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상고들의 ''울며 겨자 먹기'' 변신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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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통' 목포상고 · 광주상고, 살아남기 위해 인문계 고교로 전환
전남 목포시 용당동에 자리잡은 공립 목포상업고등학교(교장 유무정)는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고등학교이다. 김대중 대통령(22회)을 비롯해, 현정권의 실세인 권노갑 최고위원(27회)과 경제계 원로인 교보생명 신용희 회장(19회), 대신증권 양재봉 회장(22회) 등을 배출한 학교이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교직원과 학생들이 축하 시가 행진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목포상고 재학생들에게는 이같은 유명세가 별 의미가 없다. 목포상고는 최근 몇 년 동안 학생들이 실업계를 외면하고 취업률이 하락해 미달 사태를 빚었다. 올해도 상업계 학급 모집 정원이 1백20명인데 90명만이 입학했다.

교사들은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학생들을 교실에 붙잡아놓기 위해 수업 시간마다 진땀을 빼야 했다. 학생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위해 수능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상업고등학교의 정체성까지 흔들렸다. 목포상고는 학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문계 학급을 신설했다.

내년 3월부터는 아예 8개 학급 3백12명을 모집해 ‘전남제일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남녀 공학 인문계 학교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목포상고 유무정 교장은 “인문계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동문과 학부모의 동의를 구했다. 명문 학교가 없어진다는 동문들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인문계 전환만이 학교가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데 모두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졸업생 2만2천4백여명을 배출한 목포상고라는 이름이 시대 변화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남은 상업계 학생 불만 감싸는 것이 문제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야구 명문 광주상업고등학교(교장 서용호) 역시 내년부터 8개 학급 3백20명을 모집해 영재 교육을 표방하는 ‘광주동성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새출발한다. 광주 지역의 유일한 남자 상업고등학교로서 4만여 졸업생을 배출한 광주상고는 최근 몇 년 동안 ‘우수한 학생은 인문계로 다 빠져나가고, 그나마 남은 학생들은 공고와 정보고에 다 빼앗긴 뒤 오갈 데 없는 학생만 받아들였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명성이 추락했다. 금융계와 대기업체가 외면해 광주상고 졸업생의 순수 취업률은 현재 5% 수준으로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올해 3학년 학생 거의 모두가 수능 시험에 응시했을 정도여서 사실상 인문계 학교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광주동성고는 중학교 재학 성적 상위 5%에 드는 학생에게 장학금 전액을 면제하고 외국인 강사를 대거 고용해 영어 특성화 학교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광주상고 서용호 교장은 “문제 풀이 위주의 획일적이고 소모적인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참교육과 전인교육을 하는 인문계 학교로 탈바꿈시키겠다”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학교들이 인문계로 전환한다고 해서 당장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명문 대학 진학에 매달리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실업계 이미지로 굳어진 이 학교들을 선호할 리 없다.

하루아침에 학교를 잃게 된 상업계 학급 학생들의 불만을 다독거리는 것 또한 이 학교들의 과제이다. 목포상고 상업과에 다니는 한 2학년 학생은 “취업도 안되고, 학교도 없어지고 우리들은 이제 찬밥 신세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때문에 더 이상 중도 탈락자가 없도록 이들을 배려하고, 상업계 학생들이 원할 경우 인문계로 전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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