 지원과 관련해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밀가루를 지원했다는 사실보다도 어떤 경로와 절차를 통했는가 하는 것을 따져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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