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복 후 대비해 ‘을지 훈련’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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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은 함경도, 3군은 평안도 지역 맡아 軍政…빨치산식 저항에 대한 대책도 모색
 
지난 7월 전시 대비 국가 총동원 능력을 연습하기 위해 열린 ‘을지훈련’에서는 북한 지역을 수복했을 때를 가정한 훈련이 실시되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남측이 주도해 통일이 되면 1군은 함경도 지역에서, 3군은 평안도 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는데, 이때 정부 각 부처가 어떤 방법으로 북한 주민을 통치할 것인가가 이 훈련의 핵심 사항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민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 교과서를 한국 것으로 바꾸는 방법과 북한 교원 처리 문제,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 배급 문제와 북한 지역에서의 식량 증산 방안, 북한군 일부 부대가 무장 해제를 거부하고 빨치산 식으로 저항할 경우 대처 방법 등에 대해 검토했다.

데프콘·충무사태 ‘연동’

을지훈련은 국가총동원령인 ‘충무사태’가 발령되었을 때를 대비한 훈련으로 해마다 실시된다. 국가총동원령이 발령되면 예비군은 물론이고 제2국민역을 비롯한 20세 이상 성인 남자와 각종 운송장비·중장비에 대해서도 동원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전국민을 상대로 훈련할 경우 일반인의 생활이 위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 군 병력과 공무원만을 참가시켜 실제 훈련을 벌이고, 나머지는 도상(圖上)으로만 검토한다. 92년까지의 을지훈련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효과적으로 국가총동원령을 내릴 수 있는 방안에 한정했으나, 93년부터는 북한을 수복하고 난 다음의 상황까지 고려해 훈련을 벌여왔다.

을지훈련의 실제 모델인 충무사태는 한미연합사가 내리는 데프콘과 연동해서 정부가 선포하는 국가 비상 사태이다. 한미연합사령부가 전시(戰時) 상황을 의미하는 데프콘Ⅰ을 발령하면 정부는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충무 1종 사태를 선포하고, 데프콘 Ⅱ가 발령되면 충무 2종 사태를 선언한다. 충무 사태가 선포되면 정부 각 부처는 비상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군 작전을 지원하는 쪽으로 업무 방향을 바꾸게 된다.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은 원래 미군이 내리는 긴급 방어 체제이다. 데프콘 Ⅰ은 해외 주둔 미군이나 미국 또는 동맹국이 공격 받는 상황으로, 전쟁 상태를 의미한다. 데프콘 Ⅱ는 적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취해지고, Ⅲ은 공격은 임박하지 않으나 분쟁 빈발 지역에 배치된 부대가 기습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발령된다. Ⅳ는 현재 한반도 상황처럼 전략공군과 긴급배치군이 평상시에 취하는 경계 태세이고, 가장 낮은 경계 태세는 Ⅴ이다. 전시 상황인 데프콘Ⅰ이 발령되면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미연합군 사령관 자격으로 2군을 제외한 한국의 육·해·공군과 주한미군에 대해 작전권을 행사한다.

북한의 군사 위협이 높아지면서 자주 거론되는 워치콘(watch condition)이란 북한에 대한 정보 감시 태세를 가리키는 용어로, 한미연합사 사령부가 발령한다. 평시에는 워치콘 4로 있다가 위기가 높아지면 3→2→1로 올라가면서 정찰기 등 첩보 수집 수단을 보강한다. 북한군의 판문점 무단 진입이 계속되던 지난 4월5일 워치콘 2가 발령됐고, 5월10일 이후에는 워치콘 3을 유지하고 있다. 워치콘 1은 적의 도발 징후가 명백할 때 내려지는 것이라 전시와 연결될 수 있다.

강릉 침투 사건 때 강원도 일대에 내려진 ‘진돗개’는 대간첩작전을 위해 평시에 주로 발령된다. 때문에 평시 작전권은 한국군이 갖는다는 한·미 협정에 따라 합참의장 이하의 한국군 지휘관이 작전권을 행사한다.

‘진돗개 하나’는 강릉 사건처럼 적의 침투가 확실한 경우에 발령되고 ‘진돗개 둘’은 적의 침투가 예상되어 경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때 발령된다. 그러나 평시에만 한정해 진돗개를 발령하도록 규정된 바는 없어, 진돗개 하나 상황에서 곧바로 전시로 돌입할 수도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AN 2기를 이용해 여러 지역에 동시 다발로 침투하면 그 지역마다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나, 그 직후 한·미 양군이 간첩 침투가 아닌 전쟁 도발이라고 판단하면 곧바로 데프콘 Ⅰ의 전시 상황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미 연합군은 한미연합사 사령관 지휘 아래 작전계획(OPLAN 5027)에 따라 휴전선을 넘어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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